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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못넘은 미세먼지…'피미'족들 강릉으로 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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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4일 대전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김성태 기자.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4일 대전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김성태 기자.

4일 부산 수영구 망미동 배화학교 정원에 벚나무가 연분홍 꽃망울을 터트려 상춘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송봉근 기자.

4일 부산 수영구 망미동 배화학교 정원에 벚나무가 연분홍 꽃망울을 터트려 상춘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송봉근 기자.

#서울 약수동에 사는 이동수(46)씨는 지난 1~2일 연휴 동안 가족과 함께 강원도 강릉으로 ‘미세먼지 피난 여행’을 다녀왔다. 이 씨는 “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들어오는 순간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유령 도시가 떠올랐다”며 “여름 장마철 빼고는 1년 내내 미세먼지에 시달려야 하는 상황을 생각하니 답이 없다”고 말했다.

최근 5일 전국 초미세먼지 분석 #바람 약해 백두대간 못 넘어 #충북은 올해 ‘나쁨’ 넘은 날 41일

#서울 도봉구에 사는 나현수(45)씨는 최근 심각하게 부산으로 이사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나날이 독해지는 미세먼지 때문에 중학교 2학년 아들의 건강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나 씨는 “학교에서는 ‘마스크를 착용시켜 보내라’고 할 뿐 아무런 대책이 없다”며 “아이라도 서울을 벗어나서 살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악의 미세먼지가 최근 수도권을 비롯한 서부 지역을 장악하고 있다. 미세먼지를 피해 동해안 등으로 탈출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백두대간을 경계로 서쪽은 미세먼지가 하늘을 뒤덮었지만, 동쪽은 비교적 오염도가 낮기 때문이다.

서울은 ‘매우나쁨’인데…부산은 ‘보통’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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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가 미세먼지 오염이 가장 심했던 지난달 28일부터 4일 오전 10시까지 5일간 전국 초미세먼지(PM2.5) 농도를 분석한 결과 ‘서고동저(西高東低)’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17개 시도 중에서 세종시가 ㎥당 99.4㎍(마이크로그램, 1㎍=100만분의 1g)으로 가장 높았고, 충남(95.8㎍/㎥)과 전북(95.4㎍), 경기(93.8㎍)가 뒤를 이었다.

서울과 인천, 대전 등도 각각 87.4㎍, 87.8㎍, 81.6㎍으로 ‘매우 나쁨(76㎍/㎥~)' 이상의 고농도를 기록했다. 최근 고농도 발생 지역이 모두 서해안 지역을 따라 집중된 것이다.

반면, 경남은 33.6㎍으로 ‘보통(16~35㎍/㎥)’ 수준에 머무는 등 전국에서 가장 낮았다. 오염이 가장 심한 세종의 3분의 1 수준이다. 부산(36.4㎍)과 울산(39.8㎍), 제주(44.4㎍), 경북(49.2㎍) 역시 비교적 오염도가 낮았다.

미세먼지 오염이 가장 극심했던 4일 오후 3시까지 서울의 일평균 초미세먼지 농도는 116㎍으로 '매우 나쁨' 기준을 한참 초과했지만, 부산은 17㎍, 강릉은 32㎍에 불과했다. 한반도 내에서도 초미세먼지 농도가 7배까지 차이가 난 것이다.

실제로 이날 백두대간 남쪽 경북 상주는 산 넘어 충청권보다 훨씬 시야가 트였다. 상주에 있는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 관계자는 “경북 쪽은 충북 등에 비해 미세먼지가 확실히 덜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주말에 미세먼지를 피해 강릉, 속초 등 강원 영동 지역을 찾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지난 주말(2~3일) 동안 강릉 IC를 빠져나간 차량은 3만2668대에 달했다. 이는 1만9561대였던 2016년 3월 첫째 주말(5~6일)보다 1.7배가량 늘어난 수치다.

“중국발 미세먼지 백두대간에 갇혀” 

4일 오후 5시 기준 전국 초미세먼지 농도 분포. 동서간 농도 격차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한국환경공단 에어코리아 제공]

4일 오후 5시 기준 전국 초미세먼지 농도 분포. 동서간 농도 격차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한국환경공단 에어코리아 제공]

최근 미세먼지의 동서 격차가 크게 나타난 가장 큰 이유는 이동성 고기압을 따라 국내로 유입된 중국발 미세먼지가 백두대간을 넘지 못하고 갇혀 있기 때문이다.

겨울철에는 해발 600~700m 이내에서 공기가 섞이기 때문에 이보다 높은 산이 있으면 미세먼지의 이동을 가로막을 수 있다.

장임석 국립환경과학원 대기질통합예보센터장은 “오염물질이 바람을 타고 동해 상으로 빠져나가야 하는데 바람이 약하다 보니 백두대간을 넘지 못하고 있고, 서부 지역에서는 오염물질이 정체하면서 고농도 현상이 길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동해안에는 깨끗한 동풍이 불면서 미세먼지 농도를 낮추고 있다. 제주와 남부지역 역시 이동성 저기압의 영향으로 간간이 비가 내리면서 미세먼지가 씻겨 내려갔다.

충북 고농도 가장 잦아…“산맥이 미세먼지 병풍 역할”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미세먼지 고농도 발생 사례에서도 동서간 격차가 나타났다.

특히, 충북은 올해 '나쁨' 이상이었던 날이 41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사흘 중 이틀꼴로 고농도 미세먼지가 발생한 셈이다.

박대순 충북도 기후대기과장은 “충북 지역은 삼면이 병풍처럼 산맥으로 막혀 있어 중국이나 충남 등에서 서풍을 타고 유입된 미세먼지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정체되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세종이 35일로 뒤를 이었고, 경기(33일), 전북(32일), 서울(27일) 순으로 고농도 현상이 잦았다. 반면 경남(11일)과 제주(12일)는 미세먼지의 피해가 가장 적었다.

국립환경과학원은 고농도의 미세먼지가 6일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장 센터장은 “확장하는 시베리아 고기압의 영향으로 찬바람이 불면서 6일 밤부터 미세먼지 농도가 낮아지겠지만, 고농도 현상이 해소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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