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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프랑스풍 호텔 속 한국의 봄꽃 정원 향긋한 추억 담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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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면

핫피플 - 토니 마크류 플라워 디렉터

지난겨울 서울 회현동 신세계조선호텔의 부티크 호텔 ‘레스케이프’ 로비에 이색적인 크리스마스트리가 등장했다. 반짝이는 크리스털 수만 개를 천장부터 바닥까지 늘어뜨린 버드나무 트리다. 수많은 인증샷이 인스타그램에 게재됐고 이 호텔은 ‘갬성(감성) 장소’로 인기를 끌었다. 이처럼 호텔의 실내 장식은 사람들의 시선과 발길을 끄는 힘이 있다.
최근 레스케이프는 봄을 준비하며 실내를 새 단장했다. 겨울 버드나무 트리를 연출했던 토니 마크류(사진) 플라워 디렉터가 지휘했다. 지난 1일 한창 작업 중인 그를 만나 이번 작품의 콘셉트와 플라워 마케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토니 마크류는 …

1969년 영국 출생, 행위예술과 패션을 전공해 풍부한 창의력·상상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플라워 디렉터로 활동. 프랑스 샹그릴라 파리 호텔, 지방시·펜디 등 럭셔리 패션 브랜드와 작업.

로비엔 풍성한 벚꽃·리시안셔스 #티 살롱엔 낭만적인 목련·튤립 #레스토랑엔 사랑스러운 호접란

로비의 대형 벚꽃나무가 인상적이다.
“꽃이 만발한 봄의 정원을 표현했다. 호텔에 들어서는 순간 ‘봄’ ‘화사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봄하면 떠오르는 벚꽃과 분홍의 리시안셔스를 고루 사용했다. 자칫 심심해 보일 수 있는 나무 기둥은 덩굴나무처럼 꽃이 휘감고 올라가는 회전 장식 기법을 적용해 풍성해 보이도록 했다. 유럽 건축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곡선 장식에서 영감을 받은 나만의 시그니처 기법이다. 곡선으로 꽃을 장식하면 산과 들에 원래 존재하는 듯한 자연스러운 느낌을 낼 수 있다. 노하우를 살짝 공개하자면 꽃을 꽂기 전 오아시스(꽃에 물을 공급하는 꽃꽂이용 스펀지)를 그물망에 넣고 묶어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이 잇는 것이다. 그 다음 나무에 자연스럽게 둘러 고정시키고 꽃을 꽂는다.”
이달 초 작업을 마친 레스케이프 로비의 봄 시즌 벚꽃나무

이달 초 작업을 마친 레스케이프 로비의 봄 시즌 벚꽃나무

호텔의 다른 곳은 어떻게 꾸몄나.
“7층 카페 ‘티 살롱’과 26층 레스토랑 ‘라망시크레’도 꽃으로 장식했다. 티 살롱은 기존에 있던 대형 새장을 목련과 분홍 튤립으로 로맨틱하게 꾸몄다. 프랑스어로 ‘연인들의 비밀’이라는 뜻을 가진 라망시크레는 레스토랑의 콘셉트에 맞게 비밀스러운 애인과 주고받는 사랑의 편지가 가득한 여자의 책상을 표현했다. 동양의 아름다운 장식품을 들여와 장식했던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을 떠올리며 작업했다. 유럽풍 화기에 동양의 꽃인 호접란을 담아 동서양의 조화를 이뤘다. 또 영국에서 직접 캘리그래피로 프랑스식 주소가 적힌 편지 봉투를 제작해 소품으로 활용했다. 한국의 프랑스풍 부티크 호텔이라는 레스케이프의 콘셉트와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만족스럽다.”
호텔의 실내 장식이 주는 효과는.
“어느 장소에서나 예상치 못한 혹은 새로운 경험을 하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좋은 기억은 다음에도 그곳으로 발길을 유인한다. 호텔에서 그 역할을 하는 것 중 하나는 실내 꽃 장식이라고 생각한다. 식사·숙박을 하러 왔다가 아름답게 장식된 꽃을 보고 예상치 못한 감동을 받아 좋은 기억이 남는다. 감동은 사진·영상으로 기록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여러 사람에게 공유되기도 한다. 호텔을 아름답게 하면서 홍보하는 역할까지 일석이조의 효과를 내는 셈이다.”
영국 런던 레인즈버러 호텔의 화려한 웨딩 테이블

영국 런던 레인즈버러 호텔의 화려한 웨딩 테이블

세계적인 장식 트렌드를 고려하나.
“세계 각국의 웨딩·파티·호텔 장식을 도맡아 하는 플라워 디렉터지만 트렌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트렌드보다는 고객의 요청 사항과 행사·장소의 분위기를 중요시한다. 한국에 올 때마다 둘러본 한국 호텔의 인테리어는 대부분 현대적이고 세련된 것 같다. 이런 곳에서는 유럽에서 자주 사용하는 장미처럼 크고 화려한 꽃은 어울리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주로 아기자기한 꽃과 장식을 사용한다.”
레스케이프와 협업하게 된 인연은.
“레스케이프 호텔을 자크 가르시아가 직접 디자인했다는 사실에 가장 끌렸다. 자크 가르시아는 루브르 박물관, 베르사유 궁전 등을 복원하는 데 일조한 프랑스 건축 디자이너로 18세기 살롱 문화 복원 분야에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오래된 가구와 화기 등을 모아 자신의 집을 장식하기도 했다. 앤티크를 좋아하는 그의 감성과 취향이 나와 잘 맞는다. 또 동양 문화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다. 아시아 국가인 한국을 경험하며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다.”
한국 고객을 고려해 작업한 부분이 있나.
“한국인은 꽃을 섬세하게 감상한다. 꽃 한 송이를 보더라도 ‘꽃잎이 풍성하고 색이 파스텔톤 계열이라 아름답다’고 세세한 부분까지 살펴본다. 손재주도 뛰어난 것 같다. 동대문 시장에서 한 할머니가 자수 놓는 걸 본 적이 있는데 그 디테일에 깜짝 놀랐다. 그래서 한국에서 작업할 땐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쓴다. 다행히 개인적인 성향과도 잘 맞는다. 라망시크레를 장식할 때 소품을 직접 제작해올 정도로 디테일에 철저한 편이다.”
지난 크리스마스 시즌 레스케이프 로비의 버드나무 트리. 모두 그의 작품이다

지난 크리스마스 시즌 레스케이프 로비의 버드나무 트리. 모두 그의 작품이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이번 작업을 하면서 티 살롱 장식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다. 처음 계획은 살구 색상의 프랑스산 앵무 튤립을 네덜란드에서 들여와 장식하는 것이었다. 앵무 튤립은 꽃이 피며 아래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뻗어가는 드라마틱한 느낌이 있다. 그런데 한국 공항에서 꽃에 흙이 묻었다는 이유로 검역 절차를 통과하지 못해 모두 폐기처분 됐다. 아쉬웠지만 한국에서 이를 대체할 만한 꽃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마음에 드는 목련과 튤립을 찾았고, 처음 연출과는 다르지만 충분히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왔다.”
다음 여름 시즌 콘셉트도 궁금하다.
“로비는 베르사유 정원을 콘셉트로 꾸밀 예정이다. 겨울에 썼던 크리스털을 꽃과 함께 설치해 빛이 다각도에서 반사되도록 할 것이다. 여름 햇살을 받은 꽃이 반짝이는 느낌을 상상하면 된다.”

글=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

사진=프리랜서 김동하, 레스케이프·토니 마크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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