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인 직장 그만두고 그녀가 26살부터 청소일 시작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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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지 작가가 자신이 펴낸 책 『저 청소일 하는데요?』를 들고 있다. 김경록 기자

김예지 작가가 자신이 펴낸 책 『저 청소일 하는데요?』를 들고 있다. 김경록 기자

"조금 다르게 살아보니 생각보다 행복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좀 다르면 안 되나요?"

신간 『저 청소일 하는데요?』(21세기북스)를 펴낸 김예지(30) 작가가 책의 서문에 적은 글이다. 작가는 청소일을 하며 겪었던 솔직한 경험과 감정을 만화로 그렸고, 그 만화들을 모아 책으로 냈다. 처음에 독립출판으로 출간됐던 책은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좋아 메이저 출판사에서 새로운 편집으로 출간됐다.

책이 화제가 된 데는 저자의 특이한 이력이 한몫했다. 미대에서 서양화과를 전공하고 안정적인 직장에서 상품 스타일리스트로 일했던 저자는 돌연 회사를 그만두고 26살부터 청소일을 시작했다. 5년째 청소일을 하면서 틈틈이 그림을 그렸고 청소일을 하면서 겪은 독특한 경험을 만화로 그려 책을 냈다. 지난달 26일 서울 서소문로 중앙일보에서 김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같이 청소일을 하는 김예지 작가(왼쪽)과 어머니 노승희 씨. 김예지 작가

같이 청소일을 하는 김예지 작가(왼쪽)과 어머니 노승희 씨. 김예지 작가

책 표지

책 표지

청소는 지금 나에게 최고의 생계 수단 

청소일을 시작한 이유가 궁금하다.

무엇보다 가성비가 좋기 때문이다. 예전 나의 직업이나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시간 대비 많은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또한 대학교 강의를 짜듯이 내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일정을 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보통 월·수·금요일은 하루 12시간 정도 청소일을 하고 화·목요일은 작업실에 가서 그림을 그린다.

회사를 그만두기 쉽지 않았을 텐데.

나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어려서부터 만화나 삽화 등 나만의 그림을 그리는 게 꿈이었다. 회사에 다니면 여유 시간이 나지 않았다. 또한 나는 집단생활을 싫어하고 불안 증세가 심했다. 회사에서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매일 봐야 한다는 게 버거운 일이었다.

김예지 작가는 "청소일은 시간 대비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김예지 작가는 "청소일은 시간 대비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처음 청소일을 시작한 계기는.

어머니의 권유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야쿠르트 배달 일을 하셨는데, 내가 회사를 그만두자 같이 청소일을 해보자고 말씀하셨다. 수입도 괜찮고 시간도 자유롭게 쓸 수 있고 직장에서 겪는 인간관계 스트레스도 없어서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 어머니와 함께 일을 시작하게 됐다.

어머니가 먼저 제안했다니 의외다.

나에게 그림이라는 인생의 목적이 있기 때문에, 잠시 수단으로 청소일을 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어머니께서는 항상 '네가 필요하고 맞는다고 생각하면 남의 시선보다는 너에게 맞는 방향으로 가라'고 말씀하신다.

어머니의 교육 방침이 남다른 것 같다.

책에 썼듯이 나는 어머니에게 '자식을 남과 비교하지 않기' '자식을 깎아내리지 않기' 등을 배웠다. 어머니가 보여준 이 행동들은 다 자란 내게도 큰 자양분이 됐고, 미래 부모가 된다면 엄마만큼만 해내고 싶다.

26일 오후 서울 중구 서소문로 중앙일보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김예지 작가. 김경록 기자

26일 오후 서울 중구 서소문로 중앙일보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김예지 작가. 김경록 기자

청소일을 하며 겪은 세상의 편견 

청소일을 하면서 주위의 시선이 불편하지 않았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를 너무 신기하게 쳐다보는 시선이 많았다. 청소는 젊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고, 지나가면서 잘못 본 건가 싶어서 나를 다시 쳐다보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결혼해서 이런 직업을 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는데, 아마 결혼 후 경력 단절로 청소일을 택한 건가 싶어 물어본 듯하다.

지인들의 시선은 어떠했나.

나부터가 친구들에게 청소일을 한다고 이야기하기 전에 이상하게 비밀을 고백하는 사람처럼 말문이 막혔다. 청소일을 한다고 말하면 친구들에게 찰나의 멈칫함이 느껴지고 친구들의 얼굴이 복잡한 표정이 됐다. 솔직히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나에겐 청소일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기에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주변 시선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거 같다.

완전히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할 수 없지만, 주변에 시선에 얽매여 살진 않는다. 시선이 느껴져도 결국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스타일이다. 주위의 시선을 이겨냈다고 할 순 없지만 내 판단에 믿음을 가지고 견뎌냈다.

우리는 모두 평범한 노동자

주로 어떤 청소일을 하는지 궁금하다.

계단 청소나 사무실, 병원, 학원 등을 주로 청소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가정 청소는 하지 않는다. 주로 사무 공간을 청소한다.

사무 공간을 청소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

보통 청소는 사람들이 출근하기 전에 주로 이뤄지기 때문에 사람이랑 직접 마주치는 일이 없다. 지금은 적응도 많이 한 편이라 딱히 어려움은 없는 것 같다.

청소일을 하면서 즐거운 순간은.

엄마와 같이 밥을 먹고 짬짬이 커피 믹스를 타서 마시는 시간이다. 잠깐이지만 꿀맛같이 즐겁다. 사실 청소일을 하면 종일 잠시라도 핸드폰을 보거나 쉴 수 있는 시간이 나지 않는다. 잠깐의 휴식이 나에게는 가장 큰 행복이다.

김예지 작가는 "앞으로 나의 경험을 담은 또다른 책을 내고 싶다"고 했다. 김경록 기자

김예지 작가는 "앞으로 나의 경험을 담은 또다른 책을 내고 싶다"고 했다. 김경록 기자

청소일은 언제까지 할 생각인가.

청소일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생계 때문이다. 다른 일로 생계가 해결될 때까지 청소를 계속할 계획이다. 청소는 생계를 해결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훌륭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간 청소일을 했던 나를 되돌아보면 게으름 피우지 않고 생계를 위해 충실히 살았던 것 같다. 그런 나 자신에게 신뢰감을 느낀다.

앞으로 목표는 무엇인가.

계속 나만의 그림을 그릴 것이다. 또한 내가 불안 장애를 치료했던 과정을 만화로 그려 책으로 내고 싶다.

청소일을 하면서 달라진 생각이 있다면.

이전엔 나도 직업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든 간에 평범한 노동자라고 생각한다. 직업과 관계없이 자기 인생에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멋지다. 청소일을 하면 남들이 안 하는 궂은일을 한다며 고마워하고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 없다. 다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할 뿐이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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