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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밟고 가라"···'바보 김수환'이 그리운 오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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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선종 10주기…명동성당·생가엔 추모물결 

눈발이 흩날리는 15일, 오후 5시가 넘어가자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 앞 발광다이오드(LED) 장미밭에 하얀 불이 켜졌다. 이 장미들은 10년 전 우리 곁을 떠난 김수환 추기경을 기리는 장식물이었다. 정원 앞에서 조용히 멈춰 서서 안내문을 읽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15일 오후,서울 중구 명동대성당 앞에 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하는 LED 흰장미에 불이 켜졌다. 김정민 기자

15일 오후,서울 중구 명동대성당 앞에 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하는 LED 흰장미에 불이 켜졌다. 김정민 기자

시간을 내 명동성당을 찾은 50대 가톨릭 신자 김서현씨는 "김 추기경은 저에게 아버지 같은 분인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김씨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는데, 어릴 때부터 김 추기경을 마음속 아버지처럼 의지하며 지냈다"며 "돌아가신 때에는 '이제 누구를 의지하고 사나' 하는 걱정에 한 달가량을 눈물로 보냈다"고 선종 당시를 회상했다.

명동성당 지하 1898 광장에 열린 김수환 추기경 사진전. 김정민 기자

명동성당 지하 1898 광장에 열린 김수환 추기경 사진전. 김정민 기자

명동성당 지하 1898 광장에도 김 추기경을 그리워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1898 광장에는 김 추기경을 기리는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추기경의 온화한 미소가 담긴 사진 옆에 서서 엄마와 딸은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함께 웃었다. 김 추기경의 생전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헤드셋을 쓰고 가만히 그의 목소리를 듣는 시민들의 모습도 보였다.

15일 김수환 추기경의 생전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전시회에서 시민들이 김 추기경의 육성을 들이며 생각에 잠겨 있다. 김정민 기자

15일 김수환 추기경의 생전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전시회에서 시민들이 김 추기경의 육성을 들이며 생각에 잠겨 있다. 김정민 기자

기억 속에 살아 있는 김수환 추기경 

1969년쯤 독일에서 유학하고 있었다는 홍모(79)씨는 "김 추기경을 5~6차례 만났다"고 기억했다. 홍씨는 "김 추기경님을 몇 번은 파리에서 만났는데, 좋은 호텔에서 머물러도 되실 분이었지만 꼭 파리에 머무르는 신학생이나 신부 집에서 묵으셨다"고 김 추기경을 그리워했다. 또 "김 추기경이 돌아가셨을 때 명동성당부터 서울역까지 가득 찼던 조문 인파가 기억에 남는다"며 "대통령이 죽어도 그 정도는 안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 추기경이 찍힌 사진을 가리키며 "시골집에 멍석 깔고 앉은 저런 모습이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추억했다.

20년간 명동성당에 다녔다는 김 카타리나(77)씨는 "김 추기경은 자신의 피와 땀을 전부 짜내 좋은 일만 하신 분"이라고 추모했다.

15일 김수환 추기경 사진전이 열린 서울 명동성당 1898 광장. 김정민 기자

15일 김수환 추기경 사진전이 열린 서울 명동성당 1898 광장. 김정민 기자

할머니와 딸, 손녀 3대가 함께 사진전을 방문하기도 했다. 일곱살 박로휘양은 "보통 사람들은 자기가 부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김 추기경님은 가난한 자가 되고 싶다고 해서 신기하다"고 말했다. 로휘양의 엄마 백승주(37)씨는 "사람의 마음을 비우는 것조차 어려운데, 항상 가난한 사람을 도우신 그분은 따라가기조차 어려운 분"이라고 말했다.

김 추기경에게서 견진성사를 받았다는 박규태 수원과학대 교수는 "김 추기경은 다른 신부님과 주교님들이 낼 수 없는 목소리를 내셨던 분"으로 김 추기경을 추모했다. 그는 "암울했던 시절에 다른 사람들이 침묵할 때 하느님만 믿고 독재 정권에 맞서는 일을 누가 할 수 있었겠느냐"며 "한국 역사에 김수환 추기경 같은 분은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처럼 한 세기에 한 사람 나올까 한 사람이다"고 말했다.

생가에도, 추모공원에도 끊이지 않는 발길

15일 경북 군위군 김수환 추기경 생가 및 기념관에도 시민들 발길이 이어졌다. [사진 군위군]

15일 경북 군위군 김수환 추기경 생가 및 기념관에도 시민들 발길이 이어졌다. [사진 군위군]

김 추기경이 유년시절을 보낸 군위 생가에도 김 추기경을 추모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생가는 김 추기경이 군위보통학교를 마치고 대구가톨릭대학교의 전신인 성유스티노신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지낸 곳이다. 김 추기경 생가와 나눔 공원 기념관을 찾은 추모객들은 김 추기경 동상을 안으며 그를 기렸다. 시민들은 옹기장수의 아들에서 우리나라 첫 추기경이 되기까지 그의 삶을 기록한 전시관에 머무르며 김 추기경을 추모했다.

곳곳에서 열리는 김수환 추기경 선종 10주기 기념행사

김수환 추기경 선종 당일인 16일 오후 2시에는 명동대성당에서 추모 미사가 열린다. 이병준 기자

김수환 추기경 선종 당일인 16일 오후 2시에는 명동대성당에서 추모 미사가 열린다. 이병준 기자

선종 당일인 16일 오후 2시에는 명동성당에서 염수정 추기경의 강론으로 추모 미사가 열린다. 추모식에서는 김 추기경을 추모하는 영상이 상영되고 가톨릭 신도들이 김 추기경을 기리는 추모 시를 낭독할 예정이다. 김 추기경의 유품을 직접 볼 수 있는 전시회도 열린다. 절두산 순교성지 내 한국 순교자박물관은 2월 16일부터 6월 20일까지 김 추기경이 사용했던 제의와 성경 등을 일반에 공개하는 유품전을 연다고 밝혔다. 17일 오후 5시에는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 '내 기억 속의 김수환 추기경'이란 주제로 토크콘서트가 열린다. 18일 오후 8시에는 명동성당에서 김 추기경 기념 음악회가 열릴 예정이다.

기념 메달 판매·서체 개발도

한국조폐공사는 김수환 추기경 선종 10주년 기념 메달을 제작했다. [연합뉴스]

한국조폐공사는 김수환 추기경 선종 10주년 기념 메달을 제작했다. [연합뉴스]

김 추기경의 발자취를 그의 뜻이 담긴 기념물로 기리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조폐공사는 김 추기경 선종 10주년 기념 메달을 제작했다. 금·은·백동으로 제작된 기념 메달에는 김 추기경의 이미지와 자화상이 앞뒤로 담겼다. 22일까지 예약판매를 진행하고, 수익금 일부는 재단법인 바보의 나눔에 기부된다.

가톨릭출판사는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10주기를 맞아 '김수환 추기경체'를 개발했다. [사진 가톨릭출판사]

가톨릭출판사는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10주기를 맞아 '김수환 추기경체'를 개발했다. [사진 가톨릭출판사]

가톨릭출판사는 김 추기경의 생전 글씨체를 그대로 담은 '김수환 추기경체'를 개발했다. 김 추기경의 육필 원고를 바탕으로 생전 서체와 동일한 느낌이 나도록 글자의 표현과 특징을 살렸다. 김 추기경이 많이 사용했던 펜 중에서 자필 느낌을 낼 수 있는 플러스펜 느낌을 글자에 적용해 질감을 표현했다. 가톨릭출판사 관계자는 "글씨란 그 사람의 삶과 정신이 녹아든 마음의 그릇이다"라며 "김수환 추기경체는 직접 만날 수 없는 김 추기경님을 곁에 있는 듯 느끼고, 그분의 삶과 정신을 되새기도록 해 줄 매개체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가톨릭출판사는 오는 22일 '김수환 추기경체' 서체 봉헌식을 연다.

이수정·김정민·이병준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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