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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귀환...숙소에선 흔적지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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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일 귀환길에 올랐다. 김 위원장은 베트남 하노이 바딘광장에 있는 전쟁영웅ㆍ열사 기념비와 호치민 묘에 들러 헌화를 하고 4박 5일간의 베트남 방문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어 자신의 승용차로 170㎞를 달려 베트남의 국경역인 동당역으로 이동해 이날 오후 12시 35분 중국으로 향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박 5일간의 베트남 방문 일정을 마친 2일 오후 베트남 랑선성 동당역에서 평양행 전용열차에 올라 환송 인파에게 손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박 5일간의 베트남 방문 일정을 마친 2일 오후 베트남 랑선성 동당역에서 평양행 전용열차에 올라 환송 인파에게 손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 뉴스1]

동당역에는 베트남 고위 관계자들과 군 의장대, 군악대, 전통의상인 아오자이를 입은 여성들이 나와 환송했다. 베트남 당국은 지난 26일 그가 도착할 때처럼 하노이~동당을 잇는 1차선을 통제한 채 그의 이동을 도왔다. 지난달 26일 베트남에 도착한 김 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지난달 27~28일)에 이어 1일부터 베트남 공식 친선 방문 일정을 소화했다. 김 위원장의 베트남 방문은 집권 이후 중국을 제외한 처음이자 최장기 해외 방문이란 기록을 남겼다.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의 대북제재 해제를 놓고 벌어진 트럼프 대통령과의 핵담판에 실패하며 이런 기록은 퇴색했다. 현장에서 만난 일본 기자는 “아무런 협의가 이뤄지지 못해 너무 아쉽다. 이 같은 회담이 다시 열리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북미는 이번에 좋은 기회를 놓쳤다. 더 많이 만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박 5일간의 베트남 방문 일정을 마친 2일 오후 베트남 랑선성 동당역에서 환송 인파에게 손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박 5일간의 베트남 방문 일정을 마친 2일 오후 베트남 랑선성 동당역에서 환송 인파에게 손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 뉴스1]

◇웃으며 도착, 쓴웃음으로 출발= 이날 동당역에 도착한 김 위원장은 간만에 환한 웃음을 보였다. 환송객들을 향해 오른손을 들어 감사를 표시했고, 때로는 양손을 모아 위로 올려 흔들기도 했다. 하지만 전날에 이어 지쳐 있었고, 애써 웃음짓는 듯한 모습이었다. 동당역에 도착할 때 보였던 당당함과 패기 대신 힘겨운 표정이 역력했다. 회담을 앞두고 숙소인 하노이 멜리아 호텔에서 두문불출하다시피 하며 올인했던 회담이 깨진 충격파였다. 그가 예정보다 반나절 앞당겨 출발한 이유이기도 하다. 커튼이 드리워져 내부가 보이지 않는 김 위원장의 특별열차는 북한 대표단의 침울한 분위기를 보여줬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일 베트남 하노이 호찌민묘를 참배하고 있다. 핵담판 결렬의 충격탓인지 여전히 눈의 초점이 흐려있다. [사진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일 베트남 하노이 호찌민묘를 참배하고 있다. 핵담판 결렬의 충격탓인지 여전히 눈의 초점이 흐려있다. [사진 연합뉴스]

앞서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베트남 방문의 마지막 일정으로 하노이 바딘광장에 있는 전쟁영웅 및 열사 기념비와 호치민 주석의 묘에 헌화했다. 그동안 머물렀던 호텔을 출발할 때는 승용차에 오르기 전 잠깐 서서 호텔 관계자와 대화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예정보다 10여분 가량 늦은 9시 45분쯤 헌화장소에 나타난 김 위원장은 자신의 이름이 적힌 대형화환을 앞에 두고 묵념했다. 이 때 김 위원장의 달라진 머리모양이 눈에 띄었다. 전날까지 머리기름을 발라 뒤로 넘겼던 앞머리카락을 이마 옆으로 자연스레 늘어뜨린 모습이었다. 현장에선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을 연상시키는 스타일”이라고 평가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일 베트남 방문의 마지막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침울한 표정으로 하노이 호찌민묘에 들어서고 있다. 김 위원장의 머리스타일이 전날과 다르다. 55년전 베트남을 방문한 김일성 주석을 연상케 한다는 평가다. [사진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일 베트남 방문의 마지막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침울한 표정으로 하노이 호찌민묘에 들어서고 있다. 김 위원장의 머리스타일이 전날과 다르다. 55년전 베트남을 방문한 김일성 주석을 연상케 한다는 평가다. [사진 연합뉴스]

1964년 베트남을 찾은 김일성 주석이 호치민 당시 주석을 만나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1964년 베트남을 찾은 김일성 주석이 호치민 당시 주석을 만나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1일 응우옌푸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겸 국가주석 초정으로 1일 만찬에 참석한 김정은 위원장.[사진 연합뉴스]

1일 응우옌푸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겸 국가주석 초정으로 1일 만찬에 참석한 김정은 위원장.[사진 연합뉴스]

◇안갯속 일정= 통제와 해제를 되풀이했던 담판의 현장인 베트남은 일상으로 돌아간 분위기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귀환길에 올랐음에도 북한 경호원 일부는 호텔에 남아 있었다. 불과 몇시간 전과 달리 호텔 출입은 자유로웠지만 여전히 금속탐지기를 통과해야 했고, 김 위원장과 북한 대표단이 각각 머물렀던 멜리아 호텔의 일부층은 여전히 통제상태였다. 북한 대표단이 사용했던 층은 엘리베이터 운행이 멈췄고, 뒷정리가 끝난 층부터 운행이 재개됐다. 뒷정리를 하는 동안 해당층에는 북한 경호원이 배치돼 일반인들의 접근을 막았고, 김 위원장이 사용한 22층은 마지막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호텔 주변에선 “항공기를 이용해 선발대로 도착했던 경호요원들이 김 위원장과 북한 대표단의 호텔 이용 흔적을 지우는 작업을 하는 것 같다”는 얘기가 나온다. 혹시나 남아있을지 모르는 회담 관련 서류나 머리카락 등을 깨끗하게 수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통상 각국 정상들은 타지를 방문할 경우 자신의 건강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머릿카락 등을 남기지 않도록 참모들이 수거해 간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방문기간 머물렀던 멜리아호텔 로비에는 그가 떠난 뒤인 2일 오후까지 금속탐지기가 설치돼 방문객들은 이 곳을 지나도록 했다. 북한 경호원들 일부는 호텔에 남아 일반인들의 접근을 막은채 뒷정리를 했다. 하노이=이근평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방문기간 머물렀던 멜리아호텔 로비에는 그가 떠난 뒤인 2일 오후까지 금속탐지기가 설치돼 방문객들은 이 곳을 지나도록 했다. 북한 경호원들 일부는 호텔에 남아 일반인들의 접근을 막은채 뒷정리를 했다. 하노이=이근평 기자

북한 대표단이 머물렀던 멜리아 호텔. 하노이=이근평 기자

북한 대표단이 머물렀던 멜리아 호텔. 하노이=이근평 기자

북한 대표단 수행원이 사용했던 멜리아 호텔 19층 객실. 하노이=이근평 기자

북한 대표단 수행원이 사용했던 멜리아 호텔 19층 객실. 하노이=이근평 기자

동당역을 떠난 김 위원장의 귀환 경로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심신이 지쳐있는 그가 평양까지 열차로 갈 지, 중간에 비행기로 갈아탈 지 관측이 엇갈린다. 또 그가 귀환 일정을 반나절 앞당긴 이유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면담일정과 관계가 있는게 아니냐는 관측이 있지만 이 역시 예상일 뿐이다. 단, 북한과 중국이 북핵 협상과정에서 긴밀한 공조를 취하는 모습이어서 멀지 않은 시간내 북중 정상회담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복심이었던 김영철의 운명은=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은 지난해 6월에 이어 지난 1월 워싱턴을 찾아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 김 위원장의 특사자격이었다. 그는 북미 핵담판의 실무 총책으로 꼽힌다. 외교를 담당하는 이수용 당 부위원장이 이번 수행단에 포함됐지만 회담현장이 아닌 현지시찰에 주력했다. 정부 당국자는 “과거엔 북한의 외교라인에서 북핵 협상을 했지만 지난해부터는 통일전선부 라인이 주도하고 있다”며 “김영철 부위원장의 위상이 대거 올라갔지만 협상이 실패하며 누군가는 김 위원장의 '빈손귀국'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생길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회담 이후 회담 결렬 배경을 두고 진실공방을 벌이는 기자회견은 이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부상이 맡아 외교라인의 복귀를 알렸다.
하노이=정용수ㆍ이근평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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