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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학번에 우병우였다면, 85학번은 안태근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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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법대 84학번에서 우병우가 날고 기었다면 1년 아래에는 안태근이가 있었습니다. 사법시험을 대학교 3학년 때 합격한 건 동기 308명 중에 태근이가 유일했으니까요.”

가고싶은 자리 다 갔던 안태근의 몰락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하고 인사보복한 혐의로 지난 23일 법정 구속된 안태근(53) 전 법무부 검찰국장에 대해 한 대학교 동문은 이렇게 회고했다. 1987년 안 전 국장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사법고시에 나란히 합격했다. 당시 우 전 수석이 만 20세, 안 전 국장이 만 21세였다. 안 전 국장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연수원에 들어가 연수원 기수(20기)는 우병우(19기) 전 수석 보다 하나 아래다.

1심에서 법정 구속된 안태근 전 검사장. [연합뉴스]

1심에서 법정 구속된 안태근 전 검사장. [연합뉴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강정현 기자.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강정현 기자.

“영동고 수재로 유명…검사장 달고 승승장구”

안 전 국장은 당시 강남의 신흥 명문고였던 영동고 내에서도 전교 1,2등을 다투는 수재였다. 한 고교 동문은 “태근이가 2학년 때 이미 공부를 끝내놓고 3학년 때는 공부도 설렁설렁 할 정도였다. 모범생 스타일은 아니고 술·담배도 입에 대보는 호기심 많은 친구였다”고 기억했다.

군 법무관을 거쳐 1994년 처음 검사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안 전 국장은 동기들 중에 돋보였다. 연수원 졸업 성적도 우수해 서울지검에서 초임 검사로 근무했고, 법무부와 대검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13년 말 정기인사에서 그가 법무부 기획조정실장(검사장급)에 발탁되었을 때도 동료 검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안 전 국장과 가까이서 일했다는 한 전직 검사는 안 전 국장에 대해 “완벽주의에 가깝게 일을 처리해 윗선에서 항상 데려가려고 다투는 사람이었다“고 평했다.
다른 검사는 “우 전 수석은 끝내 검사장을 못 달고 나갔지만 안 전 국장은 정말 가고 싶은 자리는 다 갔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검찰국장 오르고 노회찬과 설전…대중 눈엔 ‘오만함’으로 비춰

1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이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노회찬 의원 유튜브

1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이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노회찬 의원 유튜브

검찰 내 신망이 두터웠던 안 전 국장이 불안한 행보를 보인 건 법무부 ‘실세’인 검찰국장 자리에 오르고 나서다. 2016년 11월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참석한 안 전 국장은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과 신경전을 벌였다.

노회찬: “엘시티(LCT) 사건에 대해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보고가 되고 있습니까?”
안태근: “기억이 없습니다.”
노: “보고한 사실이 없는 게 아니라 기억이 없다고요?
안: ”보고 안 했을 수도 있구요.“
노: ”아니 보고 안 했으면 안 한 거지, 보고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예요?“
안: ”그런 기억이 없습니다.“

노: ”아니면 아닌 거고, 모르면 모르는 거지. 기억이 없다는 건 무슨 말이예요?“
안: ”그럼 모르겠습니다.“

당시 노 전 의원은 화를 감추지 못한 채 “막장이다”며 안 전 국장을 한참동안 노려봤다. 검찰 내부에서는 안 전 국장의 ‘돌발 행동’에 대해 여러 추측이 돌았다고 한다. 한 전직 검사는 “이미 검찰 커리어의 정점을 찍은 안 전 국장의 눈에 야당 의원이 들어왔겠느냐"고 했고, 다른 검사는 “무슨 집안에 힘든 일이 있나 싶었다”고 말했다.

보직 지키려 ‘인사보복’…“용서 구했더라면”

안태근 전 검사장(왼쪽)은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하고 인사상 불이익을 준 의혹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안태근 전 검사장(왼쪽)은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하고 인사상 불이익을 준 의혹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안 전 국장이 지난해 이른바 ‘돈 봉투 만찬’에 연루됐을 때도, 성추행 사건이 터졌을 때도 주변 지인들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며 옹호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서 검사의 눈에 비친 안 전 국장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서 검사는 재판 과정에서 "가해자가 검찰에서 절대 권력을 누렸고 현재까지도 그 권력이 잔존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는 저에게는 범죄자일 뿐이다"고 증언했다

이 사건을 맡은 1심 재판부는 안 전 국장이 힘들여 쌓아온 커리어에 대한 욕심이 오히려 ‘독’이 됐다고 봤다. 재판부는 “성추행 사실이 내부에 퍼질 경우 안 전 국장이 자신의 보직에 문제가 생길 걸 우려해 서 검사의 사직을 유도했다”고 판결문에 적시했다. 또한 “그럴 리 없다”는 검찰 내 여론은 서 검사가 피해를 당하고도 수 년간 침묵하고 고통받게 한 원인이 됐다.

 안 전 국장을 잘 아는 한 변호사는 “처음 서 검사 이야기가 검찰 내부에 돌기 시작했을 때 안 전 국장이  바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더라면 일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그 친구가 오점을 인정하지 않고 덮으려다 보니 이렇게 됐다, 너무 잘 나가서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했던 게 발목을 잡았다”며 연신 “안됐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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