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컥 받은 돈봉투가 웬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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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경북 봉화군 물야면의 홍모(57)씨는 "옆집 아주머니가 애처로워 못 볼 지경"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5.31 지방선거가 끝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봉화군은 아직도 돈 선거 후유증을 앓고 있다.

공천사례금으로 지역 국회의원 보좌관에게 5000만원을 준 혐의로 21일 구속된 김희문(50.한나라당) 군수 당선자 측이 선거를 코앞에 둔 지난달 말 유권자들에게 4850만원의 돈을 뿌렸다. 이 돈을 유권자들에게 건네주는 데 가담한 군수 당선자 측 운동원 등 15명이 구속됐다. 10만~20만원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돈을 받은 10개 읍.면의 농촌 주민 134명은 불구속 입건됐다.

돈을 받은 주민들은 지금까지도 조사받기 위해 경찰서를 드나들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농사를 짓지만 경찰에 불려다니느라 농번기인 요즘 농사일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다.

가장 많은 45명이 구속.불구속된 물야면은 겉으로는 평온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거리엔 군수의 당선.취임을 알리는 현수막은 눈에 띄지 않았다. 주민들은 불미스러운 사건을 떠올리기 싫은 듯 쉬쉬하는 모습이었다.

농협 이광우(53) 조합장은 "봉화군 전체가 우울하다"며 "선거로 인해 봉화 이미지가 크게 추락한 것은 물론 이웃 간 인심조차 흉흉해졌다"고 말했다.

주민 박모(54)씨는 "서로 잘 아는 사이인데 돈을 돌려주면 자기 편이 아니라는 게 금방 들통나지 않느냐"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돈을 받았다가 문제 된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2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심모(58)씨는 "돈을 받지 않았다고 진술했으나 한 집 건너 다 아는 사람이어서 구설에 오른 것 자체가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라고 후회했다. 지모(58)씨는 "농사일이 많아 선거운동할 처지가 아니어서 마지못해 동네 책임자 일을 떠맡았는데 이런 수모를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농사일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가 더 걱정이다. 행여 징역살이를 하는 건 아닌지, 얼마나 많은 벌금을 내야 하는지 근심이 쌓여만 간다.

면사무소의 한 직원은 "대부분 경찰서 근처에 가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라 충격이 적지 않은 것 같다"면서 "순박한 농민들이 한순간의 실수로 고초를 겪는 것 같아 몹시 안타깝다"고 말했다.

봉화군청도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당선자가 구속된 상태여서 봉화군은 군수 취임식은커녕 당분간 부군수 직무대행 체제로 행정을 이끌어 가야 할 처지가 됐다. 그러나 김제호 부군수가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데다 선임자인 기획감사실장마저 6월 말 정년퇴임하면서 군 집행부의 공백이 우려되고 있다.

◆ 돈 받은 주민들 처벌 어떻게 되나=현행 선거법에 따르면 후보 측에 돈을 요구하거나 받은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벌금 100만원 이상을 선고받을 경우 판결일로부터 5년 동안 선거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봉화=송의호.황선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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