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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법 있지만 취소 사유 아니다"···신고리 5·6기 '사정판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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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울산시 울주군에 건설 중인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ㆍ6호기에 대한 건설 허가 과정에서 일부 위법이 있었지만 허가를 취소할 정도는 아니라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건설 과정 일부 위법했지만, 허가 취소할 정도 아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 김정중)는 14일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와 신고리 원전 부지 인근 거주자 등이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를 상대로 낸 건설허가 처분 취소 청구를 기각했다.

"방사선 영향 평가 부실은 위법" 

재판부는 허가 심사 과정에서 중대 사고가 발생할 경우 미칠 방사선 영향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을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원전 건설시 작성하는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에서 사고 영향에 대한 세부 사항 일부가 누락된 사실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또 원안위의 의결 과정에서 결격 사유가 있는 위원 2명이 참여한 것도 위법하다고 봤다.

하지만 이런 위법사항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공사를 중단시킬 정도로 중대하진 않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위법 사유로 (허가를) 취소해야 할 필요성은 매우 작은 반면 처분의 취소로 발생하는 ‘공공복리에 반하는 결과’는 상대적으로 매우 중하다”고 밝혔다.
이는 행정소송법상 원고의 청구가 이유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공공복리에 현저히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받아들이지 않는 ‘사정판결(事情判決)’ 제도에 따른 것이다.

2017년 10월25일 신고리 5·6호기 건설 현장에서 원자력안전위원회 관계자들이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7년 10월25일 신고리 5·6호기 건설 현장에서 원자력안전위원회 관계자들이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전장치 충분, 방사능 대량 누출 우려 없어" 

재판부는 우선 중대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신고리 5ㆍ6호기에는 안전장치가 충분히 갖춰져 있어 방사선이 대량으로 누출될 일은 없다고 보았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강화된 안전 규제도 적용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의결 과정에서 결격 사유가 있는 위원을 제외하더라도 의결 정족수가 채워져 같은 결론이 나왔을 거라는 것도 감안했다. 그밖에 그린피스 측의 단층조사 부실, 인구밀집지역 규제 위반 등의 주장은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사 중단과 재개 과정에서 1조원 손실 예상" 

반면 공사가 중단되면 입을 사회적 손실은 매우 크다고 판단했다. 공사가 중단되고 재개되기까지 약 4년이 걸리는데 이때 1조원이 넘는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보았다. 원전 관련 업체가 도산하거나 업체끼리 소송이 오가는 등 허가 취소로 인해 발생한 다양한 사회적 비용도 고려됐다.

서울행정법원[사진 다음 로드뷰]

서울행정법원[사진 다음 로드뷰]

황주호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의결 과정에서 결격 사유가 있는 위원이 참여한 것 등 잘못된 건 분명히 고쳐야 한다“면서도 ”우리가 신기술을 적용해 개발한 신고리 5ㆍ6호가 안전하다는 걸 전 세계에 확실히 알렸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종인 전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이사장은 ”수출형 원전인 신고리원전 3~6호기는 관련 기술 등을 현재 아랍에미리트에 독점 공급하고 있는데 가장 최신 기술을 적용한 신고리 5ㆍ6호기에 대한 안전성을 인정받게 돼 앞으로 운영권 협상에서도 좋은 위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린피스 측은 즉각 항소 의사를 밝혔다. 김영희 변호사는 재판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신고리 5ㆍ6호기 원전 건설 허가에 위법성이 있다는 점을 확인한 역사적인 판결"이라며 "위법성이 발견됐으면 건설을 취소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또 “고도의 안정성을 요구하는 원전 사업에 대해 사정판결을 내린 것은 부당하다”며 “항소심에 가서 주장을 좀 더 입증하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원안위는 2016년 6월 회의를 열고 재적 위원 9명 가운데 7명의 찬성으로 신고리원전 5ㆍ6호기에 대한 건설 허가를 승인했다. 하지만 탈원전의 하나로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 공약을 내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2017년 6월 공사가 일시 중단됐다. 이후 공론화위원회의 결정으로 3개월만에 공사가 재개된 상태다. 그린피스 측은 원전 부지에 과거 강한 지진이 발생한 기록이 있음에도 적합한 단층 조사를 실시하지 않는 등 건설 허가에 대한 10여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며 2016년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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