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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살 때 어머니는 말하셨지” 덴마크 음유시인의 인생 철학

중앙일보

입력

덴마크의 3인조 밴드 루카스 그레이엄. 오는 24일 첫 단독 내한 공연을 갖는다. [사진 워너뮤직]

덴마크의 3인조 밴드 루카스 그레이엄. 오는 24일 첫 단독 내한 공연을 갖는다. [사진 워너뮤직]

“어른들 말씀 중 틀린 거 하나 없다”는 말은 동서고금의 진리일까. 덴마크의 3인조 밴드 ‘루카스 그레이엄’을 이끌고 있는 루카스 그레이엄(31)을 보면 아무래도 그런 듯하다. “내가 일곱 살 때 어머니는 말씀하셨어 친구들을 많이 사귀라고” “내가 열한 살 때 아버지는 말씀하셨어 좋은 여자를 만나라고”라는 가르침을 따른 덕에 외롭지 않은 인생을 살게 됐으니 말이다.

‘세븐 이어스’ 밴드 루카스 그레이엄 #지산 록페 이어 24일 첫 단독 내한공연 #“지금보다 좋은 연주한 적 없다” 기대 #

2016년 이 같은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데뷔곡 ‘세븐 이어스(7 Years)’로 13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으니 더더욱 감사하지 않을까. 다가올 서른을 넘어 예순을 이야기하는 그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친근한 우리네 삶의 풍경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내가 느낀 아픔에 대해 적어봤다”(‘해피 홈’)거나 “내 장례식에 온 걸 환영한다”(‘퓨너럴’)는 가사에 눈물을 훔치지 않을 수 없다. 흥겨운 멜로디와는 사뭇 다른 반전 매력이다.

오는 24일 서울 예스24라이브홀에서 열릴 첫 단독 내한공연을 앞두고 e메일로 만난 그레이엄은 “사람들이 내 노래를 들으며 자신의 가족을 떠올리고 자기 경험과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자신의 인생을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자 음유시인다운 대답이다. 그는 “솔(soul) 음악을 만든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노래할 때는 솔과 함께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발표한 2집 ‘3(더 퍼플 앨범)’에서는 제목부터 사랑이 뚝뚝 묻어난다. 학창시절부터 만난 여자친구와 딸 비올라까지 세 가족이 되면서 보랏빛 앨범을 택한 것. ‘러브 썸원’ 뮤직비디오에도 가족들이 직접 출연한다. 그는 아버지가 된 후 가장 큰 변화로 이해심과 참을성을 꼽았다. “젊은 남자들은 알 수 없는 마음과 지혜를 배우고 있습니다. 평생 살면서 가장 부드러운 게 지금이니까요. 더 많은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답변지엔 “최악의 하루에도 날 웃게 하는 너”(‘러브 썸원’) “내가 가진 모든 걸 다 줄 거야”(‘룰라바이’) 등 꿀 떨어지는 가사보다 더 달달한 말들이 가득했다. “아버지가 제게 해 준 것만큼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항상 그곳에 있어 주고, 응원하고, 아껴주고, 들어 주는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어서요. 이제 3살이지만 항상 의견을 존중해 주죠. 오늘은 공원에 가고 싶은지, 아니면 놀이터에 가고 싶은지. 결정권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012년 덴마크에서 먼저 데뷔 후 2016년 인터내셔널 데뷔 음반을 발표했다. [사진 워너뮤직]

2012년 덴마크에서 먼저 데뷔 후 2016년 인터내셔널 데뷔 음반을 발표했다. [사진 워너뮤직]

그는 자신이 음악적 토양을 단단하게 다질 수 있었던 것 역시 부모님 덕이었다고 했다. “아일랜드 출신인 아버지가 엄청난 음악광이었어요. 록ㆍ솔ㆍ펑크 등 다양한 장르를 가리지 않고 들었어요. 덴마크라는 나라보다 크리스티아니아 지역에서 자란 게 더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여름이든 겨울이든 어딜 가나 공연과 뮤지션이 넘쳐났거든요. 어릴 적 공연장 도어맨으로 일하면서 공짜 공연도 많이 봤죠.”

코펜하겐 내 크리스티아니아는 1971년 무정부주의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자유지역으로 ‘히피들의 천국’이라 불린다. 코펜하겐 소년 합창단에서 활동한 덕에 아일랜드 포크 리듬에 아이들의 합창이 등장하는 등 다양한 조합을 즐기는 편이다. 그는 “인피니트 출신 호야가 ‘세븐 이어스’에 맞춰서 춤추는 모습을 인상 깊게 봤다”며 “기회가 된다면 K팝 뮤지션과도 협업해 보고 싶다”고 밝혔다.

지난 2017년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서 상의를 벗고 열창하고 있는 루카스 그레이엄. [사진 CJ ENM]

지난 2017년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서 상의를 벗고 열창하고 있는 루카스 그레이엄. [사진 CJ ENM]

그렇다면 그의 남다른 스토리텔링의 비결은 무엇일까.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의 말도 잘 들을 수 있거든요. 그래야 자신과 타인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죠.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너무 발달한 나머지 우리는 세상에 귀 기울이느라 되려 자신에게는 그러지 못하고 있잖아요. 자신에게 조금 더 귀 기울인다면 세상의 말도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해리 포터’ ‘반지의 제왕’ ‘호빗’ 등 좋아하는 작품도 언급했다.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일들을 이뤄내는 히어로 물이 제 인생과 비슷한 것 같아요. 어느새 스스로 음악을 만들어 돈을 벌고, 부모님을 위한 집을 짓고, 레스토랑도 운영하고 있잖아요. 화장실도 없고 물도 안 나오는 집에 살던 시절에는 꿈도 꾸지 못한 일인데. 우리 모두가 그런 영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7년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로 첫 내한 당시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관객들을 휘어잡았던 그는 이번에도 범상치 않은 공연이 될 것을 예고했다. 그는 “새로운 연주자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새로운 다이내믹함이 생겼다. 브라스까지 연주자만 총 8명”이라며 “지금처럼 좋은 연주를 한 적이 없다”라고 기대감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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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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