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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7도에 모인 1000명 '노란나비', "할머니 조심히 가세요"

중앙일보

입력

김복동 할머니 영결식 전 행진을 준비하는 관계자들. 김정연 기자

김복동 할머니 영결식 전 행진을 준비하는 관계자들. 김정연 기자

일본군 ‘성노예’ 피해를 세상에 알린 고 김복동 할머니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일본 대사관을 찾았다. 김 할머니의 운구차는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일본 대사관 앞을 거쳐 매주 수요집회가 열리는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영결식을 마치고 장지로 향했다. 영하 7도의 추위 속에서도 나비를 든 시민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영하 7도에도 1000여명 모여

운구행렬이 멈춰 서서 서울시청 벽면에 나오는 김복동 할머니 추모 영상을 보고 있다. 김정연 기자

운구행렬이 멈춰 서서 서울시청 벽면에 나오는 김복동 할머니 추모 영상을 보고 있다. 김정연 기자

오전 8시 반 시청 앞 서울광장에는 200여명의 시민이 모였다. 김복동 할머니의 나이 94를 상징하는 94개의 만장(깃발처럼 드는 세로형 플래카드)과, 김 할머니의 평화를 기원하는 노란 나비 모양 수백개가 광장을 가득 채웠다. 최광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홍보대사는 선두차량에서 마이크를 통해 “94개 만장 속에 할머니의 삶과,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일이 담겨있다”면서 “할머니는 나비가 되어 더 훨훨 날아가세요, 우리 모두가 김복동이 되어 큰 뜻을 함께 해나갈게요”라고 말했다. 행진 중간중간 선두차량에서는 “세계를 다니면서 소녀상을 세울 거야, 다 세우기 전에 빨리빨리 사과하고~”등 김 할머니의 생전 목소리를 내보내기도 했다.

오전 8시 50분, 영정을 든 윤홍조 마리몬드 대표와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가 앞장을 서고, 운구차가 뒤를 따랐다.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과 정의당 박인숙 여성위원회 위원장도 차량 옆에서 천천히 걸어갔다. 일행은 시청 건물 외벽 화면에 김 할머니 추모 영상이 나오자 행렬 중간중간 김 할머니 생전 육성이 흘러나오자 잠시 멈춰서서 시청 벽면을 올려다보기도 했다.

운구차량 뒤로는 만장과 나비를 든 시민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처음 시청앞을 출발할 때 200여명이던 일행은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면서는 1000여명으로 불어나, 광화문광장 옆 세종대로 700m를 가득 채웠다.

190201 김복동 할머니 영결식. 김정연 기자

190201 김복동 할머니 영결식. 김정연 기자

190201 김복동 할머니 영결식. 김정연 기자

190201 김복동 할머니 영결식. 김정연 기자

日대사관 앞에서 “사과하라” 항의도

김 할머니의 운구차는 일본 대사관 앞에서 멈춰섰다. 김 할머니의 영정과 시민들 모두 일본대사관 쪽을 향해 돌아서서 “일본은 공식 사과하라, 일본은 공식 사죄하라”등 구호를 외치고 김 할머니의 생전 소원을 다시 한번 새겼다. 일본대사관에 대한 항의는 15분간 이어졌다.

10시 30분 영결식이 시작됐다. 최광기 대사는 “좋은 날 함께 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김복동 할머니의 작은 손을 많이 잡아드리지 못한 게 많이 후회된다”며 “올해 3‧1운동 100주년, 임정 100주년이라서 봄에 더 환하게 웃으셨을텐데 시간이 야속하다”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식을 열었다.

이어 김 할머니의 생전 모습이 담긴 영상이 상영됐다. 병상에 누워있는 마지막 모습과, 어린 시절 사진, 2015년 12월 28일 한일 위안부합의가 타결됐을 때 “이렇게 해야 된다고? 전혀 아니에요. 모른다고, 나이 많아서 모른다고 무시하는 거예요?”라고 말하는 모습 등이 담겼다. 이순덕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영정을 보며 김 할머니가 “순덕형 고생많았네. 싸우다가 따라갈테니..”라고 말할 때는 모여선 추모객들 중 “할머니~!”하고 부르는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맘 편히 사랑하시고, 사랑받으시고, 웃으시길"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에는 어린이, 학생, 외국인도 다수 참석했다. 김정연 기자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에는 어린이, 학생, 외국인도 다수 참석했다. 김정연 기자

김 할머니가 살던 ‘평화의 우리 집’에 의료봉사를 나가며, 김 할머니가 입원한 뒤에도 긴 시간 할머니를 봐왔던 권미경 연세대학교의료원 노동조합 위원장은 “복동할머니 보고 계시죠, 제 딸 혜인이가 14살이 됐다. 할머니 빈소에 왔는데 마음이 미어졌다”며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 권 위원장은 “그토록 좋아하던 쉼터도 다시 못 가시고, ‘엄마 엄마 너무 아파’ 하시던 모습이 너무 아프다”며 “할머니, 이제 배 안 아프시죠. 눈도 잘 보이죠. 일본 사과 받을 때까지 활짝 웃지도 않을 거라고 하셨는데, 하늘에선 동생도 엄마도 아빠도 같이하시길. 마음껏 웃으세요”라고 했다. 듣고 있던 시민들은 여기저기서 눈물을 닦았다. 입을 막고 우는 사람도 있었고, 훌쩍이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이해성 극단 고래 대표는 수요집회에서 할머니를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김 할머니가 ‘사랑은, 나에게는 냄새도 맡아본 적 없고 빛깔도 본 적 없는 과일이야’라고 하셨다”고 했다. 이 대표는 “자신 갈 때 선녀들이 가마 가지고 와서 자기를 데리고 갈 거라고, 무지개 타고 천국으로 올라갈 거라고 하셨는데.. 부디 가신 곳에서는 맘 편히 사랑하시고 사랑받고 행복하세요”라고 말하며 울먹였다.

190201 김복동 할머니 영결식. 김정연 기자

190201 김복동 할머니 영결식. 김정연 기자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는 마지막 호상 인사에서 “다음 주 수요일에도 김복동 할머니는 분명히 이곳에 앉아계실 겁니다”라며 “할머니들이 다 돌아가시고 0명이어도, 11살 김복동, 13살 김복동, 60살 김복동까지 ‘일본대사는 들어라!’했던 수만의 김복동이 생겨날 것. 그게 우리가 이 자리에서 할머니께 드릴 수 있는 약속이었으면 좋겠다”고 말을 맺었다.

노란 나비를 흔들며 김 할머니를 향한 마지막 인사가 끝난 뒤, 영정 앞에 헌화 행렬이 이어졌다. 11시 30분쯤 김 할머니의 운구차량은 28년간 지키던 소녀상 앞을 떠나 마지막 쉼터인 천안 망향의 동산으로 향했다. 주변에 선 시민들은 “할머니 사랑합니다” “할머니 조심히 가세요, 하늘나라에서 평안하십시오” 등 마지막 인사로 배웅했다. 김 할머니의 장례는 화장으로 치러진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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