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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5G 시대에 VR 게임만 즐길 셈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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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장정훈
장정훈 기자 중앙일보 팀장
장정훈 산업 2팀 차장

장정훈 산업 2팀 차장

정부가 그토록 서둘렀던 ‘세계 최초 5G(세대) 통신 상용화’는 결국 미뤄졌다. 정부는 당초 이달 말을 5G 개통일로 잡았다. 5G 상용화 연기는 마음만 급했던 정부가 시장 상황을 챙기지 못한 탓이다. 장비업체의 5G용 기지국이나 교환 장비 준비는 미흡하다. 이통사의 통신망 구축도 더디고 요금제도 정하지 못했다. 단말기업체는 5G 칩 수급문제로 5G용 스마트폰 출시 기한을 맞추지 못했다. 지금은 주무부처인 과기부의 장관 교체까지 겹치며 추후 날짜도 잡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정부 계획대로 내달쯤 세계 최초로 5G를 상용화해도 반쪽에 그칠 우려가 높다는 점이다. 5G는 기존 3G나 4G와는 질적으로 다른 통신기술이다. 3G나 4G는 단순히 속도를 더 빠르게 하는 데 주안점이 맞춰져 있었다. 물론 5G도 4G(LTE)보다 속도가 대략 20배 빨라진다. 하지만 5G는 3G나 4G와는 확연히 다른 초연결성과 초저지연성이란 특성을 갖고 있다. 초연결성은 1㎢ 반경 안의 100만개 기기에 사물인터넷(IoT)을 연결한다. 일례로 자동차 공장 생산 라인의 모든 공정을 연결해 관제실에 앉아 컨트롤할 수 있다. 초저지연성은 사물과 사물 간 통신 응답 속도가 0.0001초로 빨라진다. 고속도로에서 자율주행차가 주행할 수 있는 환경이 구현된다. 개인용 통신에 머물던 4G까지와 달리 5G부터는 우리 생활과 제조업 전반의 혁신을 가져올 미래의 산업 인프라로 인식해야 하는 이유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하기 위한 핵심 기술로 5G를 꼽고 있다. 미국 제조업 경쟁력 부활에 5G를 필수적인 인프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중국은 제조업을 선진화하겠다는 ‘중국 제조 2025’의 목표 달성을 위해 5G 기술 선점을 노리고 있다. 그래서 미·중간 무역 전쟁의 핵심 키워드 역시 ‘5G 기술 전쟁’으로 정리되고 있다. 미국의 ZTE나 화웨이 때리기 밑바탕에는 이들이 미래 산업의 인프라인 5G를 장악하는 걸 가만히 지켜볼 수 없다는 경계심이 깔려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세계 최초 5G 상용화에만 매달릴 뿐 미래 산업의 인프라로 활용하기 위한 준비는 소홀하다. 그저 세계 최초로 5G 스마트폰으로 VR(증강현실) 공연이나 AR(가상현실) 게임이나 즐기는 시대를 열겠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정부는 세계 최초 타이틀도 좋지만, 5G 개통 그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5G를 기반으로 기존 제조업을 혁신해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향상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5G를 구현한 후 자율주행차 같은 미래 산업을 어떻게 육성할지 연구해야 한다. 세계 최초 5G 통신 개통 국가에 머물지 않고, 진정한 5G 산업의 꽃을 피운 나라가 되려면 말이다.

장정훈 산업 2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