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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게 죄스럽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아, 저 능선. 한맺힌 백마고지여』
23일 오전11시 강원도철원군철원읍대마리 군사분계선 남쪽 비무장지대 한가운데 구부정하게 솟은 야산.「6·25」는 물론 세계전사 (전사) 상 최대의 격전지로 꼽히는 백마고지에 포성이 멎은지 어느덧 36년.
따가운 햇볕과 자욱한 향연기만이 외로이 선 위령비를 휘감은 「역사」의 현장에 그날의 국군전사(전사) 43명이 다시 모였다.
이들은 6년전 전국에 흩어져 생사조차 모르던 35명이 모여 뒤늦게 만든 「백마고지참전전우회」 (회장 김운기·63·당시28연대 중대장) 회원들.
『먼저 가신 전우들이여. 부끄럽게도 살아남아 우리들이 다시 왔노라.』 고지를 향해 거수경례를 한 주름진 손도, 죽은 전우의 이름을 외치는 목소리도 회한에 떨렸다.
백발「노병」들은 6·25 39주년을 맞아 전쟁기념사업회 (회장 이병형예비역중장·64)의 주선으로 22일 모(모)부대인 백마부대 방문에 이어 이날 37년만에 그 옛날의 격전지를 다시밟은 것.
재회의 감격과 함께 모부대에서 특공무술시범및 병영시찰·땅굴견학등을 한 뒤 밤새 어린애처럼 얘기꽃을 피우던 7순가까운 이들 노병들은 헌병의 안내로 전운이 감도는 민통선을 넘어 고지로 향하면서 숙연해졌다.
52년10월6일부터 15일까지 10일동안 한국군 9사단은 중화기로 무장한채 백마고지 총공세에 나선 중공군 38군소속 3만6천명의 병사와 맞서 1만명의 병력과 형편없는 화기로 무려 24차례나 고지를 뺏고 뺏기는 격전끝에 기어이 탈환, 사수했다.
『통일되면 어머니에게 가려했다며 숨을 거둔 부하들의 모습이 눈에 선해요』 당시 29연대 중대장과 소대장을 각각 지낸 김석구(62·부천시심곡동574) 이수송 (62·서울 이촌동211) 씨는 『살아남은게 죄스럽기까지하다』고 울먹이며 숨져간 전우를 회상했다.
전투중 오른손 둘째손가락을 잘린 신덕희씨 (61·경북청도군) 는 『앞으로 세월이 흘러 우리들이 죽어버리면 누가 이런 얘기를 전하겠느냐』며 「북침설」까지 주장하는 일부 전후세대를 힘주어 걱정하기도 했다.
『모두 20세안팎 청년들이 이 황량한 산모퉁이에서 청춘과 인생을 조국에 바친거요』 일행중 최고령인 신상운씨 (70·서울풍납동87)는 『지금 젊은이들도 그때 우리처럼 통일 의지는 불타겠지요. 그러나 선대가 어떻게 조국을 지켰는지, 분단의 현실이 어떤건지 모른채 때로 감상에 치우치는 것 같아 답답하다』며 주름살 투성이의 눈으로 하염없이 고지를 바라보며 눈시울을 적셨다.
23일오후 1박2일의 일정을 마치고 굳은 악수와 경례를 나누며 뿔뿔이 흩어지는 노병들의 표정은 활기차고 부드러웠다.
『오래삽시다. 할일들이 많아.』 『노병은 죽지않는다. 사라져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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