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간 발레를 했다는 샤를리즈 테론의 날렵한 액션.
그는 우선 자신이 영화 제작이나 캐스팅에는 전혀 관여한 바가 없다고 밝혔다. "제작사가 가능한 많은 관객이 보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다"는 그의 말은 원작자로서 아쉬움의 표현이기도 하다.
주인공을 맡은 샤를리즈 테론에 대해서도 "멋진 외모로 우아한 동작을 보여주지만 관습적인 여자 영웅의 모습을 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좋은 싸움꾼이기는 하지만 폭력적 삶을 영위해가는 데 대한 죄의식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제가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만든 원래 의도는 할리우드의 관습과 공식을 깨려는 것이었습니다. 정의의 사도가 악의 무리를 소탕하는 영화를 보는 데 지쳤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제 작품에서는 선과 악, 리얼리티와 판타지, 주연과 조연의 구분이 모호합니다. 그게 현실이기도 하고요."
그는 영화는 글보다 내면의 생각과 느낌을 묘사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꼽았다. 영화라는 장르가 전통적으로 시각적.물질적 묘사에 그치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외부로 끄집어 내는 데 가장 신경을 쓴다고 설명했다.
테론을 만난 피터 정(左).
실사 영화는 곳곳에서 애니메이션의 이미지를 차용했다. 하지만 몇몇 부분은 맥락이 달라 느닷없다는 느낌을 준다. '파리'장면이 대표적이다. 원작을 보면 날아가던 파리가 쇠창살에 갇힌다. 카메라가 줌아웃하면서 보여준 것은 쇠창살이 아니라 바로 이온의 속눈썹. 이에 반해 영화에서는 처음부터 테론의 얼굴이 등장한다. 그리고 날아가는 파리를 속눈썹으로 잡는다. 마치 무협지에서 고수가 젓가락으로 파리를 잡듯.
피터 정이 1990년에 만든 애니메이션 ‘이온 플럭스’.
그는 자신의 시리즈에 기초한 장편 애니메이션 '이온 플럭스'를 준비 중이다. "전쟁.종교.희생.절대권력을 지닌 정부가 수행하는 정의 등 정치적.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만한 내용을 담아내고 싶다"고 말했다. 자금을 모으는 것이 관건이라는 피터 정 감독은 "그래도 영화로 인해 '이온 플럭스'라는 이름이 많이 알려졌으니 그건 좋은 일"이라고 덧붙였다.
정형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