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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딩입고 핫팩 쥐고 공부…영하 10도에도 이어진 서울대 ‘난방파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대 관악캠퍼스의 기계ㆍ전기 노동자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일부 건물의 난방을 중단한 ‘난방파업’이 기온이 섭씨 영하 10도로 떨어진 8일까지 이틀째 이어졌다. 이날 열린 오세정 신임 서울대총장의 취임식은 노조의 난방파업 및 본관 무단점거 징계취소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규탄시위와 겹치면서 험로를 예견했다.

난방 끊긴 도서관, 패딩 입고 목도리 두른 채 공부

섭씨 영하 10도의 갑작스러운 추위가 찾아온 8일 오전 10시 서울대 중앙도서관. 어림잡아 30명의 학생이 이른 아침부터 열람실에 자리를 잡고 공부를 시작했지만 4명을 제외한 학생들이 모두 패딩을 입고 있었다. 일부는 열람실의 한기를 피하기 위해 목도리를 두르거나 머리에 후드를 쓰기도 했다. 한 남학생은 손이 시린지 책상에 핫팩을 놓은 채 계속 주물러가며 공부를 했다. 앞서 민주노총 서울일반노동조합 서울대 기계·전기분회가 7일 오후 12시30분부터 정년연장 및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행정관, 중앙도서관, 공과대학 등 3개 건물의 기계실을 점거하고 난방 장치를 끄는 등 난방파업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8일 노조의 '난방파업'으로 난방이 중단된 서울대 중앙도서관에서 한 학생이 한기를 피하기 위해 패딩에 모자를 쓴 채 공부를 하고 있다. 이병준 기자

8일 노조의 '난방파업'으로 난방이 중단된 서울대 중앙도서관에서 한 학생이 한기를 피하기 위해 패딩에 모자를 쓴 채 공부를 하고 있다. 이병준 기자

평소 서울대 중앙도서관에서 상주하며 공부를 한다는 서울대 학생 A씨는 "열람실 전체와 경비실에 난방이 끊겼다"며 "평소에는 더 따뜻한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이어 "낮에는 괜찮지만, 밤 10시에는 패딩을 입지 않으면 있지 못할 정도"라고 전했다. 서울대 대학원생 김모(28)씨는 "솔직히 많이 춥지는 않지만 기분이 나쁘다"며 "학생들을 볼모로 잡고 있는 느낌"이라고 불쾌감을 표하기도 했다. 이날 오전 도서관의 내부 온도는 섭씨 9도 수준으로 공부를 하기엔 한기가 느껴지는 정도였다.

일부 학생은 추위는 힘들지만 노조의 파업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열람실을 나오던 임모(30)씨는 “평소에는 패딩을 벗고 공부하지만, 오늘은 아침부터 계속 패딩을 입고 있었다”며 “다들 외투며 패딩을 입고 공부하면서 불편하긴 하지만 난방이 계속 끊기는 것은 아닐 것 같아 괜찮다”고 말했다.

서울대 측 관계자는 “중앙도서관 근무 직원 중 보일러 돌릴 수 있는 직원이 기계실을 찾아갔지만 (노조의 저지로) 접근하지 못했다”며 “개별난방이 완벽하게 되는 곳은 3층 좌측과 우측 큰 열람실 2개뿐이라 중앙도서관을 사용하는 대학생 및 대학원생들의 피해가 가장 걱정”이라고 말했다.

 “우리도 스테이크 먹고 싶다" vs "불법 파업"

무기한 파업을 감행한 노조 측은 학교 측에 행정ㆍ사무직 교직원과 같은 성과급, 명절 휴가비, 복지 포인트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원래 용역업체 소속 비정규직이다가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지난해 3월 정규직이 됐다. 이들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에서 "무늬만 정규직일 뿐 월급은 200만원 이하로 여전히 최저임금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도 스테이크를 먹고 싶다" "우리도 정규직이다, 차별을 반대한다"는 구호를 외쳤다.

이성호 분회장은 "전기보일러를 끈 것이 아니라 보일러가 꺼진 상태로 파업에 들어간 것"이라며 "어젯밤에 일부 건물이 동파될 것 같아 건물에 지장 없도록 조처를 했다"고 밝혔다. 이어 "도서관은 (난방이 끊겨) 죄송하지만, 학생들이 우리를 대변해줘야 한다"며 "서울대 전체가 춥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고 항변했다. 노조 측은 대학 측이 임금협상 및 정년연장 등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난방파업을 무기한 이어갈 예정이며, 다음 주 청소노동자들도 파업에 동참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 서울일반노동조합 서울대 기계·전기분회 소속 노동자들이 7일 오후 서울대 행정관내 기계설비실 입구를 막고 있다. [중앙포토]

민주노총 서울일반노동조합 서울대 기계·전기분회 소속 노동자들이 7일 오후 서울대 행정관내 기계설비실 입구를 막고 있다. [중앙포토]

학교 측은 이에 대해 “기계설비실은 노조 직원들 근무지이긴 하지만 자체 폐쇄는 엄연한 불법”이라며 “노조가 총학생회의 동의를 얻고 하는 파업이라고 주장하지만, 총학에 확인해보니 노조의 일방적인 파업이었다”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임금교섭ㆍ정년협상이 문제가 됐고 기계 전기노조는 합의 의사 있었으나 청소경비노조가 불만이었다”며 “청소경비노조는 정규직 전환 당시 65세 정년 68세로 늘려줬지만, 타결한 지 1년도 안 돼 69세까지 1년 더 늘려달라는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파업·규탄 회견으로 얼룩진 오세정 신임 총장 취임식  

이날은 오세정 신임 서울대 총장의 취임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취임식에 맞춰 노조의 파업 기자회견 외에도 2016∼2017년 서울대 본관 점거 당시 징계 처분을 받았던 학생들이 징계 무효소송 항소 취하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이들은 앞서 서울대 학생들은 시흥캠퍼스 조성 사업 추진에 반대하며 2016∼2017년 228일간 대학 본관을 점거했다. 대학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학생 8명을 무기정학에 처하고 4명에게는 유기정학 처분을 내렸다. 징계를 받은 학생 12명은 학교를 상대로 ‘징계 처분 무효 확인 소송’을 냈고, 지난해 11월 법원은 서울대가 내린 징계는 모두 무효라고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서울대는 1심 판결에 불복해 지난해 11월 23일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한 상태다.

오 신임총장은 이날 오전 11시 예정대로 열린 취임식에서 “많은 사람들이 서울대 위기론을 말하는데, 근본적으로 서울대가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우리 대학이 길러내는 인재는 주어진 문제를 푸는 능력보다 새로운 질문을 제기할 수 있는 능력, 또한 학문의 벽에 갇혀있기보다는 그 경계를 넘나드는 유연함을 갖추어야 할 것이며, 앞으로 서울대의 교육은 이러한 인재를 키우기 위한 혁신의 도정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취임식에는 전임총장, 학장 및 원장, 교수, 학생, 직원 등 250여명이 참석했다.

김다영ㆍ이병준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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