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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 유출 막아라…‘다방’ 창업주 책상도 보안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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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부동산 플랫폼 ‘다방’ 운영회사 스테이션3에선 10분 넘게 자리를 비우면 한유순 대표의 얼굴이 나오는 PC 화면보호기가 뜬다. ‘개인정보 보호를 놓친 남자, 아차’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 스테이션3]

부동산 플랫폼 ‘다방’ 운영회사 스테이션3에선 10분 넘게 자리를 비우면 한유순 대표의 얼굴이 나오는 PC 화면보호기가 뜬다. ‘개인정보 보호를 놓친 남자, 아차’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 스테이션3]

경기도 판교 카카오 본사에는 ‘100대 0’의 원칙이 있다. ‘회사 내부에서는 모든 정보를 공유(100)하고, 카카오를 벗어나서는 아무것도 공개하지 않는다(0)’는 의미다. 입사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이 원칙을 반복해 강조한다. 직원끼리 카카오톡이나 메일로 문서를 주고받을 때도 ‘100대 0 아시죠?’라며 말을 맺기도 한다. 회사 밖에서는 아예 업무 관련 얘기를 하지 않는다. 회식 등 외부 술자리에서도 마찬가지다.

스타트업 키운 판교 100대 0 원칙 #외부선 업무얘기 No, 회사선 공유 #USB·문서 수시로 폐기 보안 철저 #사내 제안, 정보 교류는 축제처럼 #전 임직원 참여 타운홀 미팅까지

카카오뿐이 아니다. 아이디어로 먹고사는 판교밸리 기업(판교와 그 일대에 본사를 둔 정보기술(IT)·바이오기술(BT) 관련 첨단기술 기업)들에 정보보안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다. 작은 아이디어 유출이 큰 사업 기회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판교밸리 기업들은 많은 경우 대기업보다 더 깐깐하고, 엄격하게 사내 정보를 걸어 잠근다. 100대 0의 원칙에서 ‘0’이 의미하는 바다. 하지만 내부 정보는 누구보다 활발하게 공유하기 위해 여러 장치를 만들었다. 창의성과 신기술로 크는 기업 특성상 활발한 내부 정보 교류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100대 0의 원칙에서 ‘100’이란 숫자로 대변된다.

지난 8일 오후 7시. 오픈형 부동산 플랫폼 ‘다방’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스테이션3’ 사무실에선 ‘책상 검사’가 시작됐다. 80여 명의 직원이 모두 퇴근한 시간. 이 회사 김용희 정보보호 파트장은 80여 개가 넘는 책상 위를 ‘매의 눈’으로 샅샅이 훑고 다닌다. 담배나 술을 찾는 게 아니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외장하드나 USB, 기타 중요 문서들이 검사 대상이다. 퇴근 후에 자료 등이 책상 위에 있으면 정보보호팀에서 수거해 파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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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자인 한유순 대표의 책상도 예외 없이 검사 대상이다. 한 대표는 어지러이 늘어놓은 서류 등으로 인해 사내에서 가장 많은 11회의 누적 경고를 받았다. 카카오에 ‘100대 0’의 원칙이 있는 것처럼 스테이션3에는 ‘빈손 출·퇴근’ 원칙이 있다. 출근은 물론 퇴근도 빈손으로 해 외부로 유출되는 회사 문서나 파일 등을 최소화하겠다는 목표다. 직원이라도 사내에선 무단으로 사진을 찍을 수 없다.

근무 중 10분 이상 자리를 비울 때는 PC에 한유순 대표의 얼굴 사진이 나오는 화면보호기가 뜬다. 보호기엔 ‘개인정보 보호를 놓친 남자, 아차’ 등 재미난 문구가 있다. 또 퇴근과 동시에 자사 서비스에 관리자로 접근할 수 없다.

게임업체인 넥슨이 직원들의 정보보안 의식을 높이기 위해 만든 마그네틱 굿즈들. [사진 넥슨]

게임업체인 넥슨이 직원들의 정보보안 의식을 높이기 위해 만든 마그네틱 굿즈들. [사진 넥슨]

게임업체인 넥슨은 ‘스마트폰은 잠금 설정’ ‘의심스러운 메일은 신고하고 삭제’처럼 정보보호 수칙이 담긴 마그네틱 굿즈를 만들어 사용 중이다. 마그네틱 굿즈를 일상생활 속에서 쓰면서 자연스레 정보 보호 관련 노력이 몸에 배도록 하기 위해서다. NHN엔터테인먼트는 매월 대청소를 한다. ‘개인정보 클린& 클린 데스크 캠페인’이다. 이 회사 임직원들은 매월 PC 내 개인정보를 암호화하거나 삭제한다. 또 중요 정보는 최소로 저장하고, 반기별로 악성코드 모의훈련을 한다.

회사 밖으로의 정보 누설은 철저히 막는 대신, 사내에서 활발한 정보 교류는 적극적으로 장려한다. 판교와 그 일대에 있는 판교밸리 기업들은 아이디어 발표도 축제나 경연대회로 진행하는 것이 필수처럼 돼 있는 분위기다.

카카오에선 사내 게시판인 ‘아지트(Agit)’를 이용해 다른 부서에서 어떤 업무가 진행 중인지 알아보는 것은 물론 그에 대한 의견을 낼 수도 있다. 아지트는 트위터처럼 실시간(타임라인)으로 대화 내용이 올라온다. 여기엔 2800여 명에 달하는 카카오 임직원이 전원 참여 중이다.

덕분에 특정 팀 업무에 다른 팀 구성원의 의견이 반영되는 일이 잦다. 또 주요 이슈가 있을 때는 임직원 전체를 대상으로 타운홀 미팅 형식의 ‘T500(목요일 오후 5시에 하는 비정기적 전체 미팅)’이 열린다. 임직원 전원에게 회사의 주요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유한다는 철학에 따른 것이다. 이 자리에서 임직원들은 자신의 의견을 자유로이 낼 수 있다. 참석하지 않은 직원들에게도 생중계된다. 최근엔 한 달에 두 번꼴로 열렸다. 지난달에는 ‘카카오 조직문화 건강성 진단 결과’를 주제로 T500이 개최됐다. 직원들이 스스로 ‘카카오는 건강한 조직인가’ 등에 대해 의견을 내고 그 결과를 공유했다.

네이버는 사내 해커톤(Hackathon·프로그래머 등이 참여하는 아이디어 경연대회) 프로그램인 ‘네이버 핵데이’와 기술 쇼케이스인 ‘네이버 엔지니어링 데이’를 운영한다. 사내 임직원 누구나 자신의 아이디어를 선보이고, 이와 관련한 개선 아이디어를 구할 수 있도록 한다. 네이버 핵데이는 지난해 4회째를 맞았다. 핵데이에서 ‘360˚ 뷰어’ ‘카페 플러그’처럼 다양한 기술과 아이디어가 발굴됐고, 이를 실제 서비스로 만들었다. 지난해엔 총 48개 팀(145명)이 참가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네이버는 또 지난해까지 연 1회였던 엔지니어링 데이를 올해부터는 분기마다 열기로 했다. 효용이 크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모바일 게임 유저가 게임 플레이 중 앱을 나가지 않고도 곧바로 커뮤니티를 통해 다른 유저와 소통할 수 있도록 한 ‘플러그(PLUG)’ 기능도 엔지니어링 데이 때 나온 아이디어다.

SK플래닛도 2016년부터 사내 아이디어 공모전인 ‘핵 플래닛(Hack Planet)’ 행사를 열고 있다. 매년 20여 개 팀, 100여 명의 임직원이 참여한다. 점심시간 등을 활용해 핵 플래닛에 출품된 아이디어를 공개하고, 다른 구성원들의 추가 개선 아이디어를 모으는 ‘데모 데이(Demo Day)’ 프로그램도 더해졌다. 이호준 SK플래닛 데이터비즈&테크그룹장은 “핵 플래닛은 직원들의 아이디어 공유를 활성화하고, 협업을 통해 이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인사이트를 얻는 사내 정보 공유 축제로 자리매김했다”고 말했다.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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