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론

‘스카이 캐슬 신드롬’이 교육에 던진 과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주석훈 미림여고 교장 리셋 코리아 교육분과 위원

주석훈 미림여고 교장 리셋 코리아 교육분과 위원

JTBC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 지난 주말 23.2%의 시청률로, 비지상파 역대 최고를 경신했다. 이 드라마가 인기를 얻은 까닭은 국민적 관심사인 자녀 교육, 특히 대학 진학과 관련한 욕망과 불안감을 해결해 주는 해결사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카이 캐슬’은 부모들의 불안 심리를 진하게 한 방울 추출해 낸 뒤 이를 코끼리만큼 과장해서 만든 이야기이다. 시청자들은 소위 코디네이터라는 이름의 해결사가 제시하는 불법과 위법, 비교육적 행위는 보지 않고,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결과의 허상에만 눈길을 주고 있다.

사교육 ‘불안 마케팅’ 막으려면 #교육당국은 학부모와 소통하고 #고교는 내신 철저히 검증하며 #대학은 평가과정 상세 공개해야

물론 언론에 등장하는 일부 교육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은 ‘스카이 캐슬’이 인기를 끄는 이유가 사실에 가깝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극히 작은 개연성을 마치 사실인양 선동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강남을 벗어난 일반 고교에서도 코디네이터 도움 없이 서울대 의대에 합격하고 있다.

드라마에서처럼 입시 코디네이터가 있어 코디를 완벽하게 하면 성적은 좀 올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실력 자체를 키우는 것은 이와 다른 문제이다. 학생이 자기주도적으로 노력을 부단히 하면서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할 때 실력이 향상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학은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실력을 보지 성적을 보지 않는다. 전교 1등이라고 해서 합격하고 2등이라고 해서 불합격하는 구조가 아닌 것이다.

특히 드라마에서 타깃으로 하는 서울대 의대는 더욱 그렇다. 내신 1.0등급은 떨어지는데, 2.0등급은 합격하는 입시가 서울대 의대 학생부종합전형이다. 드라마 작가가 높은 수준의 상상력으로 대학 입시를 묘사했지만, 대학 사정관들은 작가보다 더 정교한 방법으로 학생을 평가한다. 드라마에서 강예서 같은 학생은 서울대 의대에 떨어지기 딱 좋은 학생이다. 결과적으로 ‘스카이 캐슬’은 서울대 의대 학생부종합전형을 매우 심하게 왜곡한 드라마이다.

시론 1/28

시론 1/28

하지만 사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 드라마가 일으킨 신드롬을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의 교육정책은 거의 일방통행이었다. 학부모의 불안한 마음을 어루만지는 진심어린 소통의 장, 학부모가 만족하는 대화의 장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사교육의 ‘불안 마케팅’을 막기 위해서는 학부모와의 소통, 학부모와의 대화, 학부모 연수가 강화되어야 한다. 교육부·교육청·대학·고교에서 교육과 입학을 담당하는 분들이 함께 학부모들을 만나 실상을 설명하고 우리 교육의 방향성에 대해 협의해야 한다.

이때 자녀 교육에 열정적인 학부모들의 노력을 단순히 ‘치맛바람’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이는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는 태도이다. 선생님이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내신 문제를 출제하고, 과목별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을 어떻게 써주는지, 학생이 제출하는 자료를 반영해 주는지, 학생들에게 열정이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속속들이 꿰뚫고 고민하면서 자녀 교육에 전념하는 학부모들도 있다. 이러한 학부모의 열정을 비난하기보다는 학생·학부모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교사들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것이 교육 당국의 역할이다.

학교도 변해야 한다. 고교에서는 학부모위원이 참여하는 공정성심의위원회를 구성·운영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내신 시험, 학생부 기재 등의 과정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또 교내에 차별금지위원회를 운영하며 학생을 성적 등으로 차별하는 행위(특별반 운영, 경시대회 몰아주기 등의 의혹)가 발생하지는 않는지 지속적으로 감독할 필요도 있다. 다행히 학교 현장에서는 보고서 유사도 검색, 학생 심층 인터뷰 등을 통해 대리 또는 허위 작성 사례를 자체적으로 검증하는 시스템이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또 외부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하기 위해 수행평가를 수업 시간 내에 하는 활동으로 국한하는 등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대학도 이제는 과감하게 변해야 한다. 대학마다 평가 요소와 기준이 다른데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사들도 그 차이점을 모른다. 대학에서 공개하는 정보도 너무 추상적이다. 예측 가능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 여기에서 불안이 발생하고,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코디네이터가 활동할 공간이 생긴다. 그러므로 대학은 평가 과정 전반을 구체적으로 공개해야 하며, 한걸음 더 나아가 평가 결과를 토대로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졌는지 고등학교 못지않게 철저히 검증받아야 한다.

‘스카이 캐슬’은 교육과 입시에 관한 한 매우 심하게 과장된 드라마다. 하지만 드라마 속 학부모들의 교육열만큼은 현실적이다. 이것이야말로 드라마 속 허구에서 우리가 간과하면 안 될 팩트이다. 교육 당국과 교사들에게 더 큰 사명감과 책무성이 요구되는 이유다.

주석훈 미림여고 교장·리셋 코리아 교육분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