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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계 비위 '침묵의 카르텔' 어떻게 해야 깰 수 있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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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빙상인연대와 문화연대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10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재범 성폭력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진상규명, 재발방지를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젊은빙상인연대와 문화연대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10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재범 성폭력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진상규명, 재발방지를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침묵의 카르텔'. 사회집단이나 이해집단에 불리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입을 닫는 현상을 말한다. 체육계 성폭력을 키운 것 역시 '폐쇄성'과 '방조'였다. 체육, 문화, 여성계 전문가들은 이러한 벽을 깨트리기 위해선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문화연대와 젊은빙상인연대, 여성문화예술연합, 체육시민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18개 시민단체는 1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조재범 사건의 철저한 조사와 진상규명,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성폭력 사건의 실태는 물론 해결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빙상인들의 단체인 젊은 빙상인연대는 9일 "성폭력 피해자가 더 있다. 그 중 2명의 피해자가 기자회견 또는 고발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여준형 젊은빙상인연대 대표는 "지난해부터 여러 명의 폭행, 성폭력 피해 사례를 들었다. 내가 실제로 폭행 장면을 본 적도 있다. 조재범 사건이 밝혀지기 전부터 대책을 논의해왔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보복을 두려워해 밝히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심석희는 초등학교 때부터 조재범 코치의 지도를 받았다. 조 코치의 지도를 받으면서 국가대표로 발탁됐고, 올림픽 금메달까지 따냈다. 그 과정에서 '사제관계'는 '주종관계'로 변질됐다. '성과'만 낸다면 어떤 방법이든 썼고, 그 중 하나가 폭력이었다. 법원 역시 폭행 사건에 대해선 이를 참작해 형량을 2년에서 10개월로 감형했다.

조재범 전 코치의 혐의

조재범 전 코치의 혐의

여 대표는 "2014 소치올림픽 당시 성폭력 문제를 일으킨 코치도 성적을 냈다는 이유로 빙상계에 복귀한 사례가 있다"이라며 "가해자들은 죄의식 없이 여전히 지도자로 활동중이거나 연맹에 있다. 그래서 피해 사실을 드러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와 학부모들은 '말해봐야 바뀌는 게 없다'는 생각으로 입을 다물었다. 운동선수 생활을 위해 '이번 한 번만 참자'라는 식으로 넘어간 것"이라고 했다. 여 대표는 "신고센터가 있지만 유명무실하다. 빙상연맹 역시 내부에서 덮으려고만 했다"고 덧붙였다. 빙상연맹은 지난해 1월 심석희가 폭행을 당한 뒤 선수촌을 이탈했을 당시, 은폐를 시도했다.

문화연대의 함은주 집행위원은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문화연대는 지난해 리듬체조 간부 김모씨 성폭력사건과 관련해 대한체육회에 대한 컨설팅을 진행했다. 함은주 위원은 "체육회의 성폭력 문제 해결, 교육, 예방 진행 과정을 점검했다.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는 해결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함 위원은 "종목별 가맹단체와 체육회간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해결이 어려웠다. 스포츠공정위원회도 당사자와 관련된 이들이 많이 참가해 비슷한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대한체육회는 10일 사과문과 함께 차후 대책을 밝혔다. 체육회는 "스포츠계 폭력·성폭력을 방지하고자 노력해왔으나 시스템에 큰 허점이 있었다. 특히 선수촌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났다는 점에 대해 사과한다"고 했다. 이어 "전 종목에 걸쳐 현장 조사를 실시해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스포츠인권 관련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재검토 및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국가대표선수촌 훈련장·경기장 CCTV 및 라커룸에는 비상벨을 설치한다. 선수촌 내에서 훈련장을 순시하는 여성관리관과 인권상담사를 확충해 소통을 강화하면서 선수를 보호한다. 성폭력 가해자에 대해 무관용 원칙도 강화해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도입해 영구 추방한다.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그동안 체육회와 종목별 단체가 내린 처벌이 가벼웠다. 이번 기회에 제3의 기구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김보영 대한체육회 홍보실장은 "체육회 외부의 인력 풀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선수위원회에서 고충상담 창구를 만들어 선수 출신위원들이 멘토로 나선다. 아울러 스포츠공정위원회와 여성스포츠위원회 등에도 외부 스포츠인권 전문가를 포함시킬 것"이라고 전했다. 인권전문가를 포함한 ‘체육 분야 규정 개선 TF’도 구성된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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