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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연 60조 시장 건 미국-유럽간 디지털 전쟁 터졌다…한국은?

중앙일보

입력

프랑스, 구글에 644억 벌금 부과

프랑스가 21일(현지시간) 미국 구글에 5700만 달러(약 644억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구글이 사용자들에게 개인정보를 어떻게 수집하고 사용하는지 충분히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7월 구글에 반독점 규정 위반을 이유로 43억4000만유로(약 5조6576억원)라는 천문학적 과징금을 매긴 적 있다. 이에 비하면 이번 벌금액은 그야말로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하지만 구글은 물론 미국 인터넷 기업, 나아가 세계 인터넷 업계가 이번 프랑스의 조치를 긴장된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EU '데이터 보호무역 주의' 신호탄  

이번 벌금의 배경엔 '미국 IT거인에 데이터를 쉽사리 내주지 않겠다'는 유럽의 전략이 배어있어서다. '데이터 보호무역 주의'가 본격 등장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구태언 법무법인 테크앤로 변호사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 구글 앱을 기본 탑재해 이익을 많이 취했다는 이유로 매긴 반독점 위반 과징금과는 차원이 다른 갈등이 불거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이번 벌금형의 배경을 이해하려면 EU가 지난해 5월 도입한 '개인정보 보호규정(GDPR)'으로 시선을 옮겨야 한다. GDPR은 '유럽연합 국민은 자신이 이용하는 모든 기업에게 개인정보의 열람, 정정, 삭제, 처리, 제한, 이동 등의 요구가 가능하다'는 규정이다. 한마디로 미국의 인터넷기업이 유럽인의 개인정보를 활용하려면 일일이 동의를 받고, 정보를 해외로 이전하는 것도 마음대로 해선 안된다는 규정이다. 벌금도 엄청 나서 위반 시엔 글로벌 연매출의 4% 또는 2000만유로(250억원) 중 더 높은 금액을 내도록 했다.

당시 EU가 이같은 규정을 만들자 글로벌 인터넷 업계에서는 "GDPR이 향후 미국과 유럽간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프랑스의 이번 조치는 GDPR 등장 후 첫 벌금 부과라는 점에서 당시의 우려겨 현실이 됐다는 의미를 갖는다. 특히 이번 조치 이후 미국 IT 기업에 대한 EU의 데이터 규제가 본격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 기업들은 긴장하고 있다.

유럽을 '디지털 싱글 마켓'으로 만들겠다는 의도  

유럽이 지난해 GDPR을 도입한 배경에는 유럽 전체를 '디지털 싱글 마켓'으로 만들려는 EU의 전략이 담겨 있다.

EU는 오프라인 시장에서는 이미 단일 시장 형성에 성공했다. 가스·전기 같은 각 국가의 기간산업을 제외하면 여권없이 각 나라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단일통화인 유로를 사용한다. 그러나 디지털 마켓에서는 국경을 허무는데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EU 국가들은 디지털 시장에서 미국에 점차 종속되고 있다. EU와 구글은 데이터 유입·유출량을 공개하지 않지만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2015년 조사에 따르면 EU 회원국 트래픽의 절반 이상은 미국으로 가고 있다. 대부분 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 같은 'IT 공룡'에게 데이터가 집중된다. EU 시민이 역내 다른 국가의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하는 경우는 15%에 그쳤고, EU 국가 사이에서 데이터가 국경을 넘은 경우는 4%에 그쳤다.

EU 트래픽 절반 이상, 미국으로 빠져나가  

EU는 인구 5억명에 역내총생산 15조 유로(약 6644조원)라는 큰 시장을 갖고 있으면서도 인구 3억에 국내총생산 2853조원인 미국에게 디지털 시장을 내주고 데이터 마저 뺏기고 있는 셈이다. EU 집행위는 GDPR을 도입하면서 '데이터 이동만 막아도 유럽에 디지털 싱글 마켓이 조성되고 연간 62조원 규모의 추가 성장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구 변호사는 "데이터 확보 없이 4차산업혁명이 불가능하다는 EU의 위기감이 '디지털 싱글 마켓'이라는 전략을 낳았고, 이를 성공시키기 위한 장치가 GDPR"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데이터 싸움서 밀리지 않으려면  

이번 유럽의 조치는 구글에게 '구글세'를 매긴다던지, 반독점법을 적용한다던지 하는 그간의 국내 구글 견제 움직임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얘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도 이 싸움에서 예외일 수 없다고 지적한다. 구 변호사는 "자유무역을 지향하면서 데이터 쇄국주의 법안을 만드는 것은 권장할 일은 아니다"면서도 "EU가 디지털 경제로 전환하려는 노력은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내부에서만이라도 데이터를 자유롭게 유통·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국내에 헬스케어 등 신사업이 열리고, 새롭게 생성된 데이터가 다시 국내 기업에 쌓이는 선순환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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