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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군의회 의장 '말실수'로 날아간 의정비 21% 인상

중앙일보

입력

의정비 인상 일러스트. 오른쪽은 회의를 진행하는 최등원 완주군의회 의장. [사진 완주군의회]

의정비 인상 일러스트. 오른쪽은 회의를 진행하는 최등원 완주군의회 의장. [사진 완주군의회]

의원들은 “이의 없다”는데…돌연 “부결” 선포

지난 22일 전북 완주군의회 본회의장. 최등원 군의회 의장이 의원들에게 “원안에 대한 이의가 없습니까?”라고 물었다. 올해 군의원들의 월정수당을 18.65% 올리는 수정안이 부결되자 이미 상정돼 있던 원안(월정수당 21.15% 인상)에 대한 의원들의 의견을 물은 것이다. 월정수당은 지방의원에게 지급하는 월급 개념의 수당이다.

의원들은 인상안 "이의 없다" 했는데, 완주군 의회 의장 "부결" 선포 #지방자치법상 표결은 의장이 선포…실수 아닌 '의도적 선포' 시각도

최 의장의 물음에 군의원들은 “이의가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최 의장은 “이의가 없으므로 (원안이) 부결됐음을 선포합니다”라며 의사봉을 세 번 내리쳤다. “이의가 없으므로 가결됐습니다”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반대로 “부결”을 선포한 것이다.

회의에 참석한 군의원은 이런 내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본회의장을 빠져나왔다. “수정안이 부결됐다”고 이해한 군의원도 있었다. 이날 군의원들은 의정비 인상에 대한 비난 여론을 의식한 듯 애초 월정수당을 21.15% 올리려던 ‘원안’ 대신 인상폭을 낮춘 ‘수정안’을 놓고 투표했다. 최 의장은 투표 결과 찬성 5표, 반대 5표, 기권 1표로 수정안이 부결되자 원안에 대한 가부 여부를 의원들에게 물었다.

지난해 12월 26일 전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관계자들이 완주군의회 의정비 인상과 관련한 '주민 여론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26일 전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관계자들이 완주군의회 의정비 인상과 관련한 '주민 여론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방자치법상 효력…“표결결과는 의장단이 선포”

이날 투표 과정에 대한 문제점은 시민단체의 지적 때문에 외부로 알려졌다. 회의를 지켜본 참여자치 전북시민연대 측이 “의장이 분명히 ‘원안 부결’을 선포했다”며 사무국에 회의록 확인을 요청한 것이다.

완주군의회 사무국 측은 “회의록을 확인한 결과 ‘원안 부결’로 돼 있어 일단 인상안은 부결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법상 “의회에서 진행된 표결 결과는 의장단이 선포한다”고 규정돼 있어서다. 완주군의회 사무국 관계자는 “지방자치법에 따라 표결 결과는 의장이 선포한 내용대로 효력이 발생한다”며 “최 의장의 최종 의견을 들은 뒤 25일께 집행부인 완주군에 해당 내용을 통보할 예정”이라고 했다.

집행부가 부결 통보를 받으면 군의원들의 의정비는 지난해 수준으로 동결된다. 의원들은 다음 임시회가 열리는 3월 중에 의정비 인상안을 재상정할지를 놓고 논의할 예정이다.완주군의회의 경우 재적의원(11명) 5분의 1 이상(3명)이 발의하면 의정비 인상안을 다시 표결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26일 전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관계자들이 완주군의회 의정비 인상과 관련한 '주민 여론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26일 전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관계자들이 완주군의회 의정비 인상과 관련한 '주민 여론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각선 “의도된 행동”…“단순한 말실수 아니다”

일각에서는 최 의장의 행동을 단순한 말실수가 아닌 ‘의도된 선포’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의정비 인상폭이 과도하다고 판단한 최 의장이 본회의 직전 의원들을 설득해 올린 수정안이 부결되자 원안까지 부결시켰다는 분석이다.중앙일보는 최 의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앞서 완주군에서는 군의원들의 의정비 인상을 놓고 시민사회단체와 주민들이 반발해왔다. 군의원들의 월정수당을 한 번에 20% 이상 올리는 데 대한 비난이다. 완주군의원 등 지방의원들은 이 월정수당에 의정활동에 필요한 자료수집이나 연구비 명목으로 지원되는 ‘의정활동비’를 합쳐 지급받는다. 전국적으로 동일하게 적용되는 의정활동비는 광역의원 1800만원(연 총액), 기초의원 1320만원이다.

완주군의회는 올해 월정수당을 기존 188만7840원에서 21.15%(39만9270원) 올리는 안을 추진해왔다. 군의원들은 월정수당이 228만7110원(연간 2744만5320원)으로 인상되면 연간 의정활동비(1320만원)를 합쳐 총 4064만5320원을 받게 된다. 참여자치 전북시민연대 관계자는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추진해온 의정비 인상안이 황당한 의사 진행 탓에 부결로 마무리된 격”이라며 “주민 갈등과 사회적 논란을 불러온 의정비 인상 문제에 대해 사과하고 의회 본연의 임무에 매진할 때”라고 말했다.

완주=최경호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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