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폭력, 스토킹…이럴 때 주민등록번호 바꿀 수 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15년부터 시행된 주민등록번호 변경제도를 통해 794명의 주민등록번호가 변경됐다. 변경 신청 사례 중 상당수가 가정폭력이나 상해·폭행 위협 때문이었다. [픽사베이]

2015년부터 시행된 주민등록번호 변경제도를 통해 794명의 주민등록번호가 변경됐다. 변경 신청 사례 중 상당수가 가정폭력이나 상해·폭행 위협 때문이었다. [픽사베이]

#. A씨는 10년간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지면서 극심한 데이트 폭력에 시달렸다. 전 남자친구는 A씨의 집주소, 휴대전화 번호는 물론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 정보를 소상히 알고 있었다. 전 남자친구는 교제 기간 동안 A씨의 개인정보를 도용해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아 사용했고, 헤어진 뒤에는 성관계 동영상을 온라인에 유포한다며 지속적으로 협박·폭행했다.

행안부 '주민등록번호 바꿀 수 있어요' 사례집 발간 #보이스피싱 등 재산 피해 등 대표 사례 42건 수록

전 남자친구는 결국 특수상해 등의 혐의로 징역 2년10개월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하지만 A씨는 그가 출소 후에 보복을 할 거라는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주민등록번호를 알고 있으니 A씨가 아무리 이사를 가도 신원조회를 해서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 작은 가게를 운영하던 B씨는 해당 지역에서 활동하던 조직폭력배한테서 지속적으로 돈을 상납하라는 위협을 받았다. 조직폭력배는 가게 기물을 파손하고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각서, 주민등록등본과 초본을 갈취해갔다. 그러다 조직폭력배가 검거되자 경찰은 B씨를 불러 피해 사실을 진술하게 했다. 조직폭력배는 징역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B씨는 이미 주민등록등본과 초본을 갖고 있는 조직폭력배가 가족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자신도 모르게 대출을 받지 않을까 불안감을 떨칠 수 없어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행정안전부는 30일 '주민등록번호 바꿀 수 있어요' 사례집을 발간했다. 여기에 수록된 실제 사례다. 두 사람은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했다. 사례집에는 이 외에도 주민등록번호가 변경된 대표 사례 42건이 구체적으로 정리돼 있다.

2017년 5월 주민등록 변경 제도가 도입됐다. 현재까지 1407명이 변경을 신청했고, 794명이 주민등록번호를 바꿨다. 보이스피싱이나 신분 도용을 당해 재산 피해를 본 경우가 492건으로 가장 많았다. 가정폭력으로 인한 피해 140건, 상해나 협박 피해도 87건으로 나타났다.

2017년 6월~2018년 11월 전국 시도별 주민등록번호 변경 신청 현황. [행안부]

2017년 6월~2018년 11월 전국 시도별 주민등록번호 변경 신청 현황. [행안부]

이 외에도 학생이 교사의 노트북을 통해 인터넷 사이트 아이디 등을 해킹해서 교사의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파악하고 이를 빌미로 수년간 스토킹하자 교사의 주민번호를 변경하도록 허용했다. 북한 이탈 주민의 신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주민등록번호 때문에 중국비자발급이 거부되고 신변 위협을 받게 된 경우도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했다.

변경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안은 주민등록번호 유출과 관련 없는 피해이거나, 입증 자료가 부족하거나, 제 2의 피해가 우려되지 않는 경우였다.

홍준형 행안부 주민등록번호변경위원회 위원장은 "이번 사례집을 통해 주민등록번호 유출에 따른 피해 사례가 공유되고, 유사 피해 예방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