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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선의와 소신' 내세운 '호랑이 금감원장'…"2008년 키코사태 재검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취임 2년 차에 은행ㆍ보험 등 금융계를 향해 ‘칼’을 뽑아 들었다. 윤 원장은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선의와 소신’을 내세운다.

시장은 금융위와 금감원 등 당국의 엇박자와 대법원 판결까지 따르지 않는 금감원의 독주에 혼란스러워한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14일 출입 기자단 오찬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융감독원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14일 출입 기자단 오찬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융감독원

금감원은 14일 ‘2019년 주요 업무계획’을 발표했다. 금감원은 이 자료에서 “키코(KIKO) 불완전판매, 즉시연금 소송 및 암 입원 보험금 지급 등 주요 분쟁에 적극 대응해 소비자 권익을 최대한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ㆍ검사와 연계 등으로 소비자 피해구제 절차를 내실 있게 운영하겠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의 말을 듣지 않는 금융회사가 있으면 검사ㆍ감독권으로 압박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윤 원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금감원 재량권이 더 많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평생 교수 생활을 하며 자유롭게 살았는데 금감원 업무가 생각보다 제약이 많다”며 “그러다 보니 생각한 것을 실현하기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윤 원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키코 사태’의 재검토를 언급했다. 그는 “분쟁조정을 신청한 4개 회사를 살펴봤고 은행과도 접촉해 정보를 확인했다”며 “법률 검토도 거의 정리돼 늦지 않은 시점에 분쟁조정위원회에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한 범위 안에서 움직일 경우 미리 정한 환율로 달러를 사고팔기로 약속한 외환 파생상품이다. 주로 수출기업들이 환율 변동의 위험을 피할 수 있다는 은행의 말을 듣고 가입했다. 하지만 금융위기로 원화가치가 급락(환율은 급등)하면서 기업들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010년 금감원 조사에 따르면 키코 계약에 따른 기업들의 손실 규모는 3조2274억원에 이른다. 피해 기업들은 은행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금감원이 대법원 판결을 뒤집을 수는 없지만 과거 소송에 참여하지 않았던 기업이 분쟁조정을 신청하면 다시 검토할 수 있다는 게 금감원의 입장이다.

상급기관인 금융위원회는 불편한 분위기다. 하지만 금감원과 갈등설이 확산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공개적인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키코 관련 입장 변화는 없다"고 짧게 언급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2017년 12월 기자간담회에서 “키코 문제는 오랜 기간 아주 광범위하고 복잡하고 전문적인 논의가 있었다. 무엇보다 검찰 수사가 있었고 대법원 판결이 다 끝났다”고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었다.

윤 원장은 즉시연금 관련 소비자 분쟁에도 적극 나설 방침이다. 조만간 부활하는 금감원 종합검사는 삼성생명 등 대형 생명보험사가 첫 번째 타깃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윤 원장은 “특정 회사를 집어서 말하긴 어렵지만 소비자 민원이 많은 금융회사는 종합검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소비자연맹이 삼성생명을 상대로 제기한 즉시연금 관련 공동 소송의 첫 공판은 다음 달 12일 열린다. 앞서 금감원 분쟁조정위는 삼성생명에 “즉시연금 미지급금을 고객에게 지급하라”고 권고했지만 회사 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금융위는 종합검사 부활이 금융회사를 옥죄는 수단이 돼선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최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국회에 출석해 "금감원이 스스로 종합검사를 폐지했는데 다시 부활하는 것을 놓고 약간의 우려와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금융위는 금감원이 제출한 종합검사 계획안에 대해 수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수장이 바뀔 때마다 해석이 달라지면 결과적으로 제도의 안정성이 떨어져 금융사와 소비자가 혼란을 겪을 수 있다”며 "“금감원이 과거 사안을 일일이 다시 꺼내기보다는 비슷한 문제가 재발하지 않게 감독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주정완ㆍ염지현 기자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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