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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 사망·실종 욕지도 낚싯배도 '9.77t'...되풀이 참사, 왜

중앙일보

입력

11일 오전 5시쯤 경남 통영시 욕지도 남쪽 약 80㎞ 해상에서 9.77t급 낚시어선 무적호가 전복됐다. [사진 해양경찰청]

11일 오전 5시쯤 경남 통영시 욕지도 남쪽 약 80㎞ 해상에서 9.77t급 낚시어선 무적호가 전복됐다. [사진 해양경찰청]

15명 숨진 영흥도 사고 잊히기도 전에

지난 11일 오전 경남 통영 욕지도 해상에서 3000t급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과 충돌한 뒤 전복된 낚싯배 무적호의 선박 무게는 ‘9.77t’으로 나타났다. 사고로 선장 최모(58)씨와 낚시객 2명 등 3명이 숨졌다. 이날 오후 9시 현재 정모(51)·임모(57)씨 2명은 실종 상태다.

앞서 2017년 말 인천 영흥도 인근서 급유선과 충돌, 15명이 숨진 낚싯배 선창 1호도 선박 무게가 같은 9.77t이었다. 또 18명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된 제주 추자도 낚싯배 사고(2015년) 역시 무게가 동일하다.

11일 오전 경남 통영 욕지도 인근 해상에서 해경대원들이 실종자 수색을 하고 있다. [사진 해양경찰청]

11일 오전 경남 통영 욕지도 인근 해상에서 해경대원들이 실종자 수색을 하고 있다. [사진 해양경찰청]

설계·건조에 최적화된 9.77t 

9.77t 낚싯배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12일 해경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한 국내 낚싯배는 모두 4487척(2017년 기준)이다. 이중 선박 무게가 9t 이상~10t 이하인 낚싯배는 759척(16.9%)이다. 사실상 9.77t이다. 차지하는 비중이 20%가 채 되지 않지만, 원거리(30마일 이상·48.3㎞)를 출항하는 낚시어선의 대부분을 차지해 상대적으로 사고위험이 적지 않다.

선박 무게는 침수 또는 전복 사고 시 공기주머니(에어포켓) 역할을 하는 공간 등의 부피를 따져 계산한다. 저울로 재는 중력무게가 아니다. 9.77t이 설계·건조 등에 최적화됐다고 한다.

2017년말 해경에 예인된 낚싯배 선창1호 사고 유족들이 부서진 선체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2017년말 해경에 예인된 낚싯배 선창1호 사고 유족들이 부서진 선체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9.77t의 허술한 규제는 그대로

30마일 이상의 원거리 출항을 해 사고 때 자칫 대형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9.77t 낚싯배의 규제강화는 반복되는 사고에도 더디기만 하다. 이 낚싯배의 승선 인원은 최대 22명이다. [(총 tX2)+3명]이라는 산식을 따른다. 이를 적용받지 않는 비슷한 무게의 유람선의 경우 승선 인원이 최대 14명인 점을 고려하면,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낚싯배는 어창을 개조한 선실에 누워 빠르게 수 시간을 이동하기 때문에 전복사고에 특히 취약하기 때문이다. 전날(11일) 발생한 통영 욕지도 무적호의 경우도 낚시객들이 선실에서 잠을 자다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레저 목적용 '낚시유선' 보다 취약

또 현재 10t 미만 낚싯배는 만재흘수선을 표시하지 않아도 된다. 흘수선은 선체가 물에 잠기는 한계선으로 만재흘수선은 항해 안전상 허용된 최대치다. 또 낚싯배는 항해 중 외부 충격에도 직립 자세를 유지하는 성능인 복원성 검사를 받긴 하지만 기준이 까다롭지 않다. 선박 크기 등에 따라 항해구역별로 복원성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 여객선과 대비된다.

일반적으로 낚싯배는 어민들이 조업하지 않는 기간에 부업으로 낚시 승객을 태우는 어선이다. 레저를 주목적으로 낚시객을 전문으로 태우는 ‘유선’과는 구별된다. 선박 검사주기의 경우 유선은 1년이지만 낚싯배는 2.5년으로 길다. 해양수산부가 검토한 낚시전용선 제도도 도입되지 않았다. 해수부 관계자는 “승선 인원 등은 변함없다. 제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재난재해 대응을 주제로 한 정부 업무보고가 이뤄졌다. 이낙연 국무총리를 주재한 자리다. 당시 낚시어선의 규제 강화가 나왔다. 여객선과 같은 규제를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수입이 줄 것을 우려한 어민들의 반대여론에 1년 가까이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2015년 제주 추자도 인근 해상에서 전복된 돌고래호의 사고원인을 조사하는 과학수사 관계자들. [연합뉴스]

2015년 제주 추자도 인근 해상에서 전복된 돌고래호의 사고원인을 조사하는 과학수사 관계자들. [연합뉴스]

증가하는 낚시객 여전한 안전부재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17년 한해 낚싯배 이용자는 414만9412명으로 2016년과 비교해 72만158명 늘었다. 낚시어선 사고는 2015년부터 연간 200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소비자원이 최근 전남·충남·경남 등 6개 시·도에서 영업 중인 낚싯배 20척을 대상으로 실태를 점검한 결과 여전히 안전에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낚싯배 위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승선객들. [사진 한국소비자원]

낚싯배 위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승선객들. [사진 한국소비자원]

승선자들이 항상 구명조끼를 입고 있지 않은 배는 35%에 달했다. 전날 무적호 사고로 숨진 3명 모두 사고 당시 구명조끼를 입고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낚시객의 선상 음주도 15%의 배에서 목격됐다. 특히 점검에 나선 90%의 낚싯배가 구명튜브를 구비하지 않거나 수량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운항에 나섰다. 승선 인원의 신분증을 확인하지 않은 비율도 70%를 차지했다.

한국소비자원 김병법 생활안전팀장은 “낚시어선 사고는 단시간 안에 큰 인명피해가 일어날 수 있는 해상사고다”며 “어선에 대한 안전관리와 감독을 강화해야 하는 동시에 승객에 대한 안전교육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천=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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