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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과 멀어지는 당심…한국당 내 “이대론 총선이 더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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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오른쪽)이 25일 비상대책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최근 불거진 당의 우경화에 대해 ’극단적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왼쪽은 나경원 원내대표. [뉴시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오른쪽)이 25일 비상대책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최근 불거진 당의 우경화에 대해 ’극단적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왼쪽은 나경원 원내대표. [뉴시스]

“신한국당부터 따져봐도 당심과 민심이 이렇게 달랐던 적이 없는 것 같다. 대중정당, 수권정당을 표방하는 우리 당이 어쩌다 이런 상황에 오게 된 건지….”

일반인 여론조사선 오세훈 1위 #한국당 지지층선 황교안 1위 #황교안 체제 외연확장 한계 우려 #“당심·민심 차이 줄이는 게 급선무”

자유한국당 소속 수도권의 한 중진 의원은 25일 한숨을 내쉬며 “전당대회를 마쳐도 걱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국당에선 이런 고민이 확산하고 있다. 전당대회 기간을 거치며 당심(黨心)과 민심(民心)의 괴리가 극명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내년 총선은 물론 정권 탈환도 물건너 간다는 얘기가 나돈다.

이번 한국당 전당대회는 수권을 향한 미래 비전보단 ‘과거사 이슈’에만 매몰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5·18 폄훼’ 논란의 당사자인 김진태·김순례 의원은 각각 당 대표와 최고위원 후보로 나서서 태극기 부대 등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정당성’이나 ‘태블릿PC 조작설’ 등 이미 사법 판결 결과를 부정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이런 주장들은 당내에선 환호를 받고 있지만 전체 여론과는 동떨어진 흐름이다.

이런 당심과 민심의 괴리는 한국갤럽이 22일 발표한 한국당 대표 후보 선호도 결과에서 잘 드러난다. 이 조사에서 전체 국민에선 오세훈 후보가 37%로 선두였고, 황교안 후보(22%), 김진태 후보(7%)가 뒤를 이었다.

하지만 한국당 지지자만을 대상으로 했을 때는 황 후보가 52%로 1위를 차지했고, 오 후보는 24%, 김 후보는 15%를 얻었다. 24일 리얼미터가 한국당 지지자 700명 대상으로 한국당 대표 선호도 조사에서도 황 후보는 60.7%로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이어 김진태 후보가 17.3%로 2위, 오세훈 후보는 15.4%로 3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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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당 관계자는 “황 전 총리가 박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해 부정적 뉘앙스를 내비쳤고, 태블릿PC에 대해서도 조작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당심을 더 얻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전당대회만 놓고보면 어느 정당이나 당심의 비중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후보들이 당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차기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제1 야당이면 당심과 민심의 괴리 현상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특히 향후 한국당의 외연확장을 위해 집중 공략을 해야 할 무당층(오세훈 23%, 황교안 20%, 김진태 5%)과 바른미래당 지지층(오세훈 58%, 황교안 23%, 김진태 7%)에서도 황 후보는 오 후보에게 밀렸다. 이는 설령 한국당에서 황교안 체제가 출범하더라도 중도층 흡수에 애를 먹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처럼 한국당의 당심과 민심이 벌어진 건 ‘탄핵 전후의 상처’를 원인으로 꼽는 지적이 많다.

한국당의 한 의원은 “이 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며 “자신들이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고, 이후엔 ‘적폐 세력’처럼 낙인이 찍혀 고립무원 처지로 내몰리면서 맺힌 한이 깊다. ‘이런 목소리는 곤란하다’는 이성이 ‘속이 후련하다’는 감성을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당이 당심과 민심의 괴리를 방치하면 내년 총선에서 큰 난관에 부딪힐 것이라고 경고한다.

엄태석 서원대 행정학과 교수는 “아무리 전당대회라지만 후보들의 메시지가 각종 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국에 전달된다. 그런데 마치 특정 지역이나 특정 세력을 위한 맞춤형 메시지만 나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지난 지방선거 때도 ‘홍준표식 막말 정치’를 방치했다가 TK 지역당으로 전락했던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중도층을 모으지 못하면 전국 규모의 선거는 이길 수 없다”며 “신임 당 대표는 민심과 당심의 차이를 줄이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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