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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었는데" '동전 택시기사 사건' 단순폭행 적용 논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해 12월 8일 인천 구월동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30대 남성이 70대 택시기사에게 동전을 던지고 폭언을 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택시기사는 실랑이 뒤 자리에 쓰러졌고, 병원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숨졌다. [JTBC 뉴스]

지난해 12월 8일 인천 구월동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30대 남성이 70대 택시기사에게 동전을 던지고 폭언을 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택시기사는 실랑이 뒤 자리에 쓰러졌고, 병원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숨졌다. [JTBC 뉴스]

31살의 승객 A씨는 동전을 던지며 할아버지뻘 택시기사(70)에게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퍼부었다. 몇분 뒤 택시기사는 자리에 쓰러졌고, 병원으로 이송됐다가 숨졌다. 사인은 급성 심근경색.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동전 택시기사 사망 사건’ 얘기다.

단지 A씨의 태도에만 분노의 화살이 쏟아진 게 아니었다. 신병처리도 논란이 됐다. 경찰은 A씨를 폭행치사 혐의로 긴급체포했다가 폭행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직접적 신체접촉이 없어 사망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판단했다. 숨진 택시기사의 며느리는 1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강력한 처벌을 촉구한다. 아버님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썼고, 20일 오후 6시 50분 기준 1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의했다.

이 사건은 살인ㆍ치사혐의 적용을 둘러싼 그간의 사회적 논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련의 다툼이나 범죄 끝에 피해자가 사망한 뒤 가해자를 엄벌해야 한다는 여론은 늘 있었다. 김성순 법무법인 정향 변호사는 “송치, 기소, 판결에 이르기까지 사망사건에는 수사기관 혹은 법관의 ‘판단’이 어느 정도 작용할 수밖에 없다. 논란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성폭행 후 방치해 사망, 치사 혐의 무죄 논란  

지난해 9월 전남 영광에서 발생한 여고생 사망 사건이 대표적이다. 10대 3명이 B양(16)에게 술을 먹이고 성폭행한 뒤 방치해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에 이른 사건이다. 경찰은 강간 등 치사 혐의로 사건을 송치했지만 법원은 지난 15일 치사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고 강간 혐의만 인정해 최대 장기 5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가해자들이) 사망을 예측할 수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살인 혐의가 아니라 치사 혐의가 적용돼 논란이 된 사건도 있었다. 지난해 10월 술에 취한 박모(21)씨가 폐지를 줍던 윤모(58ㆍ여)씨를 폭행해 다발성 골절로 사망에 이르게 했다. 당시 경찰은 살인 혐의가 아닌 상해치사 혐의로 이 사건을 송치했다. 여론의 비판이 일었고, 검찰은 살인 혐의로 박씨를 기소했다. 법원은 살인 혐의를 인정해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강서 PC방 살인사건 당시 김성수(30)의 동생(28)의 혐의를 놓고 벌어진 논쟁도 이같은 논란의 연장선에 있었다. 살인 공범 혐의를 적용해야한다는 여론도 있었지만 경찰은 동생에게 공동폭행 혐의를 적용됐다.

‘사람이 죽었다’ 살인이냐 아니냐 ‘줄다리기’

폭행 이미지.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폭행 이미지.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이같은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가해자의 죄를 가리는 것이 칼로 무 자르듯 쉽지 않아서다.

상황에 따라 해석이 복잡해질 순 있지만 일반적으로 살인은 ‘상대방을 살해할 목적을 가지고 사망에 이르게 한 행위’를 말한다. 어떤 가해자가 흉기로 피해자의 급소를 찔러 사망에 이르게 했다면 살인 혐의를 적용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 폭행치사는 ‘상대방을 크게 다치게 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물리력을 행사해 사망에 이르게 한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죽일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폭행치사 혐의가 적용된다. 다만 폭행과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만약 다툼 끝에 상대방의 멱살을 장기간 잡아 호흡곤란으로 사망케 했다면 폭행치사 혐의가 적용될 수도 있다. 상해치사는 가해자가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는 등 다치게 하려는 의도를 가져야 한다. 가해자가 다리를 부러뜨릴 생각으로 피해자를 둔기로 가격해 사망했다면 상해치사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그나마 폭행ㆍ상해치사는 이른바 ‘결과적 가중범’의 영역에 있다. 결과적 가중범이란 범죄 행위로 의도치 않은 무거운 결과가 초래될 때 형이 가중되는 범죄를 말한다. 하지만 이번 동전 택시기사 사건의 가해자는 치사 혐의를 피하고 단순 폭행 혐의로 송치됐다. 정태원 법무법인 에이스 변호사는 “‘동전을 맞은 물리적 충격으로 사망했다’거나 ‘가해자가 피해자의 심장 질환 등을 알고 있었다’는 등의 인과관계가 없다면 살인이나 치사 혐의가 인정되기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다만 동전의 양이 상당해 둔기 정도의 충격을 줄 정도라면 얘기가 달라질 순 있다”고 덧붙였다.

“살해 의도 없더라도 폭행ㆍ폭언시 엄히 처벌해야”

동전 택시기사 사망사건 폐쇄회로(CC)TV. [연합뉴스]

동전 택시기사 사망사건 폐쇄회로(CC)TV. [연합뉴스]

시민들 사이에선 가해자 A씨를 단순 폭행죄로 처벌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은행에 근무하는 이동재(30)씨는 “폭언·폭행 끝에 사망했는데 경찰이 너무 기계적으로 법을 적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이수연(27)씨도 “동전 던지기나 폭언이 평소 심장 질환이 있던 택시기사의 사망 원인으로 작용했을 텐데 폭행 혐의만 적용된 것은 국민 법감정과 너무 동떨어진 것 같다”고 했다.

유가족이나 여론의 공분을 이해하지만 혐의 적용은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의지 서담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죄질이 너무 나쁘기 때문에 법정에서 참작될 순 있을 것”이라면서도 “가해자가 기사의 죽음을 예견해 폭언과 무례한 행동을 했다는 ‘예견 가능성’을 입증하기가 쉽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단순 폭행이라도 다툼 끝에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만큼 엄히 처벌해야한다는 의견도 있다. 신병재 법무법인 이헌 변호사는 “폭행죄라도 양형을 최대한 올리면 이론적으로 실형 선고가 가능하다”며 “결국 수사기관에서 기소증거나 입증자료를 탄탄하게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손국희ㆍ권유진ㆍ최연수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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