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세상보기] 책상색깔은 왜 갈색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바닷가의 모래사장을 걸으면서 조그만 구멍이 있거나 모래를 밀어낸 흔적을 보게 되면 우리는 그 안에 무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개나 게 등이 드나드는 것을 보고 나면 그게 생명체가 만들어낸 흔적임을 알게 된다.

이는 무언가 특이한 현상은 생명체의 활동과 관련된다는 것을 경험하는 사건이다. 이런 경험을 좀더 확대하면 지진이나 태풍.해일 같은 현상마저 어떤 인격체와 관련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고대의 신화나 전설의 많은 부분은 이런 의인화에 기초해 구성된다.

현상의 배후에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은 생명체의 흔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내 앞에 놓여 있는 책상의 색깔은 아침이나 석양의 햇살이 비칠 때는 조금 붉게 보이고 불을 끄면 아무 색깔도 안 나타나지만 정상적으로 본다면 갈색으로 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별 고민 없이 "내 책상은 갈색이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말에는 경우에 따라 좀 다르게 보이기는 하지만 그 책상은 갈색이라는 고유한 색깔을 지니고 있다는 암묵적 가정이 전제되어 있다. 여러 가지 색깔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것은 갈색이라는 본성 혹은 갈색이라는 실재(實在.Reality)성을 지닌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아침 햇살이 비칠 때의 색깔이 아니라 보통 때의 색깔을 책상의 색깔이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빛이 비치는 부분은 희게 빛나고 그늘진 부분은 훨씬 어둡게 보이는데 그런 관찰을 모두 무시하고 책상을 갈색이라고 할 수 있는가.

더군다나 만일 태양이 푸른 빛을 낸다면 책상도 푸르게 보일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상을 갈색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책상이 갈색이라는 것은 단지 보통의 조건 하에서 정상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에게 그것도 책상의 일부분만이 갈색으로 나타난다는 것 이상의 어떤 것일 수 없음을 알게 된다.

특수상대론에서 길이는 운동의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운동하는 막대의 길이는 정지상태에서 측정한 길이보다 짧아진다. 이를 길이의 수축(length contraction)이라고 한다.

그러면 어떤 길이가 진짜인가. 이에 대해 상대론은 서로 다른 상태의 관찰자에게 서로 다른 길이가 관측된다는 것만을 말한다. 책상을 바로 위에서 보면 직사각형이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데, 어느 모양이 진짜인지를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어느 것이 더 본질적인지를 강요하는 시각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에서는 서로 다른 세계가 나타난다는 시각이다.

일반상대론에서 중력과 가속도는 동일한 효과를 나타낸다. 우주선 안의 관측자가 자신의 몸이 뒤로 쏠리는 경험을 하였다 하자. 관측자가 뒤를 볼 수 없다면, 우주선이 가속했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나타났는지, 아니면 우주선 뒤에 무거운 물체가 있어서 그런 현상이 나타났는지를 판단할 근거란 전혀 없다. 양자역학에서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파동 혹은 입자의 현상을 보이는 그 물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어떤 현상이 나타날 때 그 현상을 나타나게 하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겠지만, 그것이 우리가 믿는 바로 그것이라고 말하는 것 또한 어렵다.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은 대상과 우리 사이의 관계에서 표출되는 것일 뿐이다.

존재의 신비로움은 내 앞에 놓인 책상이 갈색이라는 실재성을 지니는 데에 있지 않고, 상황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드러난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닌가.

책상을 갈색 하나로 칠하는 유아의 그림이 아니라, 부분 부분이 서로 다른 색을 드러내는 화가의 그림에서 우리는 아름다움을 보지 않는가. 책상을 갈색이라고 하지 못한다면, 꽃이 피었다고 말하는 것도 조심스러워진다. 꽃이 핀 것인가, 아니면 꽃이 핀 것처럼 나에게 나타나는 것인가.

양형진 고려대 교수.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