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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눕터뷰] "5억년 전 지구 비밀 캡니다" 남극서 돌줍는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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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선 극지연구소 박사가 남극 탐사를 위해 암석 연구 활동에 사용했던 장비와 생존을 위한 의류, 텐트 등과 함께 극지연구소 마당에 누웠다. 극 지방 탐사를 위해선망치와 정 등 지질 장비는 물론 혹한의 추위를 버틸 수 있는 특수 방한복과 침낭, 동료대원, 본부와 연락을 취할 수 있는 무전기와 위성전화 등의 생존 장비도 필수다. 장진영 기자

우주선 극지연구소 박사가 남극 탐사를 위해 암석 연구 활동에 사용했던 장비와 생존을 위한 의류, 텐트 등과 함께 극지연구소 마당에 누웠다. 극 지방 탐사를 위해선망치와 정 등 지질 장비는 물론 혹한의 추위를 버틸 수 있는 특수 방한복과 침낭, 동료대원, 본부와 연락을 취할 수 있는 무전기와 위성전화 등의 생존 장비도 필수다. 장진영 기자

사람들이 묻는다, 왜 가기도 쉽지 않은 남극, 북극에 가서 돌멩이나 주워오냐고.

이 남자는 대답한다.
 "보기엔 그냥 돌멩이지만, 그 안에는 5억년 동안 쌓이고 쌓인 지구의 이야기가 들어있다"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극지연구소 우주선(39) 박사는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극지방의 돌멩이를 수집·분석해 지구 깊숙한 곳에서 일어난 비밀을 밝혀내는 지질학자다. 특히 5억년 전 초대륙(Supercontinents) 형성 작용의 증거인 대륙충돌 흔적을 연구하는 것이 그의 전공분야다. 곤드와나(Gondwana)는 남극, 호주, 인도, 아프리카, 남미가 연결되어 형성된 거대한 땅덩이다.

최근 우 박사는 여덟 번째 남극 원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연평균 기온 영하 34도의 혹한과 몸이 날아갈 듯 순간 최대 초속 50m의 블리자드(blizzard), 급작스러운 크레바스(crevasse·빙하가 갈라져서 생긴 좁고 깊은 틈)가 생명을 위협하는 극한의 땅 남극을 해마다 찾아 한 달 동안 머물며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남극 돌멩이는 다른가요?
저는 지질학자입니다. 남극에서 퇴적암을 캐내어 이곳이 약 5억 년 전에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찾아가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남극에서 돌(암석)은 ‘발에 채다’라는 표현만큼이나 흔한 존재지만 먼 옛날 지구 깊숙한 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의 기록이죠. 돌멩이 주우러 남극 여덟 번, 북극에 일곱 번 다녀왔습니다.
우주선 박사(왼쪽)가 지난해 12월 남극 북빅토리아랜드 니얼매시프 지역에서 암석을 채취하고 있다. [사진 극지연구소]

우주선 박사(왼쪽)가 지난해 12월 남극 북빅토리아랜드 니얼매시프 지역에서 암석을 채취하고 있다. [사진 극지연구소]

남극 탐사를 하려면 뭘 준비해야 하나요?
탐사에 나설 땐 항상 배낭과 서바이벌 백, 이렇게 두 개가 필요합니다. 배낭 안에는 탐사를 위한 망치, 정, 지형도, 나침반, 필드 노트 등이 들어있어요. 망치는 지질학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개를 가지고 다니는데요. 뭉툭한 망치는 큰 덩어리를, 끝이 날카로운 망치는 작은 돌을 조각낼 때 사용합니다. 줄자는 바람에 휘어질 수 있어 단단한 접자를 쓰고 수평계가 달린 나침반으로 암석이 어떤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는지 측정합니다. 암석을 발견하면 필드 노트에 탐사지역의 지형과 특성 등을 기록하는데요. 지금까지 남극에서 작성한 것이 총 5권입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암석 채취용 망치와 정, 팀원간 연락에 사용하는 무전기와 위성전화, 2명이 72시간을 버틸 수 있는 비상식량, 채취한 암석을 담는 암석주머니, 암석의 특징을 기록하는 필드노트, 접이식 자와 암석의 기울기를 측정하는 클리노미터. 장진영 기자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암석 채취용 망치와 정, 팀원간 연락에 사용하는 무전기와 위성전화, 2명이 72시간을 버틸 수 있는 비상식량, 채취한 암석을 담는 암석주머니, 암석의 특징을 기록하는 필드노트, 접이식 자와 암석의 기울기를 측정하는 클리노미터. 장진영 기자

남극은 많이 춥지않나요?
옷도 아주 중요한데요. 피부와 닿는 부분은 합성 소재를 입고 통기가 잘 되는 옷, 얇은 패딩, 탐사복 순서로 겹쳐 약 7겹을 겹쳐 입어요. 체온유지가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옷 입는 법을 훈련하기도 합니다. 휴대전화가 작동하지 않아 대원들과 연락은 무전기와 위성 전화로 주고받습니다.  
서바이벌 백에는 무엇이 들어있나요?
서바이벌 백은 탐사 중에 만날 수 있는 악천후에 대비해서 챙겨 다닙니다. 가방 안에는 손쉽게 설치할 수 있는 텐트, 매트와 침낭, 바람을 피할 눈 벽을 만들 때 쓰는 눈삽과 눈 톱, 두 명이 72시간을 버틸 수 있는 비상식량 비스킷 등이 들어있어요. 체온 유지에 필수인 매트와 침낭은 캠프에서 사용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요. 극한의 추위에서 버틸 수 있는 성능이죠. 코펠과 버너도 있는데 낮은 기온에서 물을 빨리 끓일 수 있도록 가솔린 연료를 사용합니다. 위급 시에 쓰는 것이라 이 장비들을 쓰지 않는 상황이 좋은 거죠.  
위급시 사용하는 생존 장비가 들어있는 서바이벌 백과 탐사 장비들. [사진 극지연구소]

위급시 사용하는 생존 장비가 들어있는 서바이벌 백과 탐사 장비들. [사진 극지연구소]

눈 밖에 없는 남극에서 물은 어떻게 준비하나요?
식수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남극의 눈은 바로 녹여 마셔도 충분할 정도로 깨끗하기 때문입니다.
식수는 눈을 담아 만든다. 연료를 아끼기 위해 적당량만 만든다.(6인 기준 하루 2회, 회당 12리터 정도) 녹인 물은 보온통에 담거나 보온백에 보관해서 다시 얼지 않도록 한다.[사진 극지연구소]

식수는 눈을 담아 만든다. 연료를 아끼기 위해 적당량만 만든다.(6인 기준 하루 2회, 회당 12리터 정도) 녹인 물은 보온통에 담거나 보온백에 보관해서 다시 얼지 않도록 한다.[사진 극지연구소]

탐사에 나서기 전에는 어떤 준비를 하나요?
탐사 일정이 정해지면 응급처치, 독도법, 서바이벌 백 사용법 등의 필수 훈련을 받게 됩니다. 실제 탐사 기간은 한 달 정도인데, 준비와 훈련에 그 몇 배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인원 구성이 완료되면 실전 캠프 훈련을 통해 등반훈련과 장비 사용법, 로프 매듭법 등을 익힙니다. 안전한 탐사를 위해 캠프멤버에는 전문지식을 갖춘 안전요원이 항상 동행합니다. 
지난 2012년 12월 남극 북빅토리아랜드 유레카스퍼스 지역에서 하네스와 로프를 사용해 탐사중인 우주선 박사. [사진 극지연구소]

지난 2012년 12월 남극 북빅토리아랜드 유레카스퍼스 지역에서 하네스와 로프를 사용해 탐사중인 우주선 박사. [사진 극지연구소]

지질 연구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주 오래전 남반구 대륙은 붙어있었습니다. 호주, 인도, 남아프리카, 남극은 한 덩어리였다가 어느 순간 분리되어 다른 대륙이 되었죠. 남극은 아직도 많은 지역이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습니다. 우리가 이해 못 하는 사실들을 알아내기 위해서 지표면 연구가 필요합니다. 지구의 겉 부분은 단단한 돌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죠. 또한 남극 또는 북극에서 우리나라의 활동영역이 넓어질 때를 대비해 그 지역이 어떤 지질학적 특성을 가졌는지 알아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질 탐사는 어떤 방법으로 진행이 되나요?
지형도를 바탕으로 탐사지역을 정하고 걸어서 이동합니다. 노두(지표면에 암석이 직접 드러난 부분)를 선정해 망치와 끌을 이용해 암석을 캐냅니다.이후 연구소에서 얇게 잘라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화학분석을 합니다. “돌을 해석한다”고 생각하면 되는데요. “얕은 물이 흐르던 하천에서 생겼구나” 또는 “홍수가 났을 때 쓸려 와서 쌓인 층이구나”라고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지난번 탐사에서 제가 유난히 좋아하는 형태의 석회암을 발견했습니다. 5억 년 전 따뜻하고 얕은 바다에서 쌓인 돌인데 바닷속에서 산호초 같은 역할을 합니다. 오랜 친구를 만난 거 같아 기쁘더라고요.  
유레카스퍼스 캠프에서 김영환 연구원, 박태윤 선임연구원, 김명환 안전요원, 우주선 박사, 김관재 안전요원(왼쪽부터)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사진 극지연구소]

유레카스퍼스 캠프에서 김영환 연구원, 박태윤 선임연구원, 김명환 안전요원, 우주선 박사, 김관재 안전요원(왼쪽부터)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사진 극지연구소]

지질 탐사팀의 그동안 성과는?
남극을 여덟 번 탐사하는 동안(해양수산부 연구개발사업 '빅토리아랜드 지각진화 및 행성형성과정연구')빅토리아랜드(남극대륙 남쪽 로스 해 부근) 전체 면적의 90% 정도를 걸어서 탐사했습니다. 장보고 기지 옆에 이탈리아와 독일 기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이 약 30년간 연구한 내용을 5년 만에 따라잡았어요. 또 3년 전에는 그간 보고되지 않았던 젊은 층(1억 5천만 년 전 지질층)을 찾아내기도 했어요. 직접 걸어서 탐사했기 때문에 새로운 결과들을 많이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캠프 전경. 숙소와 식당, 창고와 화장실 등이 갖춰져 있다. [사진 극지연구소]

캠프 전경. 숙소와 식당, 창고와 화장실 등이 갖춰져 있다. [사진 극지연구소]

남극에서 생활하는 게 힘들지는 않나요?
남극은 일 년에 딱 한 번만 허락되는 곳이에요. 쇄빙선으로도 얼음을 뚫고 들어가기 힘든 날씨가 대부분이라 여름(11월 ~2월)에만 갈 수 있어요. 여름이라고 해도 기온이 해안가는 0도, 내륙은 보통 영하 2~30쯤 됩니다. 노출된 모든 곳이 다 눈과 얼음이고, 살아있는 게 거의 없다고 보면 돼요. 처음 그곳을 밟았을 땐 "여기에 홀로 남겨지면 진짜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남극에는 우리나라에서 탐사를 위해 세운 세종기지와 장보고 기지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기지에서 생활하지는 않아요. 탐사지역이 결정되면 그 주변에 '캠프'를 설치합니다. 캠프는 식당, 숙소, 화장실, 창고 등 여러 개의 텐트로 구성되어 있어요. 아주 극한 환경에서 캠핑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기지에서 생활하는 게 편리하긴 하지만 대부분 탐사가 기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남극의 강풍을 견딜 수 있게 설계된 텐트. 입구는 고장을 우려해 지퍼가 아닌 통로형식으로 돼 있다. [사진 극지연구소]

남극의 강풍을 견딜 수 있게 설계된 텐트. 입구는 고장을 우려해 지퍼가 아닌 통로형식으로 돼 있다. [사진 극지연구소]

남극 빅토리아랜드 유레카스퍼스 캠프에 설치된 눈 벽. [사진 극지연구소]

남극 빅토리아랜드 유레카스퍼스 캠프에 설치된 눈 벽. [사진 극지연구소]

캠프에 설치된 텐트 모양이 좀 특이하네요? 텐트 생활에서 가장 불편한 점은 무엇인가요?
캠프에서는 끝이 뾰족한 텐트를 사용합니다. 백여 년 전 탐험가 스콧이 사용했던 것과 비슷한 모양입니다. 출입구가 옷의 소매처럼 튀어나왔는데요. 지퍼는 극한상황에서 고장 날 수 있기 때문이죠. 텐트의 뼈대는 약 2인치 정도의 굵은 파이프를 사용하고 바람에 강한 캔버스 천으로 되어 있습니다. 침낭은 영하 40도급을 쓰는데요. 그 안에 침낭 라이너와 따뜻한 물병을 넣고 잡니다. 남극에서 끼니를 잘 못 챙길 거 같다고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아주 잘 먹고 지냅니다. 반조리 상태로 얼려서 가는데 자연 냉장고가 있으니 보관도 쉽고요. 다만 씻는 게 힘들어서 물티슈 한장으로 적당히 세수만 하거나 배변한 것을 모아서 그대로 기지로 가져와야 하는 것이 고역입니다.  
캠프 내 주방. 보통 2구 가스레인지를 사용하고, 필요한 경우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사용한다. [사진 극지연구소]

캠프 내 주방. 보통 2구 가스레인지를 사용하고, 필요한 경우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사용한다. [사진 극지연구소]

캠프에 설치된 간이 화장실. 남극의 환경 보호를 위해 배변은 모았다가 기지로 복귀할 때 가지고 간다. [사진 극지연구소]

캠프에 설치된 간이 화장실. 남극의 환경 보호를 위해 배변은 모았다가 기지로 복귀할 때 가지고 간다. [사진 극지연구소]

탐사 활동 중 위험한 상황도 많으셨을텐데요?
계곡 중간에 캠프를 차린 적이 있었는데 바람의 방향을 잘못 계산해 눈 벽을 반대 방향에 설치했어요. 남극의 눈은 수직으로 내리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타고 수평으로 날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던 중에 동료의 텐트가 반쯤 눈에 묻혔어요. 다급한 동료가 간신히 몸만 빠져나온 직후 텐트가 완전히 무너졌어요. 블리자드까지 불어와서 아찔했습니다. 기지에 긴급요청을 했는데 지원 헬기가 바람 때문에 착륙을 못 하고 창문으로 텐트를 던져줘서 그걸 받은 적이 있어요. 이젠 동료가 살았다는 생각에 눈물이 나더라고요.탐사 중에 크레바스에 빠진 적도 있어요. 허리까지 빠져서 꽤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발버둥 치지 않고 배운 대로 양발을 옆 벽에 디디면서 힘을 분산시켜 빠져나왔죠. 
지난 2015년 남극 북빅토리아랜드 헬리웰힐스에서 캠프설치를 위해 헬기가 장비를 수송하고 있다. [사진 극지연구소]

지난 2015년 남극 북빅토리아랜드 헬리웰힐스에서 캠프설치를 위해 헬기가 장비를 수송하고 있다. [사진 극지연구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나라는 지난 1978년 남극해에서 크릴새우 조사를 시작으로 1988년 세종기지, 2014년 장보고 기지를 건설하고 지질, 지구 물리 및 해양생물학 등의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1959년 남극 조약이 발효된 이래 현재 42개국이 미지의 영토를 넓혀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연구도 이런 일들의 연장에 있다고 봅니다. 지구에는 더 이상 발견할 것이 없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전통적인 방식의 지질학을 통해 새로운 발견이 이어지는 탐험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금 제가 발로 뛰면서 밝혀낸 일들이 나중에 우리나라가 이곳을 활용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극지연구소의 북빅토리아랜드 탐사지역을 보여주는 지도. [자료 극지연구소]

극지연구소의 북빅토리아랜드 탐사지역을 보여주는 지도. [자료 극지연구소]

글·사진·동영상=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눕터뷰

 '누워서 하는 인터뷰'의 줄임말로, 인물과 그가 소유한 장비 등을 함께 보여주는 새로운 형식의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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