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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담 4시간 만에 결렬 발표…65시간 기차타고 온 김정은 빈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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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28일 메트로폴 호텔에서 확대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트럼프 대통령, 이연향 통역관,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 이용호 외무상, 신혜영 통역관, 김 위원장,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AFP=연합뉴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28일 메트로폴 호텔에서 확대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트럼프 대통령, 이연향 통역관,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 이용호 외무상, 신혜영 통역관, 김 위원장,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AFP=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직감은 틀렸다. 김 위원장은 28일 오전 8시55분(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단독 정상회담을 앞두고 메트로폴 호텔에서 만나 “나의 직감으로 보면 좋은 결과가 생길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은 미묘했다.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며 “서두르지 않겠다”는 말을 세 번 반복했다. 하노이 정상회담의 기대치를 낮추는 제스처였다.

롤러코스터 같았던 하노이 회담 #확대회담에 볼턴 참석 이상기류 #오찬 예정시간 30분 넘기자 술렁 #백악관 “하노이선언 서명식 취소” #오후 4시 하려던 회견 2시간 당겨

전날 만찬에서 “(이번 회담이) 1차 정상회담과 같거나 더 대단할 것”(트럼프), “모든 사람이 반기는 훌륭한 결과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김정은)는 말의 성찬을 내놓은 것과는 톤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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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류는 사실 27일 오후부터 감지됐다. 미국의 비핵화 의지가 상당히 강경해 “모든 것이 합의될 때까지는 아무 것도 합의해줄 수 없다”는 게 미국 입장이라는 말이 돌았다. 28일 새벽 협상 과정에 정통한 소식통은 “김정은에게 달려 있다”며 “미국은 카드를 던졌고, 준비가 돼 있다. 김 위원장이 그 카드를 받을지 봐야 한다. 아직 모른다”고 전했다.

이상기류가 본격화한 건 단독회담 후다. 단독회담을 예정대로 약 30분 만인 9시36분에 끝낸 양 정상은 중앙정원을 산책한 뒤 9시45분 확대회담에 돌입했다. 확대회담은 배치부터 미묘했다. 참석자 수를 맞추는 것이 정상회담 관례지만 통역을 포함해 미국이 5명, 북한은 4명이 참석했다. 미국의 추가 참석자는 대북 강경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었다. 북한의 비핵화 실질 조치가 없다면 제재 완화도 없다는 ‘배드 캅(bad cop)’이 벤치가 아닌 본게임에 등장한 것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확대회담을 기자들에게 공개한 자리에서 김 위원장에게 백악관 출입기자가 “비핵화를 할 준비가 돼 있느냐”고 묻자 김 위원장은 “만약 비핵화 의지가 없다면 내가 여기 왜 왔겠는가”라고 답했다. 평양 미국 연락사무소 설치에 대해 기자들이 김 위원장에게 질문하자 북측 실무진이 저지하려 했고, 그 순간 트럼프 대통령이 “흥미로운 아이디어”라고 말을 잘랐다. 이후 김 위원장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좋을 것”이라고 답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확대회담이 비공개로 전환된 후 업무오찬이 예정된 11시55분에서 30분이 지났지만 오찬장은 텅 비어 있었다. 백악관 현장 기자들은 오찬장 테이블에 물은 채워져 있지만 참석자는 없는 모습을 사진으로 공개하며 “조짐이 이상하다”고 전했다.

약 10분 뒤인 12시35분, 백악관 세라 샌더스 대변인이 기자들을 찾아 “일정에 변화가 생겼다”고 전했다. 기자단은 대기하다 1시쯤 백악관의 안내로 회담장에서 철수해 대기 차량에 탑승했다.

백악관은 1시37분, 샌더스 대변인 명의로 “(양 정상이) 비핵화와 경제발전을 이끌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논의했다”면서도 “이번엔 아무런 합의도 이뤄지지 않았으나 (북·미) 양측은 미래에 만날 것을 고대한다”고 밝혔다. 회담 결렬이 공식화됐다. 양 정상이 오전 8시55분에 만난 지 4시간40여 분 만이었다. 2시5분으로 예정됐던 ‘하노이 선언’ 서명식은 취소됐고, 4시 진행 예정이었던 기자회견은 2시간 앞당겨졌다.

기자회견도 지난해 싱가포르보다 짧고 분위기도 가라앉았다. 지난해 싱가포르 회견에선 북한 경제개발 가능성을 다룬 짤막한 영상을 먼저 트는 ‘깜짝 쇼’를 한 뒤 화려하게 등장했었다. 그러나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폼페이오 장관이 함께 단상에 서서 결렬 쟁점을 설명했다.

기자회견 후 트럼프 대통령은 바로 노이바이 공항으로 직행,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탑승, 베트남을 떠났다. 오후 5시25분쯤 “하노이의 환대에 감사한다”는 요지로 마지막 트윗을 남겼다. 65시간40분을 열차로 달려온 김 위원장과 대서양을 가로질러 지구 반 바퀴를 날라온 트럼프 대통령 모두 빈손으로 귀국하게 됐다.

하노이=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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