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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교육 사다리’는 공교육 내실화로 재건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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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정재홍 기자 중앙일보 부데스크
정재홍 콘텐트제작에디터·논설위원

정재홍 콘텐트제작에디터·논설위원

중앙일보가 지난 13~14일 보도한 ‘무너진 교육사다리’ 시리즈는 한국 교육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서울 강남의 사교육 시스템이 성남 분당을 넘어 용인 수지로 확장됐다. ‘사교육 특구’가 된 용인은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영·수 2등급 이상 비율이 2015년 13.6%로, 10년 전보다 두 배 가량 많아졌다. 또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재학생의 절반 정도가 소득 상위 20%에 해당했다. 부모의 교육 투자가 자녀의 성적 상승으로 이어지며 상위권 대학에 고소득층이 많이 몰린 것이다.

교육이 자녀 소득 결정하며 사교육 성행 #공교육 내실화 없으면 빈부 격차 고착화

부모로서야 현실을 직시하고 자녀 교육을 위한 최선의 방안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게 또 현실이다. 마침 이와 관련한 책이 이달 초 미국에서 출간됐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마시어스 되프케 교수와 예일대 파브리지오 지리보티 교수의 『Love, Money and Parenting(사랑, 돈, 자녀 교육)』이다.

두 사람은 부모의 자녀 교육 방식을 ‘강압적(Authoritarian)’ ‘권위적(Authoritative)’ ‘방임적(Permissive)’으로 나누고, 어떤 방식이 효과적인지 비교했다. 권위적 부모는 강압적 부모와 달리 자녀에게 복종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방임적 부모와 달리 자녀가 원하는 대로 하게 내버려두지도 않는다. 그들은 설득을 통해 자녀가 바람직한 길을 가도록 하고, 자녀는 부모의 가르침이 미래를 위해 최선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자발적으로 실천했다.

저자들이 만 15세 학생의 읽기·수학·과학 능력을 국제적으로 평가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를 분석한 결과 권위적 방식으로 교육 받은 자녀의 성적이 가장 높았다. 권위적 방식의 자녀는 대학 졸업율이 더 높았고, 연봉도 상대적으로 많이 받았다. 권위적 방식의 효과는 교육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권위적 부모가 키운 자녀는 건강이 더 좋고, 자존감이 높았다. 또 마약이나 술·담배에 덜 빠졌고, 상대적으로 더 늦은 나이에 성관계를 가지며, 콘돔을 사용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권위적 교육 방식이 좋지만 모든 부모가 실천하기는 어렵다. 경제 여건이나 일 때문에 자녀 교육에 돈과 시간을 많이 투자하기 힘들 수 있다. 또 자녀를 말로 설득하려면 부모가 논리력과 인내로 무장해야 한다. 이 연구에선 고소득·고학력층이 권위적 교육 방식을 실천하기가 쉬웠다. 그 결과가 한국에선 ‘무너진 교육사다리’다. 부모의 재력·학력이 자녀의 입시 결과를 좌우하고, 입시 결과는 자녀 소득을 결정하는 빈익빈 부익부가 고착되고 있다.

『사랑과 돈, 자녀 교육』은 선진국 중 소득 불평등이 심한 나라일수록 부모가 자녀 교육에 더 많이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연구 결과로 보여준다. 교육이 자녀 소득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스웨덴·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의 부모가 한국·미국의 부모에 비해 방임적인 까닭은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도 먹고 살만해서 굳이 자녀에게 공부를 독려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임금 근로자의 월 평균 소득은 대기업 488만원, 중소기업 223만원이다. 중소기업의 임금이 대기업의 절반도 안 된다. 명문대 졸업생이 대기업에 많이 간다는 걸 고려하면 부모가 자녀 교육에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씁쓸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한국 부모들은 불안한 노후 보장에도 불구하고 공교육을 불신하며 사교육에 돈을 쓴다. 많은 학생이 공부는 학원에서 하고 학교는 자거나 쉬는 곳으로 여긴다. 교사도 이런 학생들을 통제하지 못한다.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저소득 학생들이 원하는 대학에 가는 건 어렵다. 진보 교육감들은 등교를 오전 9시로 늦추고 야간 자율학습을 없애고 있다. 저소득 학생들이 신분 상승할 수 있는 교육사다리를 걷어차는 셈이다.

교육사다리는 공교육 내실화로 재건해야 한다. 학교에서 잘 가르쳐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머리와 노력으로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게 해야 한다. 정부는 또 소득 불평등을 줄이는 정책을 펴 학력에 따른 소득 격차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정재홍 콘텐트제작에디터·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