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학계 '無당적 대통령'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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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마음은 신당에 가 있다. 그러면서도 민주당 당적을 갖고 있다. 물론 적당한 시점에 그걸 정리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신당엔 곧바로 입당하지 않고, 내년 총선 때까진 당적이 없는 상태에서 국정을 운영할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임기 초반에 ‘무(無)당적 대통령’이 나오는 첫 사례다. YS.DJ 등은 쫓기다시피 임기 말에 당적을 떠났다. 문제는 ‘무당적’실험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이고, 바람직하냐다.

그것이 정치와 국정운영에 안정을 가져올 것인지,아니면 혼란을 부를지 예측이 어렵다. 정치권과 학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25일 "盧대통령이 민주당을 반(反)개혁이라고 비난하고서도 아직 당적을 갖고 있는 것은 정치를 희극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당을 개혁이라고 했으면 그리 가는 게 맞다"고 했다.

또 "무당적은 옳지 않다"면서 "그렇게 하려면 신당놀음을 하지 말았어야 했고, 민주당을 깨고 나간 사람들을 찬양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박상천 대표는 "盧대통령은 탈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화갑 전 대표도 "盧대통령이 신당을 지원해온 만큼 신당으로 가는 게 옳다"면서 "무당적은 정국의 안정과 정책의 효율적 집행에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통합신당 김근태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신당 문제에 개입하는 인상을 줘선 안 된다"며 "지금은 신당 당적을 가질 때가 아니다"고 했다.

그는 "내년 총선 이후엔 괜찮다"며 "그땐 국민이 정치권을 새로 심판한 뒤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당의 한 당직자는 "'노무현당'으로 찍히면 야당은 내년 총선을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로 몰고 갈 것이므로 신당이 원하는 '개혁 대 반개혁'구도는 성립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학계에선 "대통령의 당적 문제를 총선의 유불리로 접근하는 것은 정략적"(한남대 김연철 정치언론국제학 교수)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서강대 손호철(정치학)교수는 "대통령이 신당을 지지한 만큼 신당으로 가는 게 정상"이라고 했다. 연세대 양재진(행정학)교수도 "정당정치를 기본으로 하는 나라에서 대통령이 무당적인 경우는 없다"면서 "신당이 盧대통령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면 대통령은 그 당적을 갖고 국정운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 교수는 신당을 지지하는 盧대통령이 당적을 갖지 않을 경우 정치와 국정운영에 상당한 혼란이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당의 경우 사실상 여당이면서도 형식적 여당은 아닌 게 되므로 책임정치의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또 당정관계도 모호해질 것이므로 정부정책의 입안.실행.평가 과정에 혼선이 생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여당이 없어지면 정부정책에 대한 정치적 책임은 누가 지느냐. 그러면 대통령 부담만 커진다. 헌법과 국회법은 여야의 정당정치를 염두에 둔 것이므로 여야 개념이 없어지면 대의(代議)민주제의 기본틀이 무너진다"(한나라당 홍사덕 총무)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중앙대 장훈(정치외교학)교수는 "굳이 당적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대통령이 정당과 의회 지도자들을 상대로 설득하고 협조를 구하는 리더십만 잘 발휘하면 여당을 바탕으로 국정운영을 하는 것보다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張교수는 "盧대통령의 심정은 신당이 워낙 소수이므로 굳이 당적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 아니겠느냐"라며 "문제는 리더십"이라고 말했다.

이상일.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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