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인의이것이논술이다] 수리논술의 범위와 한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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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서울대의 발표 시점을 전후로 연세대.고려대.이화여대 등에서도 논술 예시문제를 발표하면서 수리논술을 통합논술의 일부로 포함시켰으나 고등학교 수준의 계산을 요구하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논란이 많다. 지난해 수리논술을 실시했던 대학들이 무더기 징계와 재정적 불이익을 받았기에 더 조심스럽게 접근해서 출제했는데도 불구하고 논란이 이어진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현장에서의 수리논술에 대한 거부감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게다가 수리논술을 통해 측정하고자 하는 수리적 사고력이라는 것은 말로는 쉬울지 몰라도 그 실체가 막연한 이상, 문제 개발이 어렵고 범위가 한정된다. 결국 대학 측에서는 논란의 소지가 있는 문제는 최종 단계에서는 출제를 단념할 수밖에 없다. 서울대의 선택이 다른 대학들을 선도할 가능성이 높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교육 정책이 적어도 3년 전에는 준비할 수 있도록 예측 가능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차기 선거의 결과와는 무관하게, 적어도 3년 동안은 과격한 변화는 있기 어려울 것 같다.

이 상황에서 통합논술이 달려갈 방향은 과거 전통사회에서 요구되었던 '인문적 소양' 전반을 쌓기를 요구하는 쪽이 될 것 같다. 서울대 예시문제가 이를 잘 암시하는데, 지속적으로 중시되었던 철학.문학.사회과학뿐 아니라 역사.예술.과학철학.그림과 표 등에 대해서도 해독하고 소양을 갖추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연세대와 고려대 등도 이 점에서는 일치한다.

문과와 이과의 구분이 갈수록 심해지는 한국 교육 여건에서, 모든 학생이 수리 능력과 언어적 사고 능력을 균형 있게 갖추는 일은 꼭 필요하다. 문과 학생들이 더 이상 미적분을 배우지 않는 상황이 문과 학문을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 역시 분명하다. 그렇다고 대학에서 수리논술을 치름으로써 이 문제가 일거에 해소될 수도 없다. 차라리 문과에 미적분을 부활하는 것이 더 가까운 길이다.

문제는 많은 수험생이 혼란을 느끼는 현실이고 이런 혼란을 틈타 성업을 하는 것은 사교육이다. 수험생으로서는 확정된 사실들과 이로부터 논리적으로 추론 가능한 것만 집중해서 준비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현장에서 지켜본 바로는 지난 겨울부터 수리논술을 준비한 많은 학생과 학원이 있었는데, 이 준비는 사실상 시간과 돈의 낭비였을 뿐이다. 따로 보상받을 길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무모한 판단을 탓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도가 없다. 이제라도 잘 준비해야 할 것이다. 목표가 분명할 때는 무작정 길을 나서기보다 최대한 준비한 후 출발해야 더 빨리 이르게 된다.

김재인 유웨이 중앙교육 오케이로직 논술 대표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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