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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1875년 운양호사건 연상시키는 한·일 초계기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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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정치학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정치학

일본 초계기가 다시 저공비행을 하고 한국 국방부가 이를 강하게 비판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물론 일본 측은 저공비행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일본 방위상은 “이제 한국과 협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일 군사협력은 계속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올봄으로 예정된 해상자위함의 부산항 입항을 사실상 취소했다.

일본 초계기의 위협 비행 사건은 #140여년 전 강화도 침범 떠올려 #한·일간 군사적 긴장 고조시켜 #자위대의 군대화 여론 조성 속셈

현재 벌어지고 있는 자위대의 저공비행 등 위협 행동은 일반인이 볼 때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 잘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군사관계자가 볼 때 일본 초계기가 8자 모양의 비행루트로 한국 군함 가까이 선회하는 행위는 감시비행의 전형적인 모습이고, 그것을 저공에서 한다는 것은 우방국에 대한 있을 수 없는 위협 행위라는데 의견이 일치한다. 레이더 문제와 관련, 일본의 유명한 보수 논객이자 전 자위대 항공막료장인 다보가미 도시오(多母神俊雄)는 레이더를 쏘는 행위는 통상 있는 일이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고 자신의 트위터에서 주장했다.

이번 사건으로 필자의 뇌리를 스쳐 가는 것이 1875년의 강화도 사건이다. 당시 일본은 경색된 한·일관계를 타개하기 위해 조선을 도발하고 외교전을 벌여서 조선을 개항시키는 계획을 수립했다. 이를 위해 운양호(雲楊號) 등 2척의 일본 군함이 강화도 남단을 향했다. 그들은 조선 영해를 침범하면서 몇 사람들이 한 척 보트에 갈아타고 강화도 남단 초지진에 접근해 “물이 떨어졌으니 물을 달라”고 호소하는 척했다. 영해 침범에 격노한 조선 측의 선제공격을 이끌어내는 작전이었다. 이에 휘말린 조선은 일본 군함을 향해 먼저 대포를 쐈다. 이에 일본 측도 응수해 교전이 일어나 운양호는 평화적으로 도움을 요청했는데도 먼저 공격한 것이 조선군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영종도에 상륙해 조선인 약 40명을 살해하고 가옥을 불태운 뒤 일본 나가사키로 귀항했다. 그 후 일본은 국제여론에 한국의 ‘불량 행위’를 호소하며 외교전에 돌입, 그 결과 강화도조약이라는 불평등조약을 조선에 강요했다.

시론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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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초계기 저공비행도 이처럼 일본 측이 경색된 한·일관계 타개용으로 한국 측의 ‘강한 조치’를 원하고 실행한 것이 아닐까 우려된다.

초계기 문제의 배경에는 아베 총리의 숙원인 개헌 문제가 걸려 있을 가능성도 있다. 현재 일본 정부의 개헌 작업이 그리 순조롭지 않다. 북한과의 군사적 긴장관계가 사라진 상황이라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승격시키는 것을 골자로 한 평화헌법 개정에 국민 지지율이 50%를 넘지 못하고 있다. 2017년 말까지만 해도 북한 미사일 문제가 있어 아베 총리는 북한에 대한 강한 대응을 언급하면서 떨어진 지지율을 만회하기를 되풀이했다. 그러나 남북이 화해로 가는 현 상황은 개헌에 불리하다. 아베 정권으로서는 정식 군대가 필요하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한 시점이 바로 지금인 것이다. 아베 총리의 임기는 2021년 9월 끝나는데 남은 2년 8개월 정도의 일정으로 헌법을 개정한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극약처방이 필요하다. 개헌 발의에는 우선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고, 그다음 국민투표로 50% 이상의 찬성표를 얻어야 한다. 아베 총리로서는 지금 개헌절차를 서둘러야 하는데 이렇다 할 계기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군이 강한 자위 조치에 나선다면 아베 정권으로서는 박수를 칠 만한 반전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현재 아베 정권은 한·일관계 경색뿐만이 아니라 러시아와의 관계도 경색국면으로 들어갔다. 러·일 간 분쟁지역인 남크릴열도(북방 4개섬) 문제 해결에 아베 총리는 그동안 많은 공을 들였다. 그 결과 4개 섬 중 우선 작은 섬 2개를 반환받을 수 있는 합의를 끌어낸 아베 총리였지만 최근 러시아인들의 강한 반대로 그 문제가 순조롭게 풀릴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미국과는 언제든지 미·일 무역마찰이 일어날 상황이다. 그러니 현재 사방의 국제정세는 일본에 유리하지 않다. 이런 상황을 한꺼번에 타개하기 위해 국민들의 눈을 한국과의 군사갈등에 집중시켜 개헌의 필요성을 설득시키는 외교 전략에 아베 정권이 나선 것이 아닐까. 한국은 항상 나쁘고 일본은 옳다는 도식을 만들어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켜 개헌의 당위성을 국민 여론으로 만드는 목적이 숨어있지 않을까 우려된다.

과거 일본군은 ‘상대가 먼저 공격해 왔다’라는 명분을 세우고 군사행동을 개시하는 것이 그들의 상투적 수단이었다. 만주사변, 중·일전쟁을 막론하여 일본은 필요할 때 그런 전략을 썼다. 과거 일본군의 악몽을 되살린 것이 최근의 초계기 저공비행이자 레이더 갈등이다. 필자의 생각이 기우임을 바랄 뿐이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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