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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보이지 않는 지방, 당신의 장기 망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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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형과 무관한 ‘이소성 지방’ 지방은 몸속에서 주로 피부 아래쪽과 장기 사이에 축적된다. 최근 의학계에서는 제3의 지방을 주목한다.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존재하는 지방을 뜻하는 ‘이소성(異所性) 지방’이다. 심장·간·췌장 등 주요 장기의 외막과 근육에 직접 쌓여 다양한 대사 질환을 유발한다.  겉보기에 마르거나 정상 체형이라도 안심해선 안 된다. 이소성 지방이 쌓이는 것은 체형과 무관한 데다 서양인에 비해 한국인이 취약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소성 지방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봤다.

"심장·간 등의 외막, 근육에 쌓여 #장기 세포·기능에 이상 일으켜 #마르거나 정상 체형도 안심 못해"

체내의 지방은 축적되는 위치에 따라 피하지방과 내장 지방으로 구분한다. 피하지방은 피부 바로 아래쪽에 위치하며 만졌을 때 물렁물렁하고 두툼하게 잡힌다. 내장 지방은 복강 안쪽에 있는 내장 사이사이에 지방이 축적된 형태로 보통 윗배가 불룩하게 튀어나온다. 체내에 지방이 과잉 축적되면 고혈당·고콜레스테롤 상태를 유발해 대사 기능이 점차 떨어진다. 비만은 물론 당뇨병·고혈압·고지혈증 발생의 주원인이 된다.

근육 기능 저하, 당뇨병·고지혈증 초래

최근에는 주요 장기에도 지방이 축적되는 ‘이소성 지방’이 건강의 위협 요소로 떠올랐다.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순환기내과 최성훈 교수는 “이소성 지방은 지방(중성지방)이 지방세포가 아닌 심장·간·근육·췌장 같은 비지방 조직에 쌓이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런 지방은 장기의 세포나 장기 고유 기능에 이상을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이모(56)씨는 키 1m61㎝, 체중 59.4㎏으로 보통 체격의 중년 여성이다. 체질량지수(BMI·㎏/㎡) 역시 22.92로 정상 범위다. 평소 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건강검진에서 대사 이상이 발견돼 병원을 찾았다. 정밀검사를 진행한 결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240㎎/(정상 200 미만), 중성지방 수치가 216㎎/(정상 150 이하)로 매우 높았고 당화혈색소가 6%로 당뇨병 전 단계인 것으로 확인됐다. 원인은 다름 아닌 이소성 지방이었다. 환자의 근육량은 적정량에 비해 3.6㎏ 부족했지만 지방은 8.9% 많았다. 특히 복강 내 지방률은 적정 기준에서 22.4%나 초과됐다. 분당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임수 교수는 “이 환자는 겉보기엔 건강한 체격인데 속을 들여다보면 이소성 지방이 많은 상태”라며 “실제로 전신의 근육량과 지방량을 평가하는 검사에서 하체 근육에 이소성 지방이 많이 축적된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피하·내장 지방에 쌓이고 남은 에너지는 혈액을 통해 장기로 흘러 들어간다. 이런 이소성 지방이 무서운 이유는 피하·내장 지방과 달리 장기에 직접적이면서 빠르게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근육은 몸에서 가장 큰 장기다. 심장을 뛰게 하고 소화기관을 작동하며 뼈를 움직이는 힘을 만든다. 섭취한 에너지의 대부분을 근육이 소비하는데 근육량이 줄면 활용되지 못한 에너지가 몸 안에 그대로 쌓인다. 줄어든 근육의 자리에 지방이 차면서 근육의 기능이 떨어지고 염증 물질이 분비돼 당뇨병·고지혈증 같은 대사 질환을 일으킨다.

심장에는 주로 심장을 싸고 있는 이중의 막인 심낭 내측에 이소성 지방이 침착된다. 최성훈 교수는 “이소성 지방의 염증 물질과 중성지방이 심장 근육층에 직접적으로 쌓인다”며 “이 지방이 혈류를 통해 심장근육의 염증 반응을 가속화하고 관상동맥 내막에 죽상 판(콜레스테롤 같은 것이 굳어 딱딱해진 덩어리)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심부전·협심증·심근경색으로 진행되는 단초가 된다.

한국인, 백인보다 이소성 지방에 취약  

혈류량이 많은 간은 이소성 지방이 가장 잘 쌓이는 장기다. 지방간은 식이 조절과 운동을 병행하면 건강한 간으로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지방간이 지방 간염으로 악화하는 순간 세포의 변형이 일어나 웬만해선 정상적인 간으로 되돌리기 힘들다. 이소성 지방은 지방간이 지방 간염으로 악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임 교수는 “기존에는 지방 간염이 간경변증·간암으로만 악화한다고 생각했다”며 “최근에는 지방 간염 환자의 50%가 심혈관 질환 문제를 겪는 것으로 알려져 간염을 단순하게 생각해선 안 된다는 게 의학계의 중론”이라고 했다.

문제는 한국인이 이소성 지방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당뇨병·비만·대사연구지’(2018)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건강한 백인과 한국인 86명을 대상으로 췌장의 부피와 지방량을 비교한 결과, 췌장 용적(㎤)은 한국인(68.2)이 백인(77.8)보다 작았지만 췌장 내 지방 침착률(%)은 한국인(3.45)이 백인(2.81)보다 더 많았다. 임 교수는 “서양인에 비해 비만율은 낮아도 이소성 지방에 취약해 대사 기능의 문제를 유발하기 쉽다”며 “비만이 아니라도 자신이 모르는 사이 장기에 지방이 침착될 수 있으니 경각심을 갖고 올바른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소성 지방 줄이려면

유산소·복근 운동 병행 탄산음료, 단 커피 자제


이소성 지방을 줄이는 데 효과가 있는 치료약은 아직 없다. 그나마 지방간 분야에서 치료약 개발을 위한 임상 연구가 진행 중이다.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전문가들은 적정 체중을 유지하면서 고지방식·고열량식·야식을 피하고 효율적인 운동을 하면 지방 감량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이소성 지방을 줄이고 예방하는 세 가지 요령을 정리했다.  

1. 운동으로 지방 끼일 틈을 없애라 

근육 내 이소성 지방을 줄이기 위해선 근육을 키워 지방이 찰 틈을 없애는 게 중요하다. 하체는 고정식 자전거, 상체는 벤치 프레스 운동이 효과적이다. 간에 쌓인 이소성 지방을 빼고 싶다면 유산소 운동과 복근 운동을 병행하면 좋다. 유산소 운동은 지방 연소에, 복근 운동은 복벽을 단단하게 해 복강·간 내 지방 침착을 막는다. 심장의 이소성 지방은 유산소 운동으로 관리한다. 심장의 펌프 기능을 유지하는 데 좋아 심장 주변에 지방이 쌓일 여지를 줄일 수 있다. 등산이나 자전거 타기를 권장한다.

2. 습관적인 단 커피 섭취를 줄여라

한국인의 지방 급원 중 단 음료 비중이 날로 커지고 있다. 10대는 탄산음료, 성인은 커피가 문제다. 이런 음료에는 당은 물론 상당량의 포화지방이 들어 있다. 단 커피를 하루에 1~2잔씩 습관적으로 마시면 식사를 하지 않아도 이소성 지방이 쌓일 수 있어 자제해야 한다. 야식은 이소성 지방 침착의 주범이다. 먹고 바로 자면 섭취 열량이 소비될 시간이 없어진다. 체내에 지방이 흡수되면 혈액량이 많은 간 쪽으로 많이 이동한다. 지방간·간염을 유발할 수 있어 야식은 피하도록 한다.

3. 내 몸 상태를 인지하라 

이소성 지방을 예방하려면 몸 상태를 아는 게 첫 번째다. 요즘에는 보건소·복지관·헬스장에서 체성분 분석 검사를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다. 체성분을 측정해 전신의 지방 비율을 인지하고 있으면 도움이 된다. 여기에 허리·허벅지·목 둘레를 정기적으로 재서 늘어나면 식이요법과 운동을 통해 적정 수준을 유지하도록 노력한다. 국가건강검진도 놓쳐선 안 된다. 검사 후 중성지방·간·혈당 수치가 높다면 과체중이거나 비만하지 않더라도 그냥 넘기지 말고 정밀검사를 받는 게 좋다.

김선영 기자 kim.sun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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