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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에 상처 줘 깊이 반성"…재판장서 고개도 못 든 조재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3일 오전 조재범(38)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의 항소심 재판이 열린 수원지법 108호 법정.
"선수들을 최고의 선수로 육성하고 싶었는데 제 잘못된 지도방식으로 선수들에게 상처를 주게 돼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민트색 수의를 입은 조 전 코치가 입을 열었다,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변호사 쪽으로 몸을 돌린 채 바닥만 내려다보던 그는 일어서서 "반성한다"고 말을 하는 순간에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조재범 전 코치. [연합뉴스]

조재범 전 코치. [연합뉴스]

여자 쇼트트랙 간판인 심석희 선수 등을 상습적으로 때려 다치게 한 혐의로 기소된 조 전 코치에 대한 항소심 재판이 이날 열렸다.
그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준비가 한창이던 지난해 1월 16일 훈련 중 심 선수를 수십 차례 때려 전치 3주의 상처를 입히는 등 2011년부터 지난해 1월까지 총 4명의 선수를 폭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23일 조재범 전 국가대표 코치, 상습상해 항소심 재판 #검찰 "성폭행 수사 위해 시간 필요하다" 재판 연장 요구 #법원 "상습상해와 성폭행 공소사실 연관없다"며 거부 #검찰, 조 전 코치에게 징역 2년 구형…선고는 30일 예정

이날 재판의 관심사는 법원이 검찰이 요구한 재판 기일 연장을 법원이 받아들일지 여부였다.
상습상해 피해자인 심 선수가 지난달 중순 "조 전 코치에게 2014년부터 여러 차례 성폭행과 강제추행을 당했다"는 추가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 사건은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수사하고 있다.
검찰이 "성폭행 수사를 위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의사를 재판부에 밝혔다. 심 선수가 고소한 성폭력 피해 가운데 1건이 이미 기소된 폭행과 동시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항소심 재판부인 수원지법 형사항소4부(문성관 부장판사)도 검찰의 요청을 받아들여 지난 14일로 예정된 조 전 코치에 대한 선고 공판을 연기하고 이날로 속행 기일을 잡았다.

그러나 검찰은 전날(22일) 또다시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니 재판 기일을 연장해달라"고 요청했다.

수원지방법원. 최모란 기자

수원지방법원. 최모란 기자

하지만 재판부는 이날 검찰의 요청을 거부하고 이달 30일 선고 공판을 열기로 했다.
재판부는 "상습범은 범죄사실이 여러 개라고 해도 법률적으로 1개만 인정이 된다. 공소사실의 동일 상습상해와 성폭력은 양자 간 공소사실의 동일성(연관성)이 없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받는 7가지 공소사실(상습상해 등) 중 하나인 심석희 선수의 상해 부분만 따로 떼어내 성폭행 혐의를 추가하는 공소장 변경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재판 연기 요청 거부 사유를 설명했다. 또 "성폭력 범죄 사건 수사를 위해 재판을 속행하기는 어렵다"며 "상습상해 공소사실 중 문제가 된 폭행 부분을 철회하든지 아니면 공소사실을 유지할 것인지 입장을 정리하기 바란다"고 했다.

재판부는 "법원의 심판 대상은 상습상해와 재물손괴다. 성폭력 범죄는 심판 대상이 아니다"라며 "원심에서도 상습상해와 재물손괴만 다뤘으니 항소심에서도 성폭력 범죄 부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검찰은 "문제가 된 1건에 대한 공소사실을 유지하겠다"며 조 전 코치의 상습상해 혐의 등 혐의에 대해서만 1심과 같은 징역 2년을 구형했다.

지난 1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조재범 코치 성폭력 사건 의혹 관련 진상규명 및 스포츠계 성폭력 문제 재발 방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조재범 코치 성폭력 사건 의혹 관련 진상규명 및 스포츠계 성폭력 문제 재발 방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조 전 코치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예지의 오동현 변호사는 "피고인이 잘못된 지도 방식으로 피해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것을 반성하고 있다"면서도 "성폭행 부분은 피고인이 모두 부인을 하고 있다. 이 부분은 수사기관의 조사를 성실히 받으며 나중에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심 선수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세종의 임상혁 변호사도 "추가 고소 이후 심 선수와 가족들이 잠도 못 자고 고통을 받는 상황이라 수사가 조속히 마무리돼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조 전 코치가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고 하는데 심 선수는 (피해) 기억도 생생하고 진술도 구체적이고 상세하다. 조 전 코치가 모든 범죄 사실을 인정하고 사건을 조기에 종결시켜 심 선수가 선수로 활동할 수 있도록 협조하는 것만이 본인의 죄를 벗을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수원=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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