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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볼에 곤돌라, 456㎞ 도보길…13조원 문재인표 DMZ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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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펀치볼. 정부는 290억원을 들여 곤돌라와 전망대를 설치할 계획이다. [중앙포토]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펀치볼. 정부는 290억원을 들여 곤돌라와 전망대를 설치할 계획이다. [중앙포토]

6·25 전쟁 때 격전지였던 강원도 양구군 펀치볼 지역에 290억원을 들여 곤돌라와 전망대를 조성한다. 인천시 강화군에서 강원도 고성군까지 비무장지대(DMZ)를 가로지르는 456㎞ 길이의 도보길이 생긴다.

정부, 2030년까지 접경지역 개발 #이명박 정부 시절 기본구상 변경 #환경단체 “생태계 파괴 불가피”

행정안전부가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접경지역 발전종합계획’을 7일 발표했다. 남북관계가 화해 분위기를 타면서 토지 이용, 편의시설 개발 등에서 제약을 받았던 경기·인천·강원도 접경지역의 15개 시·군에 성장동력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관광 활성화(3조원) ▶인프라 확충(1조7000억원) ▶경제성장 기반 조성(3조4000억원) ▶남북 교류협력 토대 마련(5조1000억원) 등 4개 분야 225개 사업이다. 2030년까지 13조2000억원이 들어가는 프로젝트다. 이른바 ‘문재인표 DMZ 구상’인 셈이다.

이번 계획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8월 나왔던 ‘접경지역 종합계획’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당시엔 “2030년까지 18조8000억원을 들여 세계적인 생태평화벨트로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흐지부지됐다. 지난해까지 투자된 금액은 2조8000억원에 그쳤다. 박형배 행안부 지역균형발전과장은 “당시 세웠던 발전계획을 8년 만에 변경하는 것”이라며 “생활 인프라 확충과 지역에서 신청한 숙원 사업이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벌써부터 졸속 개발, 환경 파괴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양구군 펀치볼에 설치하겠다는 곤돌라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이번에 양구군 해안면에 있는 펀치볼 지역에 290억원을 들여 곤돌라와 전망대, 편의시설을 짓겠다는 계획을 확정했다. 해안면 펀치볼은 접시처럼 움푹 팬 분지 지형으로, 마치 화채그릇(Punch Bowl) 같이 생겼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펀치볼 곤돌라는 양구군이 2013년부터 추진한 사업이다. 자동차로 15분 거리인 제4땅굴과 을지전망대 사이를 잇는 1.8㎞ 길이의 곤돌라를 놓아 관광 편의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기존 전망대를 허물고 새로 짓겠다는 계획도 들어 있다.

당시엔 사업 타당성이 낮다고 평가돼 백지화됐으나 이번 계획에 들어간 것이다. 최근엔 인근 화천군에서 백암산 케이블카 사업 추진 중이라 사업 중복성도 지적된다. 박형배 과장은 “양구는 (화천과) 같은 지역이 아니다”며 “다만 앞으로 환경영향 평가, 국방부와 협조 등 후속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번은 국비 지원을 위한 근거를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안나 속초·고성·양양 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양구는 멸종위기 1종인 산양 서식지인데 남북 화해 무드를 타고 성급한 개발 계획이 나온 듯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조인묵 양구군수는 “도로를 따라 지주를 설치할 계획이어서 산림 훼손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강원도 철원군과 경기도 포천군·연천군을 잇는 한탄강 주상절리 협곡에 생태체험 공간을 만드는 방안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한탄강을 따라 119㎞, 총 611억원이 들어간다. DMZ 생태계 전문가인 전선희씨는 “최근 연천군 내 감시초소(GP) 철수 과정에서 두루미 서식지가 위협받은 사례가 있다”며 “이처럼 접경지역이 ‘평화벨트 프레임’에 갇혀 생태 보존이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일회성일 수밖에 없는 한탄강 생태관광은 중장기적으론 생태계를 파괴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총 13조원대인 종합계획 중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규모가 7조원을 넘는다. 영종~신도 2차선 평화도로(1000억원), 액화천연가스(LPG) 시설(2035억원) 등이다. 철원에 통일문화교류센터를 짓는데 500억원이 잡혀 있다. 지난달 말 24조원대 사업에 대해 예비 타당성(예타) 조사를 면제한다고 발표한데 이어 또 다시 토건 프로젝트를 내놓은 것이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마치 예타 면제의 ‘DMZ 버전’ 같다”며 “생태계 보고(寶庫)를 위태롭게 하는 난개발이 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논의 과정에 참여했던 김승호 파주DMZ생태연구소장은 “생태 복원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지만 일부만 반영돼 유감스럽다. DMZ라는 아주 특별한 공간에 대해 시간을 두고 특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재 기자 lee.sangja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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