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 호텔 발코니서 나체로 있으면 성행위 묘사 안해도 유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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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한 호텔. [중앙포토]

부산의 한 호텔. [중앙포토]

대낮 호텔 발코니에서 나체 상태로 서 있었다면 공연음란죄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부산지법 항소부“노출로 타인이 불쾌감을 느꼈다면 ‘공연음란죄’” #무죄 판결한 1심깨고 벌금 50만원, 성폭력프로그램 24시간 이수 #“성행위를 묘사하지 않고 서 있기만 해도 ‘공연음란죄’ 적용 가능”

부산지법 형사항소3부(문춘언 부장판사)는 공연음란 혐의로 기소된 윤모(36)씨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벌금 50만원과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24시간 이수를 선고했다고 24일 밝혔다.

이 사건은 2017년 9월 1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산의 한 호텔 6층에 투숙한 윤씨는 다음날 정오쯤 야외수영장이 내려다보이는 발코니에 나체 상태로 3∼4분가량 서 있었다. 발코니는 밖에 있는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는 구조로 돼 있다. 게다가 발코니 바로 아래 야외수영장이 있어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마침 야외수영장에 있던 권모(34)씨가 윤씨와 눈이 마주쳤고, 놀란 권씨가 경찰에 신고했다. 권씨는 “윤씨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너무 놀라 고개를 숙였다”며 “옆에 있던 지인에게 ‘어떤 남자가 벗고 이상한 짓 하고 있으니까 빨리 가자’고 얘기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윤씨는 공연음란죄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고 지난해 8월 1심 판결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부산지법은 1심에서 “목격자가 윤씨를 보고 당황한 나머지 음란행위를 했다고 오인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퇴실하려고 짐을 싸는 아내 바로 옆에서 다른 여성을 보며 음란행위를 하는 것은 경험칙상 이해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판결에 불복한 검찰은 “윤씨가 불특정 다수 사람이 볼 수 있는 호텔 발코니에 나체 상태로 서 있는 것 자체가 음란행위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항소했다.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었다. 2심은 “윤씨가 서 있던 발코니는 한낮에 다수인이 통행하는 호텔의 야외수영장이 곧바로 보이는 곳이며, 밖에서도 발코니가 보인다는 사실을 윤씨는 알고 있었다”며 “윤씨는 신체의 중요 부분을 가리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고, 노출의 정도가 일반인의 건전한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고 타인에게 불쾌감과 수치심을 줄 수 있음을 윤씨가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음란행위는 반드시 성행위를 묘사하거나 성적 의도를 표출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며 “호텔 발코니에 나체로 서 있던 행위는 일반인의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고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음란행위에 해당한다”고 유죄 이유를 밝혔다.

부산지법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집 안에 있는 발코니이더라도 외부에서 볼 수 있다면 외부 공간으로 봐야 한다고 해석한 것”이라며 “발코니에서 일반인의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불필요한 노출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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