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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장관, 중국 기대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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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외교부 장관이 24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을 해결하는 데 중국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해외출장에서 돌아오면서다.

그는 그러면서 "중국이 6자회담에서 건설적 역할을 해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적극적으로 북한을 설득해 줄 것을 요청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 미사일 문제에 중국이 적극 개입해 달라는 주문이다. 압박하는 인상도 풍긴다. 26일의 중국 방문을 앞두고 "이런 얘기를 하러 간다"고 중국에 미리 흘린 측면도 있는 것 같다.

반 장관의 중국 역할론은 일리 있는 측면이 있다. 중국의 대북 영향력은 최고조다. 북한 주민이 쓰는 경공업 제품의 80%가 중국산이라 한다. 지난해 북한의 대외무역 규모는 30억 달러로 이 가운데 대중 무역이 52%였다(KOTRA 통계). 중국이 지난해 지어준 대안친선유리공장은 북한에서 가장 현대화된 공장이다. 이런 북한의 중국 의존도 때문에 '동북 4성(省)론'이 나올 정도다.

정치적 관계는 어떤가. 말은 '선린 우호, 호혜 평등'의 원칙이 강조되지만 경제적 의존성이 정치적 관계에도 나타나고 있다. 2003년 북한이 3자회담, 6자회담에 참가한 데는 중국이 대북 원유 공급을 일시 중단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그런 점에서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반 장관의 지적은 맞다. 그러나 북한 미사일 문제는 1차적으로 우리 문제다. 북한 미사일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한국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올리면 그 불똥은 우리한테 떨어진다. 정세의 불안정이 한국 경제에 몰고 올 파장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미국에선 북한을 선제 공격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공공연히 나온다. 안보도 마찬가지다. 미사일 방어(MD)체제를 위해 미.일의 군사 일체화는 가속화하고, 한국은 거기서 더 멀어질 수 있다. 일본엔 군비 증강의 명분을 준다. 중국이 뒷짐만 질 리가 없다. 동북아의 군비 확장은 우리에게 부담이다.

한국 정부가 북한 미사일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한 셈이다. 그런데도 반 장관 발언에서 그런 의지는 묻어나지 않는다. 한국 역할론은 국민에게 북한 미사일 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도 불가결하다. 남북 교류협력이 진척되면서 대북 압박의 끈도 생겨난 상황이다.

정부는 2002년 북핵 2차 위기가 불거진 이래 '당사자 주의'를 내세웠다. 6자회담 성사 과정, 지난해 9.19 공동성명 작성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다. 이번 북한 미사일 문제에서도 그런 적극적 자세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6자회담과 미사일 문제는 동전의 양면이 아닌가.

오영환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