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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양대 노총이 버린 경사노위, 결정장애에 빠졌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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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사회적 대화와 타협은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9일 이렇게 말했다. 그만큼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현 정부가 내세운 노동존중 사회의 상징이자 정책의 첨병이다.

노동계 힘 실어주던 청와대 곤혹 #“사회적 타협은 선택사항 아니다” #경사노위 운영 형태도 문제 #노동계 동의 없인 의결 힘들어

그러나 출범(2018년 11월 22일)한 지 기껏 두 달 만에 선원 없는 쪽배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그것도 선장이 그렇게 아끼던 선원들이 모두 떠나면서다. 민주노총 대의원들은 28일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 복귀를 막았다. 같은 날 한국노총도 보이콧을 선언했다.

이 와중에 사실상 마지막 남은 선원인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대화’ 대신 ‘투쟁’ 깃발을 단 배로 옮겨타는 두 노총을 보면서 일언반구 없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투다. ‘망망대해에서 사회적 대화를 해봐야 배가 산으로 가는 형국 아니겠느냐’는 기류마저 풍긴다. 이 정도면 경사노위의 존재감은 거의 상실된 상태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는 경사노위가 가진 또 다른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운영상의 난맥이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는 “경사노위는 예전의 노사정위와 다르다. 민주노총의 요구사항이 반영돼 새롭게 출범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합의기구가 아니라 협의기구”라는 점을 강조했다. 교섭은 하되 실행 의무가 따르는 합의는 안 하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실제 운영되는 형태는 그렇지 않다. 경사노위가 낸 이번 주 일정에는 합의를 시도하는 사안이 두 건 포함돼 있다.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 최종 합의 시도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 합의안 관련 논의이다. 협의만 한다면 경사노위는 정책의 첨병 역할을 하기 힘들다. 그런데도 노동계는 합의는 거부하는 모양새다.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관철하는 창구 역할로 족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이래서는 경사노위에 선원들이 모두 돌아온들 제 역할을 하기 힘들다.

더 이상한 건 합의가 안 되면 노동계는 공익위원안 채택도 못 하게 한다. 그것도 노동계에 유리한 건 채택하고, 불리한 건 안 된다는 식이다. 한국노총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을 둘러싼 경영계 안에 대한 논의 결과를 공익위원이 정리하는 것에 대해 반발했다. 이걸 이유로 경사노위에서의 대화 잠정 중단을 선언했다. 노동계 안에 대한 논의 결과는 지난해 11월 이미 공익위원안으로 정리됐다. 이에 대해선 환영했었다. 공익위원안은 말 그대로 합의 도출이 어려울 경우 그동안의 논의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다. 당연한 절차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이마저도 입맛에 따라 재단하려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의제를 의결하기도 어렵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노사정 위원 가운데 부문별 위원이 절반 이상 참여해야 의결이 된다”고 말했다. 예컨대 노동계 위원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각 1명, 양 노총이 추천한 위원 3명 등 총 5명이다. 의결을 하려면 3명 이상 참여해야 가능하다는 뜻이다.

사실상 불출석 제도를 이용해 언제든 의결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경사노위가 성과를 내기 어려운 구조라는 뜻이기도 하다.

설령 합의 또는 의결을 해도 이행을 촉구할 장치도 없다. 무시하면 그만인 셈이다. 민주노총은 대의원대회에서 이 점도 부각했다. 이 때문에 경사노위가 노사의 힘을 과시하는 장소로 변질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한국노총은 사회적 대화 중단을 선언하면서 “정부와 협상하겠다”고 천명했다. 경사노위를 정부와 담판을 위한 마중물로 여기는 형국이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회적 대화체가 투쟁의 장으로 활용되어서는 안 된다”며 “주장을 관철하는 공간이 아니라 상대의 주장을 이해하는 기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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