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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한복판 뻥 뚫린 건물···월 119만원, 싱글족이 모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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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한은화의 공간탐구생활]이제까지 이런 원룸은 없었다...20대 건축가의 공유주택 

코오롱 하우스비전의 공유주택 '커먼라이프 역삼 트리하우스'를 설계한 멜로디 송. [사진 이지응 작가]

코오롱 하우스비전의 공유주택 '커먼라이프 역삼 트리하우스'를 설계한 멜로디 송. [사진 이지응 작가]

지난해 12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가운데가 뻥 뚫린 집 한 채가 들어섰다.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강남에서 속 비운 건물이라니, 건물의 이름은 ‘커먼라이프 역삼 트리하우스’다. 코오롱그룹의 건설 계열사인 코오롱글로벌의 자회사, 코오롱 하우스비전이 선보인 첫 공유주택이다.

뉴욕대에서 인류학 전공한 90년생 건축가 #이웅열 전 코오롱 그룹 회장이 직접 뽑아 #그룹의 첫 공유주택인 ‘트리하우스’ 설계 #싱글족 72가구가 함께 사는, 새로운 집

싱글족 72가구가 함께 사는 8층 건물(연면적 4793㎡)의 한가운데는 7층 높이까지 뚫려 있다. 이 공간을 가운데 두고, 남과 북에 각 실이 배치되어 있다. 문을 나서면 코앞에 앞집 현관문이 있는 복도식 오피스텔 구조와 다르다.

뻥 뚫린 개방감, 나무가 우거진 1층 공용공간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내 집에 남향의 방이 많도록 평면을 길게 뽑는 아파트와도 다르다. 트리하우스에는 남쪽에 모두가 볕을 쬘 수 있는 루프 탑 테라스를 뒀다.

트리하우스의 전경. 뻥 뚫린 공용공간 양 옆으로 실들이 배치되어 있다. [사진 노경 작가]

트리하우스의 전경. 뻥 뚫린 공용공간 양 옆으로 실들이 배치되어 있다. [사진 노경 작가]

나 혼자만을 위한 집이 아닌, 나와 네가 함께 사는 이 집의 문법은 새롭다. 보수적인 건축 판에서 이 남다른 집을 만들어낸 건축가는 20대다. 코오롱 하우스비전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멜로디 송(29)이다.

예일대 건축대학원을 다니던 그를 2016년 하우스비전에 합류시킨 것은 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이다. 송 디렉터가 앞서 설계한 이태원의 건물을 본 이 전 회장이 그를 직접 찾았다. 그리고 질문 하나를 던졌다. “젊은 사람들을 위한 공유주택을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멜로디 송은 뉴욕대학교에서 인류학을 전공하고, 예일대 건축대학원을 졸업한 뒤 코오롱 하우스비전에 합류했다.[사진 이지응 작가]

멜로디 송은 뉴욕대학교에서 인류학을 전공하고, 예일대 건축대학원을 졸업한 뒤 코오롱 하우스비전에 합류했다.[사진 이지응 작가]

어떻게 답했나.  

“제 생각을 듣고 싶어 하셔서 예일대에서 했던 프로젝트부터 이야기했다. 건축대학원에서 ‘코-리빙(Co-Living)’을 주제로 공부했다. 공장에서 제작한 기본 모듈을 쌓아 만든 집인데 방은 작게, 복도도 하나의 거실이 될 수 있게 만들었다. 함께 사는, 적정 가격의 집이었다. 회장님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고 말씀하시더니, 마침 그런 팀(하우스비전)을 만들었는데 합류하지 않겠냐고, ‘퍼스트 무버’가 되어보자고 하셔서 바로 결정했다. 새로운 타입의 주거를 만들어 보는 게 내 꿈이었다.”

꿈을 바로 이루다니, 운이 좋은 편이다.

“처음부터 일이 주어졌던 게 아니다. 회사 직급으로 따지면 나는 주임이었다. 제안서를 만들었던 게 채택되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제안서에는 디자인부터 예산 계획, 수익구조까지 다 담았다. 경험이 없으니 팀 내에서 배우면서 일했다.”

가운데가 뻥 뚫린 트리하우스. 문 밖을 나서면 1층 공용공간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사진 이지응 작가]

가운데가 뻥 뚫린 트리하우스. 문 밖을 나서면 1층 공용공간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사진 이지응 작가]

중견 건축가도 설득하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 어떻게 실현했나.

“주인의식을 가지고? (웃음) 정말 수시로 디자인을 변경했다. 수익과 디자인을 함께 만지면서 설득력을 높였다. 앞서 한 디벨로퍼가 26~33㎡(8~10평) 규모의 60가구를 제안했다. 나는 방 크기를 확 줄이고, 공유공간을 넓혔다. 72가구로 늘어났고, 수익률이 높아졌다. 아름다운 디자인으로만 설득시킬 수 없다.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득해야 한다.”

자동차도 없고 작아도 좋다…새로운 타입의 주거는  

트리하우스의 각 실은 작다. 가장 작은 복층형 방의 경우 침대가 놓이는 다락 면적을 제외하고 실사용 면적이 16.5㎡(5평)다. 가장 넓은 펜트하우스도 36.4㎡(11평)밖에 안 된다. 한 달 렌트비는 관리비를 제외하고 119만~159만원이다.

대신 방 밖이 넓다. 1층은 공용공간이다. 주방ㆍ세탁실ㆍ서재 및 사무공간으로 쓸 수 있는 라운지를 갖췄다. 가운데가 뻥 뚫리게 디자인했지만, 용적률(건축물 대지면적 대비 연면적 비율)은 226%로, 법정 한도(230%)에 가깝게 확보했다. 가운데를 뚫은 대신 양옆의 실들을 피라미드처럼 쌓아 면적을 확보한 덕이다. 디자인으로 수익성을 확보했다.

각 실마다 작은 조리공간이 있고, 1층 공용공간에 넓은 오픈 키친을 뒀다. [사진 노경 작가]

각 실마다 작은 조리공간이 있고, 1층 공용공간에 넓은 오픈 키친을 뒀다. [사진 노경 작가]

'애완동물 대환영'이라는 트리하우스. 애완동물을 씻길 수 있는 공간도 갖췄다.[사진 이지응 작가]

'애완동물 대환영'이라는 트리하우스. 애완동물을 씻길 수 있는 공간도 갖췄다.[사진 이지응 작가]

16.5㎡ 렌트비가 119만원, 비싸지 않나.

“방값만이 아니다. 전체 공간을 사용하는 비용이다. 트리하우스는 하나의 집(One House)이다. 커뮤니티를 위한 큐레이션 서비스를 위해 내는 돈이기도 하다. 12월 오픈했는데 적극적인 홍보 없이도 48가구가 입주했다. 평균 30대 초반으로 유학파ㆍ외국인 등 글로벌 노마드가 많다. 단순 세입자라기보다, 경험을 나누고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커뮤니티의 멤버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공간 규모와 가격이 비례하는 기존 시장 룰과 다르다.

“국내 스타트업이 개발한 취미ㆍ레저 앱 ‘마일로’에서 35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해봤다. 소득층 상관없이 응답자 절반이 방이 작아도, 16.5㎡의 복층이라도 전체 공간이 좋으면 임대료를 낼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절반이 자동차가 없다고 했다. 트리하우스의 주차공간은 1가구당 0.6대다. 딱 법정 주차대수만 채웠다. 대신 입주민 대상으로 스타트업 ‘링커블’이 운영하는 커뮤니티 카셰어링 서비스를 제공한다. 주차장을 위해 지하를 덜 파니 공사비도 절감했다. 트렌드를 더하니 가장 합리적인 안이 됐다.”

 7층 '미니멀 라이프' 실의 모습. 다락을 뺀 실 면적은 16.5㎡로, 층고는 3.6m다. 작은 공간이지만 욕조를 뒀다. 전동 블라인드는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가게 해 하늘을 볼 수 있게 했다. [사진 이지응 작가]

7층 '미니멀 라이프' 실의 모습. 다락을 뺀 실 면적은 16.5㎡로, 층고는 3.6m다. 작은 공간이지만 욕조를 뒀다. 전동 블라인드는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가게 해 하늘을 볼 수 있게 했다. [사진 이지응 작가]

5층 '캣 라이프' 실의 모습. 창틀 선반이 캣워크 역할을 하게 했다.[사진 이지응 작가]

5층 '캣 라이프' 실의 모습. 창틀 선반이 캣워크 역할을 하게 했다.[사진 이지응 작가]

4층 '노마드 라이프' 실의 모습. [사진 이지응 작가]

4층 '노마드 라이프' 실의 모습. [사진 이지응 작가]

실제로 트리하우스에서 산다고 들었다.

“이수역 근처 원룸에서 살다가 오픈 이후부터 살고 있다. 원룸에 살 때 새로 이사 가면 한국에서는 떡을 돌린다는 생각에 떡을 돌렸는데 사람들이 문을 안 열어줘서 충격받았다. 복도도 무서웠다. 그래서 트리하우스에서 하나의 건물, 하나의 집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이웃 문화를 만들고 싶다.”

함께 사는 것, 어색하지 않나.

“물론 어렵다. 하지만 가치가 있다. 함께 배워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독한 사회지 않나. 느슨한 연대의식이 더욱 주목받을 것 같다. 함께하면 기회를 만들고, 시너지를 낼 수 있다.”

공간이 사람을 변화시킨다

멜로디 송은 미국 뉴욕대학교에서 인류학을 전공했다. 공원에서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다, 공간이 사람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게 됐다. 그래서 예일대 건축대학원에서 도시 계획과 주거를 공부했다. 그는 “모든 공간은 정치적”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미국의 집에서 주방은 뒤쪽에 있다. 거실이나 손님 접대 공간을 앞에 뒀다. 1890년대 뉴욕에서 여성 운동권이 강화됐을 때 주방을 집의 가운데에 두는 평면이 나왔다. 이 변화는 여성이 주방에서 일하면서 손님을 응대케 하는 인간관계의 변화를 만들었다.

송 디렉터는 “아직도 한국은 1950년대 미국처럼 ‘모든 것을 소유하고 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의 경우 도시 외곽의 전원주택에서 가전제품 가득한 주방에서 행복한 웃음을 짓는 가정주부의 광고가 한창일 때 종일 혼자 있어 우울증을 겪는 주부들이 늘어 심리학이 발달했다”며 “혼자보다 함께 할 때 건강하고 효율성도 높다”고 덧붙였다.

트리하우스의 모습. 뾰족한 나무 모양의 집은 용적률과 사선제한과 같은 법 규제 속에 최적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나온 디자인이다.[사진 노경 작가]

트리하우스의 모습. 뾰족한 나무 모양의 집은 용적률과 사선제한과 같은 법 규제 속에 최적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나온 디자인이다.[사진 노경 작가]

한국의 집은 사람들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나.

“집은 사는(Living) 곳이 아니라 부동산이지 않나. 상품으로써 평균적인 공간을 많이 만들다 보니 유연하지 못하다. 3인 가족이 아닌 다른 형태의 가족 구성원이 앞으로 많아지지 않을까. 수익성을 높이려다 보니 건축물의 질도 낮은 경우가 많다.”

가장 이상적인 주거 모델을 꼽자면.

“오스트리아 빈의 사회주택이다. 시민의 70%가 정부가 제공하는 소셜 하우징에 산다. 친구들의 집에서 많이 머물러보니 소셜 하우징인데도 질도 높고 합리적이다.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매년 꼽히는 이유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가장 넓은 8층 펜트하우스. [사진 이지응 작가]

가장 넓은 8층 펜트하우스. [사진 이지응 작가]

6층 '테라스 라이프'.[사진 이지응 작가]

6층 '테라스 라이프'.[사진 이지응 작가]

3층 '피메일 라이프'. 싱크대와 침대 사이 움직이는 책상을 뒀다.[사진 이지응 작가]

3층 '피메일 라이프'. 싱크대와 침대 사이 움직이는 책상을 뒀다.[사진 이지응 작가]

나무로 둘러싸인 1층 라운지의 모습.[사진 이지응 작가]

나무로 둘러싸인 1층 라운지의 모습.[사진 이지응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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