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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시시각각] ‘친일잔재 청산’을 넘어서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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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호 30면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어제는 3·1운동 100주년, 오는 4월 11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기념비적인 해를 맞이해 그 의미를 되새기는 작업이 곳곳에서 한창이다. 영화와 방송 프로그램, 문화행사, 학술심포지엄, 서적 출간 등이 잇따른다. ‘역사바로세우기’도 한창이다. 우선 유관순 열사의 서훈이 1등급으로 격상됐다. 논란도 있지만 독립운동사에서 배제돼온 이름 없는 여성·청소년을 배려한 상징성이 크다. 교육계, 지자체 단위의 ‘일제잔재 청산’ 움직임도 활발하다. 친일파가 작곡한 교가 퇴출, 지명 바꾸기, 일본식 석등이나 학교 조회대 같은 조형물 철거작업까지 이뤄진다. 경기도 고양시와 여주시는 ‘친일파’ 김동진이 작곡한 시가(市歌)를 부르지 않기로 했다. 서울 성북구청은 도로명 ‘인촌로’를 ‘고려대로’로 바꿨다. 아예 잔재청산 TF를 만든 지방 교육청도 있다. ‘유치원’은 일제잔재 용어니 ‘유아학교’로 바꾸자는 제안도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친일파의 집이나 적산가옥 보존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도 나온다.

3·1 운동 100년 맞아 또다시 주목 #이제는 미래지향적 화두 내놓을 때

문재인 대통령도 이를 언급했다. 3·1절 기념사를 통해 “친일잔재 청산은 오래된 숙제이자… 공정한 나라의 시작”이라고 거듭 의지를 밝혔다. 대통령은 지난달 청와대에서 열린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에서도 정권의 눈치를 보거나 인권을 경시하는 권력기관 병폐를 ‘일제잔재’로 규정했다.

그런데 이런 ‘친일잔재 청산’ 열기에는 염려스러운 부분이 있다. 우선 일본식 조어를 뜯어고치자 한다면, 일제가 번역해 들여온 자유·권리·개인·민주주의·헌법·철학·예술·사회·문화 같은 수많은 근대 개념어들은 다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가 있다. 여전히 모호한 친일의 경계는 무엇인지, 식민의 역사는 식민의 역사대로 기억·보존하는 것도 그를 극복하는 방법 아닌지, 답 없는 질문이 한둘 아니다. 정작 젊은 세대들은 ‘뉴트로(New-tro)’ 열풍이라며 1920~30년대 문화를 새롭게 즐기고 있으며, 일본풍이 문제라면 왜 미국풍은 문제가 아닌지도 의문이다.

아니 그보다도 3·1운동 100년의 핵심적인 화두가 아직도 잔재 청산, 단죄와 분노라면, 우리 사회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가기 힘든 것은 아닌가 생각도 든다. 많은 역사학자의 지적대로, 싫든 좋든 우리 근대성의 바탕은 일제강점기의 유산이고, 조선시대 성리학처럼 상당 부분 우리의 일부가 돼버렸다. 일제의 유산 중 문제가 되는 것을 꼭 집어 바로잡는 것과 모든 악의 뿌리인 일제시대로 거슬러 그 잔재를 싹쓸이하자는 것은 얘기가 다르고, 현실적이지도 않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3·1운동의 의의는, 그 결과로서 임시정부 수립을 통해 제국에서 민국으로, 군주정에서 공화정으로, 전통에서 현대로 일대 전환을 맞이한 것”이라며 “민주공화정 100주년인 올해가, 지난 100년의 기억에서 미래로 가는 중대한 전환점이 되길 소망한다”고 썼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도 “100년 전 우리는 대한제국의 백성이나 일제의 황국신민이 아닌 자유·평등·주권·평화를 위해 행동하는 세계시민이었다”며 “항일·독립·민족이란 좁은 해석을 넘어 세계의 보편주의를 품는 일대 시각의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는 항일과 민족을 넘어 미래와 세계를 볼 때라는 제언이다.

덧붙이자면 서울시는 3·1운동 100년 기념행사로, 덕수궁 담벼락을 온통 흰 천으로 휘감아 고종의 장례를 재현한 설치 작업 ‘100년 만의 국장’을 선보였다가 몰매를 맞았다. 바람에 퍼덕이는 흰 천들이 처연한 느낌을 자아내지만, 3·1운동과 고종의 생뚱맞은 조합이 난센스다. 비운에 간 왕과 나라를 빼앗긴 백의민족의 슬픔을 거대하게 전시해, ‘반일 민족주의’ 프레임으로 보면 감동적인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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