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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마음속 영원한 센터장일 것입니다"...故 윤한덕 응급의료센터장 영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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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전 열린 고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 영결식

10일 오전 열린 고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 영결식

"이번 설 연휴 때 응급실에 특별한 사건 사고가 있었습니까. 없었다면 윤한덕 센터장을 생각해야 합니다."(허탁 전남대 의과대학 교수)

"당신의 소중한 가족들이 가졌어야 할 그 귀한 시간 저희가 빼앗습니다. 당신은 마음속 영원한 센터장이실 것입니다."(윤순영 재난의료상황실장)

"저는 아버지와 가장 닮은 사람이기에, 말하지 않아도 아버지가 가족에게 늘 미안함 가지고 있었던 것 잘 알고 있습니다."(장남 윤형찬 군)

10일 오전 서울 을지로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열린 고(故)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영결식. 그를 추모하는 의료계 동료들과 아들이 그에게 보내는 글을 읽어내려갔다.

"나는 못 보낸다, 어떻게 너를 보내냐"며 오열하며 영결식장으로 들어선 윤 센터장의 어머니는 아들의 영정 사진 앞에 국화꽃을 올려놓으며 또 한 번 목놓아 울었다. 영결식장 한쪽에는 윤 센터장에게 국화꽃 한 송이를 전하려는 동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눈이 붉어진 동료들은 서로를 끌어안으며 위로했다.

집무실 들른 영정사진…곁 지킨 동료들 

윤한덕 센터장의 영정사진을 안은 가족들이 그가 생전 일했던 집무실 앞을 돌아보고 있다. 이수정 기자

윤한덕 센터장의 영정사진을 안은 가족들이 그가 생전 일했던 집무실 앞을 돌아보고 있다. 이수정 기자

영결식이 끝난 뒤, 윤 센터장은 영정 사진으로 가족들과 집무실로 가는 마지막 발걸음을 옮겼다. 영결식장이 있는 국립중앙의료원 연구동부터 100m쯤 떨어진 행정동에 윤 센터장의 집무실이 있었다.

윤 센터장은 4일 이곳 2층에서 발견됐다. 윤 센터장의 동료들이 일렬로 늘어서 그의 발걸음을 지켜봤다.

단출하고 낡은 윤 센터장의 집무실 문 앞에는 일회용 커피 컵 몇 개와 전자담배, 국화꽃이 놓여 있었다. 가족들은 그 앞에서 잠시 고개를 숙여 고인을 기렸다.

행정동 건물 둘레로 산책로처럼 나 있는 길에는 동료들이 양옆으로 서서 고인의 영정사진이 건물 한 바퀴 도는 것을 함께했다. 가족들은 '응급의료기획연구팀'이라 적힌 문에 멈춰섰다. 윤 센터장의 동료가 고인이 밤낮없이 지켰던 행정동 2층을 가리켰고, 가족들은 그것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재로 남을 아들 볼 수 없었던 어머니

윤한덕 센터장의 동료들은 발인 후에도 윤 센터장의 곁을 지켰다.

윤한덕 센터장의 동료들은 발인 후에도 윤 센터장의 곁을 지켰다.

오전 11시, 윤 센터장의 발인 후에도 동료들이 윤 센터장을 따랐다. 영정사진이 그가 마지막까지 일했던 국립중앙의료원을 나설 때 의료원 앞 2차로 도로 양옆으로 수십명의 동료들이 일렬로 서서 그가 의료원을 떠나는 것을 지켜봤다.

운구차와 가족 및 동료를 실은 버스·승용차는 화장터인 서울시립승화원으로 향했다. 오후 1시 윤 센터장의 화장이 시작됐다.

윤 센터장의 관이 화장장으로 들어갈 때 윤 센터장의 어머니는 "네가 왜 죽냐, 우리 아들 못 보낸다"며 소리치고 울었다. 다른 가족들도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훔쳤다.

윤 센터장의 어머니는 2층에 마련된 유족 대기실에서 기운을 잃어 구급대에 실려 나갔다. 가족과 친척들은 비통한 표정으로 대기실을 지켰다.

친척들은 대기실에 앉아 "지금은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1시간 20분쯤 지났을까, 윤 센터장의 화장 절차가 거의 마무리됐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가족 및 친지, 수십여명의 동료들은 수골실(收骨室) 앞에 모였다. 수골실로 들어간 가족들은 화장이 끝난 윤 센터장의 유골이 수습돼 함에 담기는 것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몇몇은 유골이 담기는 것을 보다 되돌아 나와 눈물을 닦았다. 모든 화장 절차를 마친 윤 센터장의 유골은 하얀 천에 쌓여 아들의 품에 안겨 나왔다. 윤 센터장의 유골은 경기 포천의 광릉추모공원에 안장된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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