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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어, 재판장님 잘 알아듣지 못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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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어, 재판장님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합니다.” 11일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광주지법에 출석한 전두환(88) 전 대통령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또렷했다. 그가 “생년월일이 1931년 1월 18일 맞습니까”라는 판사의 질문에 두리번거리자 법정 경위가 청력보조장치(헤드셋)를 씌워줬다. 전 전 대통령은 이어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인 인정신문에서는 생년월일과 주소 등을 묻는 질문에 모두 “맞습니다”고 답했다. 앞서 전 전 대통령은 지난해 5월 기소된 후 알츠하이머나 독감 등을 이유로 재판에 불출석해 왔다.

광주서 피고인 신분 75분 재판 #청력보조장치 쓰고 꾸벅 졸기도 #서울 돌아와 응급실 들렀다 귀가

전 전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39년 만에 피고인 신분으로 광주지법 법정에 섰다. 1996년 12·12 군사반란, 5·18 당시 내란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후로는 23년 만이다.

전 전 대통령은 이날 광주지법 형사8단독 장동혁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재판에 부인 이순자(80) 여사와 동석했다. 재판 중간중간 이 여사와 말을 주고받던 그는 재판이 길어지자 고개를 젖히고 졸기도 했다. 전 전 대통령이 기소된 후 10개월 만에 진행된 이날 재판은 75분간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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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전 대통령은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고(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사자명예훼손)로 기소됐다. 그는 2017년 4월 펴낸 『전두환 회고록』 제1권에서 “조비오 신부는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일 뿐”이라고 썼다가 재판에 넘겨졌다. 5·18 당시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거짓증언이라는 주장이다.

이날 재판에서 전 전 대통령 측은 자신에 대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전씨 측은 법정에서 “과거 국가기관 기록과 검찰 조사를 토대로 회고록을 쓴 것이며, 헬기 사격설의 진실이 아직 확인된 것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전두환 측 “5·18 특조위, 다수결로 헬기 사격 인정” 특조위 “다수결로 안 했다”

전 전 대통령의 법률 대리인인 정주교 변호사는 “조비오 신부가 주장한 5월 21일 오후 2시쯤 광주 불로교 상공에서의 헬기 사격 여부에 대한 증명이 충분하지 않다”며 “허위사실로 사자(死者)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주장은 잘못됐다”고 했다.

이에 검찰은 “전 전 대통령이 쓴 회고록에 허위 내용을 적시해 조 신부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반박했다. 검찰 측은 또 “국가기록원 자료와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 조사 결과 관련 수사 및 공판 기록, 참고인 진술 등을 조사해 군의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했다”고 덧붙였다.

검찰에 따르면 5·18 당시 헬기 사격은 2017년 1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분석 결과와 지난해 2월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 등의 조사 등을 통해 사실로 확인됐다.

당시 국과수는 광주 전일빌딩에 남아 있는 탄흔의 높이와 방향, 크기 등을 분석한 결과 ‘헬기 사격에 의한 탄흔이 유력하다’는 감정 결과를 내놓았다. 국방부 5·18특별조사위 역시 ‘5·18 당시 육군의 공격용 헬기가 광주시민을 향해 사격을 가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대해 정주교 변호사는 이날 “5·18 헬기 사격을 인정한 2018년 국방부 특조위의 결정은 조사위원으로 위촉된 분들의 다수결로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며 “실체적 진실은 다수결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고 주장했다.

국방부 특조위 관계자는 “9명의 위원 중 1명의 소수의견이 있었다. 위원들이 개인의견을 개진하는 절차를 밟았을 뿐 다수결로 헬기 사격 내용을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한편 전 전 대통령은 귀가 중 신촌세브란스 응급진료센터로 이동해 30분 정도 진료를 받고 오후 8시53분쯤 연희동 자택에 도착했다. 병원 관계자는 “장시간 이동으로 인해 몸 상태가 안 좋아 치료를 받고 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다음 재판은 오는 4월 8일 오후 2시에 열린다.

광주광역시=최경호·김호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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