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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포토라인이 뭐기에…양승태는 그냥 지나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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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최종 책임자로 지목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오전 조사를 받기위해 서울중앙지검으로 출석하고 있다. 양 전 원장은 이날 검찰 포토라인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15층 조사실로 올라갔다. [중앙포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최종 책임자로 지목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오전 조사를 받기위해 서울중앙지검으로 출석하고 있다. 양 전 원장은 이날 검찰 포토라인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15층 조사실로 올라갔다. [중앙포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검찰에 출석하며 포토라인을 지나칠 때 그의 옆에는 단 두 명의 기자만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양승태 포토라인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같아 #초근접 기자는 두명만 허용, 포토라인 7미터 #양 전 원장은 검찰 앞에서 침묵으로 일관

국가 의전서열 3위였던 양 전 원장에게는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같이 근접해 질문할 수 있는 기자를 두 명으로 제한한 포토라인이 설치됐기 때문이다. 다른 사건의 주요 피의자들은 수십명의 기자에 둘러싸여 입장을 밝히기 전까지 검찰 정문을 통과하기도 어렵다.

양 전 원장은 이날 굳은 표정으로 차에서 내려 곧바로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섰다. 검찰에 출석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송구스럽다, 성실히 조사받겠다"고 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도 "참담한 심정이다,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했다.

하지만 양 전 원장은 검찰 포토라인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 등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에 피의자인 후배 판사들이 검찰 출석 전 기자들에 둘러싸여 입장을 밝혔을 때와도 다른 모습이었다.

재판거래에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는 박병대 전 대법관이 지난해 11월 19일 오전 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며 기자들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 [중앙포토]

재판거래에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는 박병대 전 대법관이 지난해 11월 19일 오전 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며 기자들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 [중앙포토]

대신 양 전 원장은 출석 전 대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이 모든 것이 저의 부덕의 소치고 그 책임은 모두 제가 지고 가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과 재판 개입 의혹에 대해서는 "그런 사실이 없었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라고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검찰 관계자는 "양 전 원장이 검찰 포토라인이 아닌 대법원 앞에서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 수사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 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인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법부의 전직 수장으로 검찰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헌법학자인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우리 헌법의 대원칙이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며 "어떤 피의자일지라도 검찰 포토라인에 세워 죄인처럼 몰아붙이는 것 자체가 헌법을 위배하는 것"이라 했다.

이날 양 전 원장의 포토라인은 검찰과 출입 기자단 사이의 협의하에 이뤄졌다. 검찰은 "포토라인 설치는 기자단이 결정하는 것이며 검찰은 출석하는 피의자의 안전과 국민의 알권리 등을 고려할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검찰이 '사법 행정권 남용' 수사 마무리를 앞두고 "사법부에 대한 최대한의 예우를 갖춘 것"이란 말도 나온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커지는 사법부의 반발을 의식했다는 것이다.

뇌물수수·횡령·조세포탈 등 혐의를 받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해 3월 14일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기 전 성명서를 읽고 있다. [연합뉴스]

뇌물수수·횡령·조세포탈 등 혐의를 받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해 3월 14일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기 전 성명서를 읽고 있다. [연합뉴스]

현직 대법원장의 서열은 대통령, 국회의장에 이어 3위지만 전직의 경우 대통령을 제외하곤 의전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다. 정상회담 의전 경험이 있는 정부 관계자는 "전직 5부 요인의 경우 필요시 상황에 따라 적절한 의전을 준비하고 있다"며 "전직 대법원장에게 어떤 예우를 해야 한다는 의무는 없다"고 했다.

검찰은 8시 50분부터 서울중앙지검에 대한 일반인 출입을 전면 통제했다. 기자들은 검찰 출입을 위해 새벽부터 미리 신청한 비표를 받았다. 이날 법원과 검찰청이 위치한 서초역 사거리를 둘러싼 경찰 병력만 1000여명에 달했다. 검찰 관계자는 "양 전 원장의 신분때문이 아닌 출석하는 피의자의 안전이 제일 중요했기 때문"이라 했다.

양 전 원장은 이날 오전 9시 30분부터 변호인과 함께 서울중앙지검 15층 조사실에서 특수1부의 단성한·박주성 부부장검사의 조사를 교대로 받게 된다.

이들은 사법연수원 32기로 양 전 원장의 연수원 30기수 후배다. 양 전 원장의 변호를 맡은 최정숙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사법연수원 동기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양 전 원장은 이날 진술을 거부하지 않고 "기억나는 대로 성실히 답하겠다"고 했지만 검찰이 주장하는 혐의는 전면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물리적으로 단 한 번의 소환으로 조사를 끝내기는 어렵다, 추가 소환이 필요할 경우 가능하면 비공개로 할 예정"이라고 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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