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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 결국 파격 대신 안정 택했다

중앙일보

입력

법원이 인사에서 파격 대신 안정을 택했다. ‘법원장 후보추천제’ 시범 실시로 의정부지법 판사들이 단수 추천한 신진화 의정부지법 부장판사(연수원 29기) 대신 장준현(22기) 동부지법 수석부장판사를 임명한 것이다. 신 부장판사는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으로 ‘코드 인사’ 논란이 일기도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신 부장판사의 연차가 법원장으로서의 책무를 수행하기에는 낮다”는 취지로 인사 배경을 설명했다.

신진화 의정부지법 부장판사 법원장 임명 안해

김명수 대법원장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시설물철거 및 토지인도 청구 관련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대법정 자리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시설물철거 및 토지인도 청구 관련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대법정 자리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법원 안팎에서는 김 대법원장의 결정이 ‘상식적’이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법원장 후보추천제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법원장 후보추천제는 각 지방법원 판사들이 해당 관할 법원장 후보를 직접 추천하는 제도다. 올해는 의정부지법과 대구지법에서만 시범 실시했으나 김명수 대법원장은 향후 전국 법원으로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법원장 후보추천제 자체가 문제"  

장준현 동부지법 수석부장판사

장준현 동부지법 수석부장판사

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처음부터 ‘인기투표’가 될 수밖에 없는 법원장 추천제가 말이 안 되는 것”이라며 “민주적 절차에 따라 투표를 통해 뽑아야 하는 자리와 연조와 경험·능력에 따라 임명해야 하는 자리가 다르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고법의 한 판사는 “법원장 추천제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단수 추천이 될 때부터 문제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침해할 소지도 있다”고 밝혔다.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아무리 시범 시행이라고 해도 제대로 준비를 한 뒤에 적용했어야 했다”며 “‘사법개혁’이라는 명목 아래 지나치게 앞서 나가다 이렇게 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장 개혁 의지 꺾였다" 

한편에선 김 대법원장이 애초의 ‘사법개혁’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 대법원장의 개혁 의지가 꺾였다는 지적이다. 지법의 한 판사는 “시행하기로 했으면 판사들의 뜻을 받아들였어야 한다”며 “첫 시작부터 대법원장이 스스로 자신의 공약을 접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법의 한 부장판사도 “결국 ‘제왕적 대법원장의 권한 제한’이라는 사법개혁의 목적을 대법원장이 부정한 것 아니냐”라며 “인사와 기수를 분리해야 한다는 취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법원 내에서는 "인사 때문에 법원이 다시 쪼개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안 그래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으로 뒤숭숭한 법원인데 인사를 놓고 또 쪼개지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라며 “법원이 언제까지 정치적인 문제로 휘둘릴지 암담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논란을 의식한 듯 김 대법원장은 인사 발표를 하며 내부 게시판에 “의정부지법의 사법행정사무에 비춰 법원장으로서의 막중한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도의 재직기간과 재판 및 사법행정 경험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법원 가족들께서 널리 이해해주실 것을 부탁한다”고 밝혔다.

'돌아온 법원장' 10명 재판부로 복귀  

한편 이날 발표된 법관 인사에 따르면 ‘법원장 순환보직제’에 따라 7명의 법원장이 재판부로 복귀했다. 노태악 서울북부지방법원장, 이광만 부산지방법원장 등 7명은 고법 재판부로 돌아가 다시 재판을 맡을 예정이다. 노 법원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나쁜 사람’으로 찍혔던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의 동생이다.

왼쪽부터 이광만 부산지방법원장, 노태악 서울북부지방법원장.

왼쪽부터 이광만 부산지방법원장, 노태악 서울북부지방법원장.

또 최완주 서울고법원장과 황한식 부산고법원장, 성백현 서울가정법원장 등이 원로법관으로 임명돼 1심 소액 사건을 담당하게 된다. 대법원은 “재판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취지의 인사”라며 “법원장 순환보직제와 원로법관제도가 점차 제대로 정착돼 국민께 좋은 재판을 보여드릴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한 고위 법관은 “예전에는 법원장을 마치면  모두 퇴직하는  분위기였는데 요즘은 다시 재판부에 복귀하는 게 정착돼 한편으로는 매우 좋다”며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 정도로 법률 시장이 어려워진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여성 고위법관 안 보인다" 지적도 

이날 발표된 고위 법관 중 여성은 한 명도 없었다. 이를 두고 ‘여성과 남성 법관의 균형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여성 변호사는 “법원이 여전히 보수적인 문화를 갖고 있다는 점을 방증하는 것 아니냐”라며 “적극적으로 여성 법관을 발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이번 정부 들어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에 여성 고위 법관이 많이 임명됐다”며 “워낙 적은 풀이었던 만큼 이번 인사에서 고위 법관으로 임명할 사람이 부족했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후연·정진호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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