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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 왔다 간 네 살 아이가 정신과 치료 받은 사연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전승준의 이(齒)상한 이야기(2)

아이들에게 치과가 무서운 곳이 아닌 추억의 장소로 기억된다면...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의심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치과에 첫 방문은 언제가 좋을까? 젖니는 썩어도 괜찮은 걸까? 때론 소란스럽고 역동적인 소아치과의 세계로 안내한다. <편집자>

치과에 처음 온 아이는 병원 안으로 들어오는 것조차 거부하며 우는 일이 종종 있다. (내용과 연관없는 사진). [사진 pixabay]

치과에 처음 온 아이는 병원 안으로 들어오는 것조차 거부하며 우는 일이 종종 있다. (내용과 연관없는 사진). [사진 pixabay]

어느 날 치과 입구에서 아이의 찢어지는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무슨 일인가 하고 나가보니 우리 치과병원에 처음 온 아이인데 안으로 들어오는 것조차 싫어서 마구 거부하면서 울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님의 손에 붙들려서 억지로 진료실로 들어와서는 부모님과 위생사 여러 선생님이 아이의 사지를 붙잡고 입을 벌리는 기구를 사용해서 억지로 구강 상태를 검사하였습니다. 4살 정도밖에 안 된 어린아이였는데 앞니가 아주 심하게 상한 상태였습니다.

겨우 검사를 마치고 그렇게 썩은 이유를 알아보니 아이가 자다가 깨면 자꾸 다시 자지 않고 칭얼거려서 평소에 좋아하는 요구르트를 먹이면서 재웠는데 먹고 입 안에 남은 단성분이 충치(치아우식증)균이 급속도로 번식해서 아이의 이를 빠른 속도로 썩게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수유 시기에 모유나 분유를 먹이면서 재우거나 이렇게 어떤 음식이라도 먹은 후에 이 주위를 감싸고 남아있으면 짧은 기간에 아이의 이를 녹이게 됩니다.)

워낙 심하게 상한 터라 마취 주사를 놓고 신경치료를 해야 했는데 여러 상황상 아이 몸을 그물같이 생긴 감싸는 도구를 이용해서 몸의 움직임을 고정하고 입을 벌리는 기구를 사용하면서 세상이 떠나갈 정도로 우는 아이의 머리를 붙들고 십 여분 동안 치료를 하였습니다. 아이는 온몸에 땀으로 범벅이 된 상태로 부모님께 안겨서 귀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날 오전에 어머님께서 병원으로 전화를 주셨습니다. 아이가 자고 일어나서는 발끝을 펴지를 못하고 오므리면서 걸음을 걷지 못한다고 하시면서요. 저는 혹시 아이가 발에 상처가 나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고 소아청소년과에 문의하시도록 안내를 드렸습니다.

오후에 다시 전화를 주셨는데 소아청소년과 선생님께서 아이를 보시더니 발에 이상은 안 보이고 아무래도 치과 치료할 때에 아이가 너무 놀라서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받은 것 같다고 소아 정신과로 의뢰하셨다고 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소아 정신과를 다녀오시고는 그쪽 선생님께서도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고 당분간 치과에 방문하지 말고 아이를 잘 안정시키라고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후에 그 아이는 더 이상 치과에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대전시 치과의사회 소속의 의사들이 지역의 유치원과 어린이집원생 5000여명을 대상으로 무료 구강 검진을 하고 있다. [뉴스1]

대전시 치과의사회 소속의 의사들이 지역의 유치원과 어린이집원생 5000여명을 대상으로 무료 구강 검진을 하고 있다. [뉴스1]

어린 대다수의 어린이가 낯선 곳과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있기에 마련이고 더욱이 그곳이 치과라면 주위에서 들은 간접경험 때문에 선입관을 가지고 더더욱 무서운 곳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방문하기 때문에 그러할 것입니다. 이 두려움과 불안은 종종 이전의 힘들었던 의과적, 치과적 경험과 관련이 되어서 나타나기도 합니다.

또한 치과의 날카롭게 보이는 금속도구와 치료에 사용되는 재료가 하필 사용상의 편리함을 위해서 주사기 같은 형태의 용기에 담겨 있어서 치료 시 들리는 특유의 소음, 그리고 소독약품 냄새와 함께 어우러져 더욱 으스스한 분위기가 생깁니다.

그러므로 어린이를 치과에 데려가는 보호자는 그러한 부분에 대한 것을 최대한 줄여줄 수 있는 치과를 찾는 것이 좋으며, 치과 의료진은 한 개인의 향후 치과 검진 및 관리에 대한 부분이 치과에 대한 평안, 신뢰가 될 것인지, 아니면 두려움과 공포가 될 것인지를 결정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린이는 학습하게 됩니다. 스트레스를 이기는 과정은 어쩌면 성장의 한 부분일 수 있으며 그것을 치과에서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각 어린이의 가정환경과 성격, 그리고 처한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심리적인 상태가 다르게 되며 그러한 어린이를 진료하게 되는 치과 의료진은 불안과 공포심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어린이와 보호자가 구강관리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길이며 과제가 될 것입니다.

성인과 어린이의 치과 진료의 가장 큰 차이는 상호관계입니다. 성인을 진료할 때에는 치과 의료진과 환자의 일대일 관계이지만, 어린이를 진료할 때에는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치과 의료진의 삼각관계가 생깁니다.

소아환자 진료의 삼각관계. [제작 유솔]

소아환자 진료의 삼각관계. [제작 유솔]

그림의 화살표가 왕복 관계로 되어있음이 중요합니다. 이 관계는 상호 간에 매우 긴밀하고도 진솔한 소통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며 그럼으로써 다음에 진행될 진료과정에 대해서 불안감이 생기는 것을 최대한 예방할 수 있습니다. 1895년 McElroy는 “비록 어린이의 치아치료가 완벽하게 되었더라도, 그 치료를 받은 어린이가 울면서 집으로 돌아갔다면 그것은 실패한 치료이다”라고 서술한 바 있습니다.

또한 1970년 Dr. L.D. Pankey는 “I never saw a tooth walk into my office.”, “Never treat a stranger, never treat as a stranger.”라는 말을 남기면서 치과 의료의 방향성이 국소적인 치아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치아를 가지고 있는 환자의 행복과 삶을 바라보아야 한다 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아이가 약간의 충치가 있는 치아가 있는데 병원에 대한(꼭 치과만이 아니라) 심한 불안과 공포심을 보여 간단한 검진을 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에 그 아이의 충치를 꼭 당장 치료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둘러 할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바로 치료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선생님이 놀이하듯이 치과 기구를 하나씩 소개하고 직접 들어보아 만지게 해주는 등의 친숙해지기 노력을 여러 번에 걸쳐서 하는 것이 어린이의 심리와 행동을 긍정적으로 바뀌도록 하는 시작이 됩니다.

그런 노력을 행동유도라고 하는데 이는 치과 의료진이 효과적, 효율적으로 아이의 진료를 수행함과 동시에 치과에의 긍정적인 태도를 심어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린이가 치과 의료진을 신뢰할 수 있도록 아이의 심리상태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기반으로 그 아이에 맞춤의 말과 행동을 아이의 눈높이로 하여야 하며(예를 들면 치과 드릴을 ‘오토바이 돌돌이’라고 표현한다든가, 치태를 제거해주는 것을 이를 씻어준다고 하는 등), 본격적으로 아이를 진료하기 전에 치과 의료진이 어린이에게 진심으로 잘 대해주겠다는 생각이 있다는 것이 아이에게 잘 전달된다면 아이의 치과에 대한 마음은 열릴 수 있습니다.

결국 어린이를 검진하고 진료할 때 최상의 목표는 그 어린이가 치과 의료진을 믿고 치료를 즐겁게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결국 어렸을 때 치과에 대한 이미지를 어떻게 가지도록 하는지가 평생의 구강건강을 좌우할 수 있습니다!

전승준 분당예치과병원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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