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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영란 전 대법관, 서강대 석좌교수직 사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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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3일 당시 대입제도개편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김영란 전 대법관이 공론화 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8월 3일 당시 대입제도개편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김영란 전 대법관이 공론화 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영란 전 대법관이 최근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석좌교수직을 사임했다. 김 전 대법관은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2010년 10월부터 약 8년간 서강대 로스쿨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왔다. 이 때문에 갑작스러운 사의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로스쿨 10년째, 실무 교육 점점 약화되는 현실 반영” 지적도

김 전 대법관은 “그동안 학생들의 요청이 있어 강의를 계속 이어왔지만 이제 그만둘 때라는 생각이 들어 사표를 제출하게 됐다”며 “그동안 못 썼던 책도 쓰고 내 공부도 더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강대 로스쿨 교수 및 학생들에 따르면 김 전 대법관은 민사실무판례 등 실무 과목 위주의 수업을 했다. 수업은 학생들 사이에서 항상 인기가 많았다. 서강대 로스쿨의 한 교수는 “학생들 입장에서 실무 교육을 전직 대법관에게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았겠나”라며 “김 전 대법관도 열의를 갖고 수업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김 전 대법관의 사표를 두고 일각에서는 ‘100% 자의는 아닐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서강대 로스쿨의 한 교수는 “로스쿨 출범 자체가 학자 출신 교수들로 구성돼 이뤄졌던 만큼 뒤늦게 합류한 실무 출신 교수들은 학사 의사 결정에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전 대법관 역시 실무 출신인 만큼 예외는 아니었을 거라는 이야기다.

서울 시내 또 다른 로스쿨 교수는 “비단 한 로스쿨이라고 할 게 아니라, 대다수의 로스쿨이 실무 출신의 교수들과 학자 출신의 교수들로 나뉘어져 있다”며 “진영별로 편을 갈라 다른 편을 은근히 무시하거나 한 세력이 ‘집권’하면 다른 편을 배척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로스쿨, 10년 간 고시학원화" 실무 수업 후퇴 비판

전국법학전문대학원 학생협의회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이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인근에서 열린 '전국법학전문대학원 총궐기대회'에서 로스쿨 교육 정상화, 변호사시험 합격률 정상화 등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전국법학전문대학원 학생협의회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이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인근에서 열린 '전국법학전문대학원 총궐기대회'에서 로스쿨 교육 정상화, 변호사시험 합격률 정상화 등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일각에선 김 전 대법관의 퇴임과 10년을 맞은 로스쿨의 실무 수업 후퇴를 연결하기도 한다. 풍부한 실무 교육을 통해 준비된 법조인을 양성한다는 취지로 시작된 로스쿨이 결국 변호사 시험을 위한 ‘학원’으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이미 다수의 로스쿨 학생들은 입학하자마자 변호사시험 학원에 등록하고 있어 ‘로스쿨이 고시학원화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로스쿨 학생은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해가 갈수록 점점 낮아지면서 학생들 입장에서도 시험 합격 가능성을 높이게끔 하는 공부를 할 수밖에 없다”며 “모의재판이나 실무 수업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합격률 문제는 차치하고, 애초 로스쿨 취지에 맞는 법조인 양성을 위해선 현재의 변호사시험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전국 25개 로스쿨 재학생·졸업생으로 구성된 ‘전국 법학전문대학원 학생협의회’ 측은 "변시 합격률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학생들이 특성화된 법조인 양성 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시험 공부에만 매몰돼 가고 있다"며 "로스쿨 도입 취지에 맞게 변시를 자격시험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사가 보도된 후 서강대 측은 26일 중앙일보에 “김 전 대법관이 이미 오래 전부터 사의를 표해 왔다”며 “학교와 문제가 됐던 부분은 없었다”고 밝혀왔다. 서강대는 또 “김 전 대법관은 석좌교수로 로스쿨이 아닌 본교 차원에서 계속 계약 연장을 해왔지만, 올해에는 김 전 대법관이 계약 연장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퇴임식도 김 전 대법관의 뜻에 따라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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