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중국서도 "대~ 한민국" 하고 싶은데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한국과 프랑스의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이 열린 19일 새벽 한국 유학생들이 베이징체육대학 앞의 한 야외주점에서 응원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중국 공안들이 대학 앞 도로에서 근무를 서고 있다. 베이징=김경빈 기자

중국은 월드컵에 못 나갔지만 열기는 한국 못지않다. 카페에서, 호프집에서, 길거리 주점에서 밤마다 축구는 대륙의 기쁨이 된다.

중국 언론이 마련한 월드컵 특집 기사의 문패는 '간베이(干杯)'다. 월드컵(世界杯)이라는 잔(杯)을 깨끗하게 마셔 버리자(干)는 얘기다. 철저하게 월드컵을 즐기자는 중국인들의 생각은 여기서도 오롯하다. 그러나 한국전만 열리면 왠지 분위기가 썰렁해진다. 공안(公安.경찰)의 눈초리도 날카로워진다. 이유가 뭘까.

한국과 프랑스가 맞붙은 19일 새벽, 베이징(北京) 변두리 상디(上地)의 한 야외 주점. 중국 공안들이 간간이 늘어서 있다.

한국 유학생 수백 명이 이곳 상디에 모여 "대~한민국"을 외쳤다. 유학생들이 즐겨 모이는 학원가 '우다오커우(五道口)'를 마다하고 그곳에서 4㎞나 떨어진 외딴 상디에 온 이유는 간단하다. 우다오커우에서의 야외응원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베이징 공안 당국은 월드컵 기간에 야외응원을 모두 불허했다. 19일엔 아예 대형 TV가 설치된 야외 주점까지 철시시켰다. 길거리에서 응원할 수 있는 길을 원천 봉쇄한 것이다. 공안이 내세운 이유는 치안과 주민의 안녕이다. 경기가 심야 혹은 새벽에 열리기 때문에 야외응원이 치안 불안을 일으킬 수 있고, 주민들의 안면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중국 공안은 사람들이 이유없이 모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거리응원을 틈타 '일부 불온 세력'이 집단 행동에 나설 것을 우려해서다. 그러나 거주 지역도 아닌 상가 지역 내 야외 주점까지 철시한 건 가혹한 처사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한국 유학생뿐 아니라 월드컵 특수를 기대하고 있는 상인들도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유학생 이은희(25.여)씨는 "왜 축제를 축제로 즐기게 해주지 못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적절한 장소를 선정해 공안 감독 아래 안전하고 유쾌하게 응원할 수 있는데도 공안들이 이런 수고를 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지적이다. 거리응원은 서울발 세계 공통의 월드컵 축제다. 올림픽을 앞둔 나라답게 축제를 함께 즐기고, 즐기게 해주는 여유있는 모습을 기대할 순 없는 걸까.

김경빈 사진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