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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의 사이언스&] 문재인 정부의 수소경제, 꿈일까 현실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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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수소연료에는 석탄·석유·천연가스와 달리 탄소 원자는 전혀 포함돼 있지 않다. 『수소 경제』 저자 제러미 리프킨은 ’수소가 미래의 주요 에너지원으로 등장한다는 것은 인류 역사를 지배해온 탄화수소 에너지의 종말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중앙포토]

수소연료에는 석탄·석유·천연가스와 달리 탄소 원자는 전혀 포함돼 있지 않다. 『수소 경제』 저자 제러미 리프킨은 ’수소가 미래의 주요 에너지원으로 등장한다는 것은 인류 역사를 지배해온 탄화수소 에너지의 종말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중앙포토]

‘탈(脫)탄소화란 연료에서 단위 질량 당 탄소의 수가 적어지는 것을 말한다. 나무 연료는 수소(H) 원자 한 개에 탄소(C) 원자 열 개, 석탄은 수소 원자 한 개에 탄소 원자 한두 개, 석유는 수소 원자 두 개와 탄소 원자 한 개, 천연가스의 경우 수소 원자 네 개에 탄소 원자 한 개가 결합한다. 탈 탄소화의 여정 끝에 수소가 있다.’

‘탈탄소’ 수소경제 두가지 시각 #“세계 주요국, 수소경제 재시동 #경쟁 우위 한국, 앞서 투자해야” #일각 “효율 낮고 온실가스 발생”

미국의 세계적 경제학자이자 문명 비평가 제러미 리프킨이 그의 저서 『수소 경제』(The Hydrogen Economy·2002)에서 인류의 탈 탄소화와 수소경제에 대해 설명한 글이다.

리프킨이 역설한 수소경제가 한국 땅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정부가 수소경제를 한국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들고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7일 울산에서 열린 수소경제 로드맵 발표 행사에서 “2030년 수소차와 연료전지에서 모두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힌 뒤 “수소차 보급을 올해는 4000대까지 늘리고, 2022년 8만1000대, 2030년 180만 대를 거쳐 이후 수백만 대 시대로 빠르게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금까지 누적 1조원 수준인 수소경제 효과는 2022년 16조원, 2030년 25조원으로 규모가 커지고, 고용 유발 인원은 지금까지 1만 명 수준에서 2022년 10만 명, 2030년 20만 명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7일 울산에서 열린 행사에서 수소경제 로드맵을 발표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7일 울산에서 열린 행사에서 수소경제 로드맵을 발표했다. [뉴스1]

문 대통령이 수소경제에 자신감을 갖는 데는 이유가 있다. 현대차가 2013년 세계 최초로 수소연료전지차를 양산하는 등 기술력으로 볼 때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 차원에서 수소경제 추진을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현 정부와 맥을 같이하는 노무현 정부도 2005년 ‘친환경 수소경제 구현을 위한 마스터 플랜’을 내놓았다. 하지만 당시엔 기술력 부족 등으로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했다.

수소경제는 학계에서는 물론 현 정부를 지지하는 진보세력 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수소경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수소는 우주의 75%를 차지할 정도로 무한한 에너지이며,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대표적 청정 에너지라고 주장한다. ▶수소는 리튬이온 배터리를 이용한 에너지저장장치(ESS)보다 전기를 장기간 손실 없이 안전하게 저장할 수 있다는 장점도 내세운다. ▶수소연료전지차는 전기차보다 주행거리는 길고, 충전시간은 짧은 점이 매력이다. 주행하면서 대기 중의 미세먼지를 정화하는 효과도 있다. ▶또 수소연료전지는 그 자체가 작은 발전소이기 때문에 발전원을 최종 소비자 가까이에 따로 배치하는 이른바 ‘분산전원(分散電源)’이라는 세계적 흐름에도 부합한다고 말한다.

반면, 수소경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기술적 측면뿐 아니라, 세계적 흐름이나 수용성 측면에서도 적합하지 않다고 말한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처장이 대표적 인사다. 그는 수소경제에 정책과 예산을 분산하기보다는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의 보다 빠른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양 처장은 “수소는 클린에너지도 아니고, 효율도 떨어진다. 전 세계에서는 수소 경제는 물론 수소 자동차도 이미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 났다”고 단정한다. 자동차도 세계 시장에서 전기자동차로 판가름난 상태인데, 한국만 수소 자동차를 얘기한다는 것은 갈라파고스, 즉 고립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수소차를 살 수 있는 나라가 없는데,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수소차를 만들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는 게 양 처장의 논리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도 문 대통령의 로드맵 발표에 대해 “현실성 낮은 수소 에너지를 개발하겠다는 것은 비효율 및 손실, 미세먼지·이산화탄소 등 환경오염 우려에도 불구하고 태양광 및 천연가스의 수요를 높이기 위한 구실” 이라고 주장했다.

수소경제의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중앙일보가 수소경제의 논란에 대해 팩트체크를 해봤다.

한국과 일본의 수소연료전지 자동차

한국과 일본의 수소연료전지 자동차

◆‘수소는 청정에너지 아냐’=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주장이다. 반대론자들은 연료전지에 필요한 수소를 생산하는데도 이산화탄소(CO2)와 같은 온실가스가 발생하기 때문에 지구 온난화를 막는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수소는 우주의 75%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흔한 원소이지만, 지구상에서는 수소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치명적 약점이다.

현재로써는 석유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부생(副生) 수소와 ▶천연가스를 분해해서 얻는 수소가 대부분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물의 전기분해(수전해)를 통해 얻는 수소는 청정하지만, 아직 효율이 떨어져 실험실 수준에서 그치고 있다. 천연가스의 주성분인 메탄(CH4)이나 휘발유의 주성분 옥탄(C8H18)의 화학식에서 알 수 있듯, 수소를 분리해내면 온실가스의 핵심 원소인 탄소 또한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다.

그렇다고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독일에서는 이미 천연가스를 통해 수소를 얻으면서도 대기 중에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기술을 상용화했다. 천연가스의 주성분인 메탄가스에 수증기(H2O)와 이산화탄소(CO2)를 주입해 온도를 올리면 수소(H)와 일산화탄소(CO)로 분리되는데, 이 일산화탄소를 플라스틱 원료로 공급하는 방법이다. 태양광이나 풍력·수력·원자력 등으로 생산한 전기가 남아돌 때 수전해를 통해 수소를 생산하는 방법도 여전히 유효하다.저렴한 비용으로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생산하는 연구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한종희 KIST 청정신기술연구소장은“우리나라 정부는 물론 전 세계에서 깨끗한 방식의 수소 생산을 위한 연구개발 투자를 늘려가고 있다”면서“2030년쯤이면 경제성을 갖춘 수전해 수소생산 기술이 완성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수소는 효율 떨어져’= 반대론자들은 천연가스로 터빈을 돌려 바로 전기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말한다. 천연가스를 분해해 수소로 만든 뒤 다시 산소와 반응시켜 전기를 발생시키는 과정에서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들은 수전해 역시 전기로 물은 분해해서 수소를 만든 다음 다시 이를 연료전지에 넣어 전기를 만드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말한다. 대신 2차전지를 이용한 전기 충전소를 많이 만들면 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양이원영 사무처장은 “천연가스를 연소시켜 발전하면 50% 이상의 에너지가 전기로 바뀌고, 이때 발생하는 열까지 난방에 이용하면 효율이 90% 이상 오른다”고 말했다.

이런 논리는 수소경제 찬성론자들도 어느 정도 인정한다. 하지만 이들은 수소연료전지차와 전기차의 장·단점을 들어 수소의 강점을 역설한다. 수소차는 상대적으로 충전 시간(5분 이내) 빠르고, 장거리(500~600㎞)를 갈 수 있다.

한종희 소장은 “전기차와 비교할 때 수소차는 덩치가 클수록 유리하다”며 “전기차는 덩치가 커지는 만큼 배터리를 더 많이 실어야 하지만, 수소차는 연료전지에 수소 저장탱크만 추가로 달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버스나 트럭·기차는 수소가 유리하고 소형·경차는 전기차가 유리하다”며 “어느 한쪽을 택하기보다는 수소차와 전기차가 병존하는 길을 찾는 게 더 현명하다”고 덧붙였다.

◆‘수소경제는 트렌드 아니다’= 수소경제는 2000년대 초 한차례 전 세계적으로 바람을 일었으나 이후 기술력 부족과 경제성 확보 등의 문제로 열기가 식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수소경제열풍은 다시 일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수소사회 실현을 위한 수소기본전략을 세우고, 2050년까지의 수소사회 로드맵을 확정했다. 수소경제를 위한 인프라 보급은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210기의 수소충전소를 갖췄다. 반면, 한국은 아직 14기만을 보유하고 있다. 수소차 상용화는 한국 현대차가 가장 앞섰지만, 일본 도요타는 2014년 수소연료전지 승용차 미라이를 출시해 5800대(2018년 2월 기준) 이상을 팔았다. 판매 대수로 세계 1위다. 혼다도 2016년 클래리티를 출시해, 도요타를 추격해오고 있다.

독일은 지난해 세계 최초로 수소기차를시범 운행했으며, 2040년까지 디젤 열차를 전량 폐기하기로 했다. 독일 정부는 2030년까지 수소차 180만대, 수소충전소 1000개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도 2017년 ‘수소 이니셔티브’를 선언하고, 전기차 보급과 별개로 2030년까지 수소차 100만대, 수소충전소 1000개소 설립을 목표로 내세웠다.

김민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원천기술과장은 “수소는 장점만큼이나 인프라 구축에 돈이 많이 들고, 아직 기술적으로도 성숙하지 못한 점 있다”면서도 “세계 주요국들이 다시 수소경제로 시동을 걸고 있는 만큼 한국이 경쟁 우위에 있는 수소 분야에 앞서 투자해 미래성장동력을 이끌어야 가야 한다”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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