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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법 이어 상법 개정안…기업 규제법 줄줄이 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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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기계부품을 생산하는 대기업 계열 A사는 지난해 말 제품의 유지보수를 담당하던 자회사 대신 외국계 기업과 새 유지보수 계약을 했다. A사가 생산하는 제품이 국내에서 과점에 가까워 관련 기술을 숙지한 유지보수업체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유지보수 업체를 새로 구했지만 이번엔 타산이 맞지 않을까 걱정이다. A사 관계자는 “부담도 전보다 크고 무엇보다 기업 비밀이 유출될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일감 몰아주기 등 차단하는 내용 #2월 임시국회서 법안 통과 추진

연초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 발효에 이어 기업이 정부·여당의 ‘경제민주화법’ 국회 통과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2월 임시국회에서 공정거래법·상법 개정안 통과를 추진하고 있다. 기업을 옥죄는 규제법안이 눈앞에 다가온 셈이다.

A사가 유지보수업체를 바꾼 건 지난해 8월 입법 예고된 공정거래법 개정안 때문이다. 새 공정거래법은 이른바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했다. ‘사익편취’ 규제대상은 지금까지 상장사의 경우 총수일가 지분이 30% 이상, 비상장사는 20% 이상이었지만 일률적으로 20% 이상으로 낮췄다. 이들 회사가 지분 50% 이상을 가진 자회사(손자회사)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새 사익편취 규제가 무조건 위법이 되는 게 아니라 부당 거래행위가 입증될 때 이뤄지는 사후규제라고 말한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선 규제대상에 포함되는 자체가 부담이다. A사 역시 ‘총수의 사금고’란 주홍글씨를 다느니 비용이 더 들더라도 규제대상에서 빠지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지난 6일 경제개혁연구소가 발표한 ‘기업집단의 일감 몰아주기 등 사익편취 해소사례’에 따르면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받는 기업 182곳 가운데 70여곳이 규제 대상에서 벗어났다. 35개사는 합병을 통해, 20개사는 지분 매각으로 총수 지분율을 낮췄다. 해산(13개사), 증여(2개사)를 통해 규제에서 벗어난 기업도 있었다.

공정거래법 전문가인 이준길 법무법인 지평 고문은 “사익편취 규제는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기 위한 공정거래법의 영역이라기보다 탈법적인 상속과 증여를 막기 위한 것”이라며 “입법 목적에 맞게 운용하기 위해선 사익편취 문제는 상속법이나 다른 법률로 규제하는 게 합당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도 기업 입장에선 부담이다.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집중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은 소수 주주의 권익을 강화할 수 있지만, 해외 투기 자본이 특정 기업의 이사회를 장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양날의 검’으로 불린다.

권종호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영자의 책임을 사후적으로 묻게 하는 제도는 바람직하지만 집중투표제나 감사위원 분리선출 등은 회사 지배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지양해야 할 규제”라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도 “공정거래법·상법 기업 내부 활동에 대한 불확실성을 높일 수 있어 기업 입장에선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동현·오원석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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