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노후경유차 서울행 막은 날···1분에 5대씩 '위반車' 걸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시청사 서소문별관에 있는 노후차량 운행 제한 상황실. 1분에 5대가량 위반 차량이 단속됐다. 임선영 기자

서울시청사 서소문별관에 있는 노후차량 운행 제한 상황실. 1분에 5대가량 위반 차량이 단속됐다. 임선영 기자

#1. 22일 오전 10시 서울시청사 서소문별관 2층에 있는 노후차량 운행제한 상황실. 대형 스크린엔 서울에 진입한 중량 2.5t 이상 5등급 경유차 번호판이 실시간으로 떴다. 은평구 진관동과 금천구 가산동, 양천구 신월동 등 51곳에 설치된 폐쇄회로(CC) TV에 찍힌 차량들이다. 1분에 2~5대가 잡혔다.

제주 제외한 전국에 미세먼지법 시행 첫날 #5등급 경유차 40만 대 서울 운행 막았더니 #상황실 모니터엔 "1분에 5대씩" 위반 차량 #서울시엔 문의 빗발, 직접 찾아와 하소연도 #"중국 탓인데, 왜 우리만 손해봐야 하느냐" #전문가 "고강도 수선일 뿐…효과 제한적"

안은섭 서울시 운행차관리팀장은 “화면에 뜬 차량은 미세먼지 저감조치가 시행되면서 서울에 들어올 수 없는 차량”이라며 “촬영된 번호판 중에서 단속 대상을 화면에 띄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 이날 오전 9시15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홍제3구역 주택 재개발 공사장에선 인부 2명이 호스로 터파기 현장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김모 현장소장은 “여느 때 같으면 오전 7시부터 작업을 시작해야 했지만 오늘은 (미세먼지 저감조치가 발령돼) 9시로 늦춰졌다”고 말했다.

현장 확인을 나온 전영백 서울시 실내대기관리팀장 “민간 공사장의 경우 오전 6~9시에 작업할 수 없다”며 “서울의 1800여 곳의 공사장에 적용되며 규모가 10만㎡ 이상이면 공무원이 직접 점검한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 인부들이 작업 시간 전에 바닥에 물 청소를 하고 있다. 22일 미세먼지 저감조치가 발령하자 이곳은 작업 시작 시간을 오전 7시에서 9시로 2시간 늦췄다. 이우림 기자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 인부들이 작업 시간 전에 바닥에 물 청소를 하고 있다. 22일 미세먼지 저감조치가 발령하자 이곳은 작업 시작 시간을 오전 7시에서 9시로 2시간 늦췄다. 이우림 기자

22일 제주도를 제외하고 전국 16개 시·도에 미세먼지 비상저감 조치가 발령됐다. 올해 미세먼지 비상저감 조치가 발령된 것은 네 번째다.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15일 시행되면서 운행 금지 차량이 대폭 확대됐고, 22일은 개정 법률을 처음 적용했다. 특히 서울에선 중량 2.5t 이상 배출가스 5등급인 경유차 진입이 제한됐다. 약 40만 대가 대상이다.

서울시는 이날 적발된 차량 중 단속 대상을 걸러내 1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계획이다. 지난달 14,15일 미세먼지 저감 조치 때는 위반 차량 2630대를 적발했다. 당시엔 2005년 이전 등록한 경유차에 일률적으로 적용됐다. 22일에는 개정 법률에 따라 대상이 확대됐기 때문에 단속 차량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안은섭 팀장은 “적발 차량 중에서 저공해 조치를 이행한 차량은 과태료를 면제한다. 이 작업에 2~3일 걸린다”고 말했다.

정부가 강력한 조치를 내놓자 노후 경유차를 보유한 직장인, 5등급 트럭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자영업자들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이날 서소문 별관 2층에 꾸려진 서울시 노후차 운행제한 콜센터엔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창구에선 “이삿짐 차를 모는데 오늘 단속 대상이어서 예약된 이사를 못하게 생겼다” “과태료 면제 대상은 누구냐. 공해 저감장치 보조금은 어떻게 받느냐” 같은 질문이 쏟아졌다.

2006년식 테라칸을 몰고 전국의 건설 현장을 다니는 장모(58)씨는 이날 생업을 포기하고 서울시청을 찾았다. 그의 테라칸은 2902㏄ 5등급 경유차다. 장씨는 “일당이 10만원인데 과태료가 10만원”이라며 “공해 저감장치 보조금을 알기 위해 서울시에 수십 번 전화했지만 연결되지 않아 직접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지원을 받아도 45만원을 일시불로 부담해야 하고, 그것도 다음 달 말이나 돼야 한다고 하니 운행 단속을 하면 살길이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구로구에서 꽃 배달을 한다는 박광현(65)씨는 “2.5t 용달차를 운행하는데, 오늘 운행을 못 했다. 과태료 안 내려면 폐차 신청을 해야 하는데 방법을 잘 몰라서 왔다”고 말했다. 2004년 엑스트렉(1991㏄)을 보유한 윤경후(51)씨는 “야간에 화물차를 운전하고 있어 (낮에는) 자야하는데 나왔다”며 “공해 저감장치를 달려면 400만원이 드는데 서울시가 2.5t 이상만 보조금을 준다고 해서 결국 폐차를 결정했다. 허탈하다”고 말했다.

식자재 운반 차량을 운행하는 한 30대 시민은 “며칠 전 폐차 신청했는데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고 싶어 서울시 등에 수십 통 전화했지만 연결이 안 돼 미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 일을 안 하면 회사와 계약이 해지되니 어쩔 수 없이 차를 끌고 나왔는데, 과태료가 폐차 때까지 유예되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2일 노후 경유차 운행제한 상황실을 찾아 단속 현황을 보고 받고 있다. 임선영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이 22일 노후 경유차 운행제한 상황실을 찾아 단속 현황을 보고 받고 있다. 임선영 기자.

2006년식 렉스턴을 타는 조태상씨는 “자동차 정비 업체나 단체 등에 매연 저감장치 설치를 문의하면 대부분 폐차를 유도한다”고 말했다. 조씨는 “폐차하면 겨우 145만원을 받는다. (미세먼지 발생은) 중국 영향이 가장 크다고 하면서 왜 자동차 오래 타는 사람이 피해를 봐야 하느냐”고 말했다.

직장인 김종민씨는 이날 평소 타고 다니던 2002년식 싼타페를 집에 두고 출근했다. 그는 “차를 살 때만 해도 경유차가 친환경 자동차라고 했는데, 이제는 미세먼지 주범이라고 한다”며 “이럴 때마다 소비자들이 손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는 게 너무 황당하다”고 말했다.

경유차량 운행 단속에 대해 문의 하기 위해 서울시청사에 온 시민들. 임선영 기자

서울시청사에 꾸려진 단속 관련 문의 콜센터. 임선영 기자

홍제동 아파트 공사 현장처럼 비산먼지를 일으키는 곳에선 작업시간 변경 및 조정, 살수차 운영, 방진덮개 복포 등 먼지 억제조치를 해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2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임기상 자동차10년타기시민연합 대표는 “경기·인천 등은 조례 개정이 늦어지면서 서울만 노후차 단속을 하고 있어 효과가 떨어진다. 적절한 보조금 없이 시민들의 일방적 참여만 기대하는 ‘일방통행 행정’과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장재연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아주대 교수)는 “석탄 대신 가스 발전소를 세우는 등 평소에 고강도 대책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며 “이렇게 미세먼지 농도가 높을 때 하루이틀 수선 떨어봐야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서울 용산행정타운 지하 주차장. 모두 480여 대가 주차할 수 있는데 22일 미세먼지 저감조치가 발령하자 진입이 폐쇄됐고, 저공해 차량 40여 대를 빼고는 주차장이 텅 비어 있다. [사진 용산구청]

서울 용산행정타운 지하 주차장. 모두 480여 대가 주차할 수 있는데 22일 미세먼지 저감조치가 발령하자 진입이 폐쇄됐고, 저공해 차량 40여 대를 빼고는 주차장이 텅 비어 있다. [사진 용산구청]

행정‧공공기관에 소속된 임직원은 차량 2부제를 의무 적용받는다. 이날(22일)은 짝숫날이어서 차량번호 끝자리가 짝수인 차량만 운행할 수 있다. 서울시는 시청과 구청 및 산하기관, 투자·출연기관 등 434개 공공기관의 주차장을 전면 폐쇄했다. 노정하 용산구 언론팀장은 “용산행정타운은 전체 480여 면의 주차장을 보유하고 있는데 저공해·장애인 차량 등 40여 대를 빼고는 주차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임선영·이우림 기자 youngc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