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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평화·경협만으론 ‘비핵화 허들’ 못 넘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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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호 30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한반도 정세는 속도 조절이 불가피해졌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3·1절 기념사에서 ‘신한반도 체제’ 구상을 변함없이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평화경제의 시대를 열겠다”며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방안을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했다. 남북 철도·도로를 잇고, 남북이 혜택을 누리는 경제공동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비핵화 요구를 거부하고 대북 제재의 전면적 완화를 요구한 결과,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된 지 만 하루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우리 대통령이 대대적인 남북경협을 꺼낸 것이다. 민감한 현안인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제재를 풀 뜻까지 너무 성급하게 내비쳤다.

하노이회담 결렬 뒤 나온 대통령 발언 #비핵화 언급 드물고 제재 해제에 방점 #한미공조, 냉정한 외교만이 해결 열쇠

하노이 정상회담이 ‘노딜(No deal)’로 끝나면서 문 대통령이 다시금 북·미 간 견해차를 좁히는 ‘촉진자’ 역할을 하게 된 정황은 맞다. 하지만 일에는 순서가 있다. 260일 만에 재회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빈손으로 귀국하게 된 건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한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 요구는 거부하고, 북한의 목줄을 죄어온 안보리의 5대 핵심 제재 해제만 집요하게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상회담 하루 뒤 발표한 3·1절 기념사에서 문 대통령은 북한에 비핵화만이 해답임을 똑 부러지게 촉구했어야 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의 기념사에는 ‘비핵화’란 말이 딱 두 번 나온다. 그 두 번도 북한에 적극적으로 비핵화를 촉구하는 맥락과는 거리가 멀다. ‘평화’란 말이 27번이나 나온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한반도 평화와 남북 화해를 갈망하는 문 대통령 마음은 이해한다. 그러나 하노이 회담의 결렬은 천하의 미국 대통령조차 국제사회의 철칙인 ‘북한 비핵화 허들’을 넘지 못하면 어떤 ‘딜’도 할 수 없다는 걸 일깨워줬다. 그런 만큼 문 대통령은 긴밀한 한·미 공조 바탕 위에서 북한 전역의 핵 폐기와 리스트 제공 등 담대한 조처를 하는 것만이 제재 해제의 열쇠라고 주문했어야 했다.

미국과는 부실한 공조 망부터 되살려야 한다. 청와대는 대변인이 회담 결렬 25분 전 “남북대화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하는가 하면, 문 대통령과 비서진이 북·미 정상의 서명식을 TV로 지켜보는 이벤트까지 준비했다가 망신을 샀다. 한·미 간에 정보 공유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희망적으로 과신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에만 몰두하다 보니 대미 공조 전선에 구멍이 뚫린 결과로 볼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이른 시일 안에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한·미 간 정책 혼선을 해소하고, 일치된 대북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섣부른 제재해제 요청은 금물이다. 압박과 대화를 병행하는 현실주의 외교로 북한이 비핵화에 응하지 않고선 배겨날 수 없는 상황을 조성하는 게 최선의 길이다. 주변 열강들의 협력도 중요하다. 특히 미국의 대북정책에 영향력이 큰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시급하다. 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일본과의 협력도 강화하겠다”고 밝힌 건 그런 점에서 적절했다. 행동을 통해 그 의지를 입증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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